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핼러윈 가족 나들이 갔다가…엄마·이모·중3딸 안타까운 참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등 수사관들이 현장감식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등 수사관들이 현장감식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전국의 뿔뿔이 흩어졌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신원과 관계가 확인되면서 함께 세상을 등진 가족·친구·동료·연인들의 사연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사고 당일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공부하던 이란 유학생 10여명이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이들 중 5명이 인파에 휩쓸리며 사망했다. 외국인 사망자(26명) 가운데 이란 국적 희생자가 가장 많은 이유였다. 사고로 숨진 A씨의 지도교수는 31일 중앙일보에 “아직도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곰처럼 듬직한 친구라 한국인 대학원생들이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도시건축·토목 분야를 가르치는 그는 “사고 이틀 전 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같이 잘 해보자고 파이팅을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한국 생활도, 대학원 공부도 너무 즐겁다고 말했었다”고 전했다. A씨와 같은 전공으로 박사 과정에 등록한 이란 국적의 여성 B씨도 함께 변을 당했다.

친구들끼리 갔다가 모두 세상 떠나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김모(25·취업준비생)씨도 지난 29일 밤 친구 4명과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친구 2명도 함께 사망했고 1명만 살아남았다. 전북 익산에 사는 김씨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리며 표정이 굳었다. “사고가 난 지난 토요일 오후 8시쯤 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이태원이라고 하더라. 사람이 많아서 밥 먹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그러면서 “이태원 사고 속보에 놀라 자정이 넘어서까지 아들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의 가족은 기아자동차 협력업체 직원이던 아들이 평택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던 중이란 사실을 사고 후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김씨의 부모는 “아들이 최근 부모도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는 것을 아들의 유품인 핸드폰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여자친구 5명 이태원 갔다가 4명 사망

 20대 여성 친구 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31일 오전 11시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박모(29·여·경기도 의정부시)씨의 빈소는 무거운 침묵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한쪽에 몸져누워 있고, 다른 편에 앉은 어머니는 연신 흐느껴 울고 있었다.

31일 오전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장례식장. 전익진 기자

31일 오전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장례식장. 전익진 기자

박씨의 가족에 따르면 박씨 등 사회 친구 5명이 함께 이태원으로 나갔고 먼저 귀가한 1명만 화를 면했다. 박씨의 외삼촌은 “숨진 조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2년간 유학을 다녀온 후 학원에서 일본어를 강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추석에도 전남 여수 외가를 찾아 외할머니와 사흘간 머물다 갔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하고 밝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밤 홀로 귀가한 친구에게서 “친구들과 함께 그날 밤 이태원을 갔다”는 말을 듣고는 충격에 빠진 가족들은 시내 병원과 장례식장을 샅샅이 뒤지고 실종자 접수까지 했지만 이튿날이 되서야 박씨가 수원 성빈센트병원에 안치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의 유해를 거주지가 있는 의정부로 옮겨 빈소를 차렸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녀 등 가족 3명, 고교 친구 2명도 참변

 모녀 등 일가족 3명이 함께 변을 당하기도 했다. 중학교 3년생 딸과 어머니 B씨(46), 그리고 큰이모 C씨(53) 등 3명은 다른 가족 3명과 함께 이태원으로 놀러갔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한 어머니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친했다는 한 네티즌은 맘카페에 “친구가 아이들 구경시켜주겠다고 가서는 언니와 나의 친구, 중 3 큰딸과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며 “벌써 너무 보고 싶다고 목 놓아 우는 친구 남편…. 아프고 아파 내일 보러 가는 길이 무섭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내 친구로 함께 해서 행복했고 또 보자”며 “이곳에서 많은 위로와 명복을 기원하는 글을 보고 제 이야기 나누어봤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친구 4명이 이태원에 갔다가 이들 중 2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현장에서 사망한 한 고교생의 작은 할아버지(63)는 “엄마는 가지 말라고 엄청 말렸는데 친구들과 약속 때문에 간 것 같다”며 “과학 관련 자격증도 많이 따고 열심이었다. 정말 착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사망한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 교장은 “1일에 하루 휴교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조문 올 예정”이라며 “학교 측은 숨진 학생 2명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던 다른 학생 2명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했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