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정식의 이코노믹스

올해보다 경제 상황 악화, 내년 버텨야 외환위기 막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불안한 한국 경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또 다시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2배 늘어났고 ▶총외채에서 차지하는 단기외채의 비중이 28%로 낮으며 ▶국제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이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도 문제가 없다며 위기의 가능성을 일축한다. 그러나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내년에 세계 경기가 경착륙할 가능성이 높으며 신흥시장국은 자본유출로 인해 금융위기와 외환위기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또 미국의 금리 인상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고 하반기에도 금리 인하 없이 고금리 기조가 지속하면서 세계 경제 침체국면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는 또다시 위기의 위험에 직면할 것인가. 위기 가능성을 우려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올해 성장률 2.6%, 내년 2%로 악화
고물가·고환율에 수출환경 나빠져

정부·한은, 위기 우려 일축하지만
경제 더 나빠지면 펀더멘털 흔들려

수출에 총력 기울여 흑자 유지하고
가계 부채·부동산 부실화 막아야

먼저 위기는 현재 경제의 펀더멘털뿐만 아니라 미래의 경제 상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외환위기 원인을 분석한 제2세대 외환위기 모형에서도 비록 현재 경제의 펀드멘털이 양호해도 미래가 위험할 경우 기대에 의한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최근 영국의 경우 감세정책으로 미래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자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수출 환경 나빠져 쌍둥이 적자 우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경제는 올해 무역적자 폭은 커졌지만, 연간 경상수지는 흑자가 전망돼 대외신인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퍼펙트 스톰은 계속 몰려오고 있다. 특히 내년 경제는 안심할 수 없다. 지난 9월 미국의 근원인플레이션은 6.6%로 높아지면서 연준이 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달러 강세로 환율까지 오르면서 자본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

여기에 경상수지 악화도 전망된다. 세계경기 침체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는 치명적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중국의 대(對)미국 수출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중국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로 한국의 경상수지는 적자 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재정적자에 경상수지 적자까지 쌍둥이 적자가 지속할 경우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는 낮아져 자본유출과 환율 불안이 커질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경제 성장률이 올해(2.6%)보다 내년(2.0%)에 더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외환보유액 1년 사이 524억 달러 감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외환보유액 감소와 환율 급등 또한 위기의 신호다. 외환 당국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의 감소 폭이 크거나 혹은 환율이 급속히 오르는 경우 외환시장압력(EMP)지수는 이를 위기의 시그널로 본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외환보유액이 524억 달러 줄었으며, 지난 9월 한 달 동안만 해도 197억 달러 감소했다. 여기에 환율 또한 연초보다 20% 이상 높아져 1400원 선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미 금리 인상이 지속할 경우 강달러 추세로 환율은 더욱 높아지고 외환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은 더욱 감소할 것이 우려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제약되는 것도 위험하다. 한·미 간 금리 차이를 줄여 자본유출을 막고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은 금리를 큰 폭으로 높여야 한다. 그러나 금리를 높일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가진 가계부채가 부실화되고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금융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높일 경우 금융위기를 우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재정정책 또한 제약되고 있다. 지난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해 재정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정치적 불안정과 북한의 안보위협도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1997년 외환위기도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발생했다. 이번에도 지난 3월 대선 이후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이 커지면서 안보위험 또한 높아지고 있다. 안보위험이 커지면 외환시장 불안정으로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시적이라도 통화스와프 확보해야

이렇게 보면 내년 우리 경제는 안심할 수 없으며 정책당국은 위기를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책을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먼저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해 경기의 경착륙과 가계부채 부실화 그리고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자본유출과 환율 급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금리정책 외에 외환시장 안정책을 별도로 수립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미국과의 국제금융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정치적 채널을 이용해 지난번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9개국과 맺은 것과 같은 한시적 통화스와프를 추진해 외환 공급에 대한 불안감을 낮출 필요가 있다.

정부는 수출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년 경상수지가 악화하지 않도록 수출증대와 대외경제 안정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비록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액이 늘어나도 수출이 늘어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될 경우 외환시장은 안정될 수 있다. 만약 외환시장 불안정이 내국인의 환투기 때문이라면 외환 투자에 대한 자본이득세 부과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는 금과 외환의 투자수익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금융투자가 다양화하면서 외환 투자 수익에 대해서도 과세하고 있다.

외환시장 개입은 보유 달러만 소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부실화와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을 수 있도록 미시적 보완대책 또한 사전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해 주는 기준들을 완화하고 대출한도를 확대해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한 서민금융을 확대하고 소득이 낮은 청년들의 이자 납부를 유예해 금융 부실을 막을 필요도 있다. 부동산 버블의 경우는 저금리 시대에 시행된 과도한 조세정책을 정상화하고 강화된 각종 부동산 규제를 고금리 시대에 맞도록 완화해 연착륙시켜야 한다.

외환보유액 관리에도 신중해야 한다. 과도한 환율 변동을 억제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은 필요하지만, 환율의 추세를 바꾸기 위한 개입에는 신중해야 한다. 환율은 안정시키지도 못하고 외환보유액만 소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외환보유액을 늘리기도 어렵다. 외환보유액 축적은 외환시장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2019년부터 미국과의 협약으로 외환시장 개입량을 공개하기로 했으며 미국의 환율 조작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후엔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의 금리 인상 중단 이후 시행이 예상되는 보호무역정책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폴 볼커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11%대에서 22%로 높인 1980년대를 보면, 금리 인상을 중단한 이후 시차를 두고 동유럽 국가들은 외채위기를 겪었으며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일본 또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게 된다. 이는 미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강달러가 미국의 수입물가를 낮추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는 역할을 하지만 무역적자 확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미국은 금리 인상 후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1985년 플라자 합의와 같이 환율을 조정하는 조처를 하게 된다. 이미 올해 들어 미국의 무역적자는 확대되고 있다. 내년에 미 금리 인상이 멈추더라도 그 후속 조치 때문에 한국경제는 수출과 환율에 큰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대중국 수출이 늘어나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 외환위기 위험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외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줄어들고, 중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대중국 수출이 급감해 경상수지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안정과 함께 정책당국의 신중하고 올바른 정책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