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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인사동 비빔밥 맛있어"…'한국 사랑' 미국인·일본인도 참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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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다 다 저렇게 웃는 얼굴이라 사진을 고를 수가 없었어요…” 31일 오후 서울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 영정 사진 속 조모(33, 중국 국적)씨는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한국에 있는 조씨의 유일한 혈육인 고모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항상 웃는 얼굴에 남을 잘 도와줬어요. 식구들이 하는 말이 이태원에서도 (사람들) 도와주다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하고…” 빈소 안에선 이따금 통곡이 터져 나왔다.

한국 영주권 딴 외동딸…6살배기 아들 남기고 떠났다

 중국 랴오닝 성에서 나고 자란 조씨가 한국에 온 건 지난 2012년이었다. 한국 영주권을 딴 조씨는 그간 성형외과 프론트 직원으로 일해 왔다. “가게 하나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고 조씨의 고모는 전했다. 가족들이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건 지난 사고 이튿날이었다. 외동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중국에 있는 조씨의 어머니는 실신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조씨가 낳은 6살배기 아기는 아버지의 손에 맡겨져 있는 상태다. “정말 귀하게 키웠어요. 집에서도 엄청 예뻐했고… 손윗사람은 상복을 입는 게 아니라는데, 집안에 상복을 입을 사람이 없어요.” 고모는 눈물을 터뜨렸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 시민들이 추모의 의미로 남긴 꽃과 편지들. 사진은 영어로 적힌 추모문들. 최서인 기자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 시민들이 추모의 의미로 남긴 꽃과 편지들. 사진은 영어로 적힌 추모문들. 최서인 기자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로 14개국에서 온 외국인 26명이 숨졌다. 전체 사망자의 1/6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년 만에 이태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엔 한국인뿐 아니라 해외에서 온 유학생들이나 해외 여행객들도 몰린 탓이었다. 실제로 사망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온 여행객부터 교환학생, 조씨와 같은 영주권자까지 다양했다.

 국적별론 이란 출신 사망자가 5명으로 제일 많았고 중국과 러시아(4명), 미국, 일본(2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사망자 중에는 스리랑카 출신으로 국내에서 2년 6개월째 공장 노동자로 일해 온 A(26)도 포함됐다. 이날 A의 시신을 인계받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서울보라매병원에 온 A의 지인들은 “(A의) 부인이 스리랑카에 있는데, 임신을 해 A가 이번 달에 돌아가려 했었다”고 말했다. A의 시신은 스리랑카로 이송될 예정이다.

‘한국 덕후’ 스무살 맞은 미국 학생도 참변

 한양대학교로 교환 학생을 온 미국 출신 B(20)는 스무살 생일을 맞은 지 닷새 만에 이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미 켄터키 대학교 간호대 3학년생으로 지난 여름 한국에 온 그는, 참사 전날 한강변에서 친구들과 생일 축하 파티를 여는 사진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리기도 했다. 켄터키주 지역 방송인 WKYT-TV에 따르면 B는 켄터키대 한국 문화 동아리 회원이었다고 한다. 사고 후 그의 가족은 성명을 내 “망연자실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은 밝은 빛이었다”며 애도했다. B의 시신은 경기 안양 한림대성심병원에 안치됐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외국인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외국인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삿포로 출신의 26세 여성 역시 어학연수를 위해 지난 6월 한국에 들어왔다 참사를 당했다. NHK 등에 따르면 일본에서 웨딩 코디네이터 등으로 일하던 그는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며 한국 행을 결심했고, 코로나19로 여러 차례 유학 시도가 좌절된 끝에 지난 여름 한국에 입국했다고 한다. 그는 사고 4시간 전 즈음 일본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사동에서 비빔밥을 먹었는데 맛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병원 빈소에 안치된 호주인 23세 여성은 한 영화제작사에서 제작 보조로 일했다고 한다. 외신들은 그가 영화 제작자를 꿈꿨다고 전했다. 참사 현장에 있었던 그의 친구 네이선 타버니티(24)는 SNS를 통해 "내 친구가 이태원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경찰이 없었기 때문에 군중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노르웨이 출신 20세 여성도 출국 약 한 달을 남기고 이태원 참사로 숨을 거뒀다.

시민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시민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각 병원에 따르면 사망 외국인 상당수가 해외 거주 유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병원 관계자들은 “장례 절차에 있어 정해진 게 없다”며 “해당 국가 대사관이나 유족들에서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한국인 사망자와 달리 외국인 사망자는 가족에 의한 신원 확인이 어려워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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