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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곡물수출 또 막아선 러시아…농산물발 인플레 우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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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곡물 수출을 인질로 삼은 러시아의 변덕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흑해를 지나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을 공격하지 않기로 한 협정을 지키지 않겠다고 해서다. 식량을 무기화한 러시아의 변심에 시장이 다시 요동치며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31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12월물의 가격은 장중 부셸당 8.9325달러로 7.7% 급등했다. 1부셸 27.216kg이다. 옥수수(2.8%)와 대두유(3%) 등 다른 곡물 가격도 뛰었다.

지난 7월 이후 안정세를 찾아가던 곡물 가격이 들썩인 건 지난 29일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항구의 농산물 수출에 관한 협정 이행을 중단한다”고 성명을 내면서다. 지난 7월 UN과 튀르키예가 중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지나는 곡물 수출 선박을 이달 19일까지 120일간 공격하지 않기로 협정을 맺었다. 러시아가 이를 뒤집으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런 결정의 이유로 이날 크림반도 남서부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 있는 흑해 함대를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공격했다는 점을 들었다. 우크라이나가 드론 공격 주장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식량 무기화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의 변심에 국제 곡물 가격이 요동치는 건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출이 대부분 흑해 항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 세계 곡물 시장 점유율은 밀 27%, 보리 23% 옥수수 14% 등이다. 흑해 항로가 막히면 세계 식량 공급에 동맥경화가 생길 수 있다.

블룸버그는 “전 세계 밀과 보리 수출의 4분의 1 이상, 옥수수 화물의 5분의 1 등이 흑해 항로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UN 사무국은 “흑해 항로가 다시 막히면 950만t 이상의 곡물과 식료품의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성명을 냈다.

세계의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이 막히면 그 충격은 전 세계로 확산한다. 실제로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 만에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 가격은 21%, 보리 가격은 23% 상승했다. 비료 가격도 40% 비싸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중단되면 식량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지고 이미 심각한 식량 부족에 직면해 있는 가난한 국가들에 치명적인 기근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흑해 항로가 당장 막힌 건 아니다. 3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엔은 이날 우크라이나·튀르키예와 흑해에서 나가는 선박 12척과 들어오는 선박 4척 등 16척을 당초 마련된 해상 통로를 통해 이동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유엔은 전날 곡물 거래 대표단 회의에서 러시아 관리가 긴급한 사안에 대해 유엔·튀르키예와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협정의 중재자 역할을 한 유엔과 튀르키예는 러시아의 참여를 독려 중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아랍연맹 정상회의 참석을 미루면서까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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