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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손잡은 K-원전, 사상 첫 유럽 수출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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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 한국 수력원자력과 폴란드전력공사(PGE)·폴란드 민간 발전사 제팍(ZE PAK)이 3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수출 관련 양해각서(MOU)와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황주호 한수원 사장, 피오트르 보즈니 제팍 사장, 이창양 산업부 장관,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지그문트 솔로쉬 제팍 회장, 보이치에흐 동브로프스키 PGE 사장. [사진 한수원]

산업통상자원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 한국 수력원자력과 폴란드전력공사(PGE)·폴란드 민간 발전사 제팍(ZE PAK)이 3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수출 관련 양해각서(MOU)와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황주호 한수원 사장, 피오트르 보즈니 제팍 사장, 이창양 산업부 장관,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지그문트 솔로쉬 제팍 회장, 보이치에흐 동브로프스키 PGE 사장. [사진 한수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폴란드와 손잡고 13년 만에 한국형 원자로 수출에 나선다. 원전 2~4기 규모로 예정된 사업 수주가 거의 확실시 되면서 ‘K-원전’의 사상 첫 유럽 시장 진출이란 의미를 갖게 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와 비슷한 경제적 효과로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 그리고 한수원·폴란드전력공사(PGE)·폴란드 민간 발전사 제팍(ZEPAK)은 3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각각 원전 개발 계획 수립과 관련한 양해각서(MOU)와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날 행사엔 이창양 산업부 장관, 황주호 한수원 사장,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지그문트 솔로쉬 제팍 회장 등 양측 고위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4기 수출 땐 26조원 규모 될 듯

이번 사업은 정부 측 협력을 바탕으로 양국 3개 기업이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한국형 원자로(APR1400) 수출을 추진한다는 게 핵심이다. 장소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240㎞ 떨어진 퐁트누프에 제팍이 운영 중인 화력발전소 일대다. 폴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6기 규모의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사업(약 40조원)과 별도로 진행되는 민간사업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MOU와 LOI 체결이 곧바로 원전 수주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전 기본계획을 함께 마련하는 등 사실상 최종 계약에 가까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수원의 가격 경쟁력과 자금 조달 능력, 정해진 공기 내에 건설을 마치는 시공 역량 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원전의 건설 단가는 ㎾(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중국(4174달러), 미국(5833달러) 등보다 훨씬 낮다.

이는 한국과 기술 협력을 통해 기존 석탄 발전에서 원전 등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폴란드 측 목표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꾸준한 원전 세일즈가 더해지면서 지난 8월부터 폴란드 측이 협력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 언론 등에선 양국 간 방산 협력이 원전 등 산업·경제 분야로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신 폴란드 부총리는 이날 최종 계약 확률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100%”라면서 “몇년 내에 원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간 프로젝트지만 폴란드 정부는 민간·정부 원전 사업을 똑같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완전히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번 사업 규모는 원전 2~4기 정도다. 향후 한국형 원자로 4기를 수출하면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4기 계약액인 186억 달러(약 26조5000억원)와 맞먹는 규모가 될 수 있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로드맵도 첫 단추를 끼웠다. 중동(UAE), 아프리카(이집트)에 이어 유럽 원전 시장까지 진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원전 노형 수출은 UAE 사업 수주 이후 13년 만에 물꼬를 트게 됐다. 지난 8월 말 3조원 규모의 계약을 따낸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 사업은 건물·구조물 건설과 기자재 공급 중심이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3파전을 벌이고 있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 등 인접국 프로젝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폴란드 정부 사업에도 여지 생겨

폴란드 민간원전 수주전을 보도한 중앙일보 10월 26일자 B1면.

폴란드 민간원전 수주전을 보도한 중앙일보 10월 26일자 B1면.

국내 원전 생태계에도 단비가 됐다. 국내서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에 이집트, 폴란드 사업까지 더해지면 일감 걱정을 당분간 덜 수 있다. 특히 폴란드 사업을 따내면 원전 노형부터 기자재까지 밸류 체인 전 분야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국내 원전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원전 수출이 이뤄지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대부분의 기자재를 납품하게 된다. 최소 UAE 바라카 사업 급의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앞서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지방법원에 APR1400 수출을 막아달라는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다. 28일엔 폴란드 정부의 루비아토브-코팔리노 사업자에 웨스팅하우스가 선정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때문에 향후 한국의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미국 측 견제를 뚫고 민간사업으로 반격한 셈이 됐다.

또한 폴란드 정부 사업(루비아토보-코팔리노 원전)에서도 여지가 생겼다. 사신 부총리도 “(소송은)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의견 차이라고 본다. 곧 좋은 판결이 나온 뒤에 계속 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한국·폴란드 3사는 올 연말까지 소요 예산, 자금 조달, 예상 공정 등을 포함한 개발 계획을 함께 짤 예정이다. 그 뒤에도 공사 단가와 부지 상태, 투자 비율 등 여러 조건을 1~2년가량 세세히 따져야 하는 만큼 협상이 깨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최종 계약으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면서 “다만 폴란드가 자본 투자를 요구할 수 있는 만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정부가 나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활용한 투자 금융 상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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