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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켜던 마을에 혁명"...새마을운동 앞장 선 ‘산골 이장’ 아들의 발품행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은 최근 취임 100일이 지났다.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 등 자치단체장은 4년간 펼칠 주요 사업의 틀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들의 살림살이 계획을 듣고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행정의 주민 밀착도가 훨씬 높은 시장·군수·구청장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이범석 청주시장(오른쪽)이 이달 초 열린 청원생명축제에 참석해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청주시

이범석 청주시장(오른쪽)이 이달 초 열린 청원생명축제에 참석해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청주시

“현장서 답 찾아야” 주민 1024명 만난 청주시장 

지난 7월 11일 충북 청주시 낭성면사무소. 이범석(55·국민의힘) 청주시장이 취임 열흘 만에 처음으로 주민과 대화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이장 등 직능단체 대표 30여 명이 그동안 묵혀놨던 민원을 쏟아냈다. “낭성면 감천에도 자전거 도로를 놔달라, 게이트볼장 인조잔디를 교체해달라….”

[2022지자체장에게 듣는다]

이 시장은 이날부터 40일 동안 청주시 43개 읍·면·동을 모두 돌며 주민 1024명을 만났다. 역대 청주시장 중 취임 50일 만에 전 읍·면·동 간담회를 마친 사람은 이 시장이 처음이라고 한다. 간담회에선 배수로 정비, 불법 쓰레기 방지용 폐쇄회로TV(CCTV) 설치, 마을 안길 포장, 우범지대 폐가 철거 등 건의사항 454건이 접수됐다.

이 시장은 지난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와 행정이 괴리돼서는 안 된다”며 “시장이 직접 듣고 빨리 개선하는 게 요즘 추세에 맞다”고 말했다.

이범석 청주시장(가운데)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텃골에서 살았다. 어머니(왼쪽)와 형과 함께 촬영한 사진. 사진 청주시

이범석 청주시장(가운데)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텃골에서 살았다. 어머니(왼쪽)와 형과 함께 촬영한 사진. 사진 청주시

“호롱불 켜던 산골서 전기등 혁명 봤다” 

동장이 챙길 법한 마을 현안에 시장이 달려들자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현장에서 곧바로 판단하고 해법을 마련하니 불필요한 보고나 문건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간담회에서 나온 건의 사항 140건이 두 달도 안 돼 해결됐다. 예산이 필요한 64건은 관련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시장은 “과거 청사건립, 체육시설 같은 거창한 사업보다 실생활과 밀접한 환경개선 관련 요구가 많다.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들을 수 없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요즘 청주시청은 소통이 화두다. 이 시장이 공직 30여년을 지낸 고위공무원 출신이라 다소 딱딱하고 ‘뻔한 행정’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에서 벗어났다. 시장 주재 회의에선 “만나고, 대화하라”는 주문이 잦다. 시장 1호 현안 결재에 ‘소통서포터즈’가 이름을 올렸다.

팀장급과 7급 이하 직원 20명으로 지난 7월 구성한 소통서포터즈는 경직된 조직 문화개선을 위한 토론을 한다. 시장 직속 소통보좌관실을 뒀다. 상생소통담당관실에 직원 16명을 배치했다.

이범석 청주시장이 청주시 신청사 건립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청주시

이범석 청주시장이 청주시 신청사 건립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청주시

1호 현안은 ‘소통’…찾아가는 시장실 운영 

취임 초 주민 간담회에 이어 11월부터 찾아가는 시장실을 운영한다. 주민 대화에서 나왔던 마을별 현안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챙기고, 추가 요구 사항을 듣기 위해서다.

이 시장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텃골 출신이다. 청주 시내에서 25㎞ 떨어진 산골 마을로 70년대 중반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지냈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이 시장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다”며 “그 시절 마을 이장을 지낸 아버지 모습을 보며 공무원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 시장 아버지 이재열(84)씨는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새마을운동이 활발할 당시에는 마을 이장 역할이 중요했다”며 “마을 변화를 이끄는 사람 역시 이장이었다. 필요한 사업을 면사무소 등에 말하면 시멘트나 자재를 지원해 주고 공사는 주민 스스로 했다”고 기억했다.

이범석 청주시장(오른쪽)이 청주 신흥고 재학 시절 교정에서 친구들과 앉아 있다. 사진 청주시

이범석 청주시장(오른쪽)이 청주 신흥고 재학 시절 교정에서 친구들과 앉아 있다. 사진 청주시

“철기 장군 이범석 닮아라” 할머니가 작명

새마을운동은 산골 마을인 텃골을 몰라보게 바꿔놨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던 마을 길이 말끔한 포장도로로 탈바꿈했다. 호롱불 아래서 공부하던 아이들은 전기등을 쓸 수 있게 됐다.

이 시장은 “당시 마을 변화가 혁명처럼 느껴졌다”며 “발품을 팔며 동네 어르신을 만나고, 면사무소 직원과 저녁상 아래서 밤새 토론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소통의 중요함을 배웠다”고 했다.

이 시장 이름은 할머니가 지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철기 이범석 장군(1900~1972)처럼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같은 이름을 지었다. 어릴 때는 또래보다 덩치가 커서 ‘꼬마 장군 이범석’으로 불렸다. 공직 입문 후에도 상급자들이 ‘철기 장군’ ‘이 장군’ 같은 호칭으로 불렀다. 이 시장은 “항상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범석 청주시장(오른쪽)과 아버지. 사진 청주시

이범석 청주시장(오른쪽)과 아버지. 사진 청주시

5년 전 청주시장 권한대행 “시장 출마 결심” 

이 시장은 1992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충북도 정책기획관과 청주시 부시장을 거쳐 행정안전부 지역발전정책관을 끝으로 지난해 8월 명예퇴직 했다.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 시장은 “2017년 청주 부시장 재직 당시 시장이 낙마하면서 7개월간 청주시장 권한대행을 했다”며 “청주 곳곳을 돌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 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핵심 현안은 청주시 신청사 건립이다. 전임 한범덕 시장은 2025년까지 2750억원 들여 문화적 가치가 있는 본관동은 놔두되 둘레에 새 청사를 짓는 계획을 세웠다. 국제공모와 설계비용으로 97억원을 썼다. 이 시장은 “설계를 다시 하겠다”고 했다.

1965년 개관한 청주시청 본관동은 1983년 3층에서 4층으로 증축했다. 사진 청주시

1965년 개관한 청주시청 본관동은 1983년 3층에서 4층으로 증축했다. 사진 청주시

“청주시청사 본관 철거하고 재설계해야”

이 시장은 “지금 설계는 디자인에 치중한 나머지 비효율적이다”라며 “본관 양쪽 부지 활용도가 떨어지고, 의회 독립청사를 새로 지어야 하는 변수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본관을 철거하고 설계를 다시 하면 사업 비용을 218억원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시민이 즐길 수 있는 ‘꿀잼 도시’ 전략으로 무심천·미호강 생태문화 수변공원 조성, 대규모 테마파크 조성 등을 구상하고 있다. 이 시장은 “선거 기간 주민한테 ‘청주에 갈 곳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호텔·리조트 등 숙박공간과 놀이시설·워터파크가 들어선 관광지를 민간과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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