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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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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구매가 아닌 비구매를 택하는 행동’. 소비자 보이콧(Consumer Boycott)으로도 불린다. 1880년 아일랜드토지연맹이 언(Erne)의 백작, 찰스 보이콧의 토지 임차인 착취를 막기 위해 한 단체 행동에서 유래해 동사로 쓰이기 시작했다. 특정인이나 제품, 집단을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행동 혹은 운동이다.

소비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일종의 투표와 같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낙점한 뒤 화폐로 의사를 표현한다. 불매운동에선 주도 세력이 특정 제품 구매를 중단하도록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설득한다. 불매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결심을 바꾸는지, 혹은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성공적인지에 대해선 여러 이론이 나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취향과 판단이 작용하는 동시에 사회·윤리·정치적이기도 한 다층적 행동이라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긴 어렵다. 특정 불매운동의 지속 기간, 호응 정도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지난 15일 충격적인 직원 사망 사건으로 거세진 SPC 불매운동의 미래는 무엇일까. 여러 측면을 따져봤을 때, 장기화로 갈 수밖에 없다. 비단 실수로라도 SPC 제품을 사는 일이 없도록 판독 애플리케이션까지 나와 널리 공유되는 등 행동하는 소비자의 압력이 거세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화의 징후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훨씬 뚜렷하다. 합리성으로 무장한 이른바 ‘이기적인 소비자’ 의 움직임에서다. 철저히 개인의 이익을 동력으로 행동한다는 이들은 SPC가 빵을 만들 때 어떤 자세를 갖고 임하는지 적나라하게 확인하게 됐다. 누군가 일하다 비명에 간 현장 확인이 끝나기도 전, 옆에선 샌드위치 만들기가 계속됐다. 이래도 괜찮다고 판단한 기업, 이런 문화 속에서 일하는 조직이 먹거리에 대한 철학과 예의를 갖추리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이다.

‘직원과 가맹점주가 큰 피해를 본다’는 호소는 이기적인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이들에게 최우선은 나와 가족의 입에 들어갈 먹거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SPC가 뒤늦게(지난 21일) 제시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돌려보겠다는 건, 어림없는 얘기로 들린다. 신뢰를 잃은 SPC의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