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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일반건강검진 11개 중 7개, 의학적으로 권고되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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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좋은 건강검진, 나쁜 건강검진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병을 일찍 발견해 치료해야 치료 결과도 좋고 합병증도 막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아도 초기에 암을 발견해 치료하는 것만 못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검진이 실제 건강에 도움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흔히 발생하는 병이면서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큰 효과가 있는 병이어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흔한 병이면서, 효과적인 치료 약이 있고, 일찍 발견해 관리하면 심장병이나 뇌졸중을 막을 수 있는 병이어야 한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많은 수의 사람을 검사해야 하므로 검사비가 비싸면 안 되지만 정확도는 높아야 한다. 혈압이나 혈당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잴 수 있고, 혈압과 혈당을 제대로 쟀으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검사가 건강검진에 포함될 수 있다. 해봐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검사를 건강검진이라고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WHO, 흔하고 초기 치료에 효과 있는 병에 건강검진 권고
방사선 촬영, 간·신장 기능 검사 등은 이 기준에 맞지 않아
질병관리청, 일반건강검진 대부분 근거 없다는 사실 알지만
정부와 이해단체, 전문가들의 침묵 카르텔로 개선 안 돼

흉부 방사선 검사, 10만명 중 1.4명꼴 결핵

김윤의 퍼스펙티브

김윤의 퍼스펙티브

우리나라 성인 건강검진은 만성질환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일반건강검진과 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암 검진으로 구분한다. 국민 약 3천만 명이 국가건강검진을 격년으로 받고 있고, 건강보험은 이들 검진에 1조5천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 중 암 검진은 앞서 설명한 WHO의 건강검진 조건을 충족하지만 일반건강검진에 포함된 대부분의 검사는 안타깝게도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일반건강검진 항목 11개 중 7개는 의학적으로 권고되지 않는 건강검진 항목이다.

미국과 영국의 전문가 위원회는 전 세계 연구 결과를 주기적으로 검토하여 어떤 것이 검진 항목으로 적합한가를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 건강검진 항목 중 흉부 방사선 촬영, 빈혈, 이상지질혈증, 간 기능 검사, 신장기능 검사, 골다공증 검사, 치매 검사는 건강검진으로 권고하지 않는 검사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건강검진 항목은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도, 우울증 검사뿐이다. 우리나라 가정의학회도 같은 권고를 하였다.

폐결핵 진단을 위한 흉부 방사선 촬영을 예로 들어보자. 2020년 일반 건강검진에서 흉부 방사선 촬영을 받은 사람은 1445만명에 달하는데 이중 폐결핵으로 확진된 사람은 200명에 불과하다. 흉부 방사선 검사를 받은 사람 10만명 중 1.4명꼴로 결핵을 발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1명의 결핵 환자를 발견하기 위해 9만9998명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 결핵 환자와 접촉해서 결핵에 걸리는 사람은 대략 10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검사 항목을 검진에서 빼면 일반건강검진 비용의 약 80%에 해당하는 약 3000억원을 매년 건강보험 재정에서 절감할 수 있다(2020년 기준). 이렇게 아낀 돈을 제대로 쓰면 더 적은 돈으로 해당 질병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매년 1200억원을 쓰는 흉부 방사선 촬영 검사 비용을 노숙인이나 쪽방 거주자 같은 결핵 고위험군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사업비로 전환하면 그 절반 정도의 비용으로 결핵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만성 신장 질환과 만성 간 질환도 건강검진보다 이들 질병을 관리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유방 촬영의 유방암 진단 부정확

암 검진에서는 검사의 정확도가 문제가 된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어도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방암 검진에 사용되는 유방 촬영은 정확도가 높지 않다. 2011년 국가건강검진에서 유방 촬영 결과 유방암이 의심되는 사람 중 실제 유방암으로 확진된 경우는 0.6%에 불과했다. 검사 결과 음성이었던 사람에서 유방암으로 확진된 경우가 1.3%로 더 높았다. 유방 촬영의 정확도가 낮은 이유는 우리나라 여성의 유방 조직이 치밀해서 검사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검진 기관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 한 유방 촬영의 정확도는 국가건강검진보다 훨씬 높다.

건강검진 항목이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고 검사 결과가 정확하다고 해도, 확진 검사를 받지 않거나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검진은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래서 건강검진은 단순히 검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병이 의심되는 사람에게 확진 검사를 받도록 하고 확진된 이후에는 치료를 받도록 의료기관에 연계하는 사후 관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은 검사만 많이 하고 사후 관리는 매우 부실하다. 2011년 연구에 의하면 일반 건강검진에서 고혈압이나 당뇨병으로 판정을 받은 사람 중 3개월 이내에 고혈압이나 당뇨병 진료를 받은 사람은 2%에 불과하였다. 암 검진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경우에서 확진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은 사람도 20~30%에 불과하였다.

이처럼 검진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도 국민이 확진 검사와 치료를 잘 받지 않는 이유는 먼저 어려운 검진 결과를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 중 우편이나 휴대전화로 통보되는 검진 결과를 의료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의문이다. 돈과 시간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확진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알고도 병원을 찾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은 검사만 해주고 나머지는 국민이 각자도생하라고 하는 셈이다. 쓸데없는 검사에 아까운 돈을 쓰는 대신 의사가 검사 결과를 제대로 설명해주고 확진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돈을 써야 한다.

건강검진 남용하면 건강에 해

건강검진을 남용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흉부 방사선 촬영은 소아에서는 방사선 피폭으로 혈액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 검진 항목에 따라 다르지만 건강검진에서 병이 의심되는 결과나 나오더라도 실제로는 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진 검사를 받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을 졸여야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대장내시경도 간혹 장 천공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생긴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지켜준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국가건강검진의 속을 들여다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의학적 근거가 없는 검사를 전 국민에게 받게 하고,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데도 눈을 감고,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확진 검사와 치료를 받지 않는데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 이렇게 부실한 국가건강검진이 수십 년 동안 왜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국가건강검진 항목의 의학적 근거를 검토하는 권한을 가진 질병관리청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반건강검진 항목 대부분이 근거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축적해왔다.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 모두 의학적 근거가 없는 검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2018년 근거 없는 검진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은 보건복지부는 근거 없는 국가건강검진 항목을 조정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1년 넘게 논의하였다. 의사협회와 검진 관련 단체, 한국경제인단체총연합회 같은 사용자 단체와 한국노총 및 민주노총 같은 노동자 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는 흉부 방사선 검사를 포함한 부적절한 검진 항목을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고 삭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정보 공개하지 않아

국가건강검진 검사의 정확도와 검진 사후 관리를 책임지는 건강보험공단은 검사의 정확도가 올라가고 국민이 검진만 받고 확진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 오래된 연구 결과를 인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건강보험공단이 핵심적인 정보를 감추고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건강보험공단이 뻔히 알면서도 부실한 국가건강검진을 방치하고 있다. 검진 관련 단체와 그와 관련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의학적 근거가 없는 검사를 없애는 데 반대하고 있다. 노동자 단체는 건강검진을 혜택으로 아는 일선 노동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효과 없는 국가건강검진에 애써 눈 감고 있다. 부실한 국가건강검진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정부와 관련 이해단체, 전문가들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