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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에 심폐소생술, 1명만 맥박 돌아왔다" 충격의 이태원 상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태원 참사(154명 사망)가 발생한 29일 이태원(왼쪽)과 사고 발생 이후인 30일 저녁 불꺼진 이태원 모습 비교. [허정원 기자ㆍ연합뉴스]

이태원 참사(154명 사망)가 발생한 29일 이태원(왼쪽)과 사고 발생 이후인 30일 저녁 불꺼진 이태원 모습 비교. [허정원 기자ㆍ연합뉴스]

 154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오후, 사고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꽃만 가지런히 두고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이컵에 막걸리와 소주를 따라놓고 추모를 표한 이들도 있었다. 해가 저문 뒤 추모의 발걸음은 늘고 있다.

외국인도, 고교생도 추모 위해 현장 찾아 

 핼러윈 행사 인파가 몰리며 154명이 사망한 30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추모이 꽃다발과 술이 놓여있다. 허정원 기자

핼러윈 행사 인파가 몰리며 154명이 사망한 30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추모이 꽃다발과 술이 놓여있다. 허정원 기자

 전날 구조활동 와중에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던 현장의 축제 분위기는 사고가 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충격과 침울함으로 바뀌었다. 한국생활 4개월 차인 미국인 그레이스 리(40·여) 씨는 오후 5시경 현장을 찾아 “뉴스를 보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점점 더 슬퍼졌다”며 “살 날이 많은 젊은 사람들인데 부모님이나 친구를 생각하면…”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현장을 찾은 고등학생 임재훈(17·남) 씨는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같은 서울 시민으로서 너무 비극적”이라며 손수 쓴 편지와 소국 다발을 놓고 갔다. 실종자 신고를 접수한 한남동 주민센터에선 자녀의 사망을 확인한 가족들의 울음소리와 안전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했다.

3년만 축제 분위기, 10만명 몰리며 비극으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이날 핼러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이날 핼러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사고는 축제의 장 복판에서 일어났다. 장기간 엄격했던 코로나19 방역이 느슨해진 상황에서, 이태원 클럽과 주점·펍은 수주일 전부터 핼러윈 데이 행사를 홍보하며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태원의 유명 A 주점은 약 3주 전부터 핼러윈 시기에 대비해 핼러윈용 소품으로 내부를 꾸미고 시간별로 서로 다른 댄스 공연을 준비했다. A주점 앞은 참사 하루 전인 28일부터 이미 뺨에 붉은 흉터 분장을 한 사람들이 앞다퉈 줄을 서 사진을 찍는 ‘포토존’으로 통했다.

29일 밤 10시15분 경. 서울 용산구 해밀턴 호텔 인근 폭 4~6m의 좁은 골목은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밀집하면서 아수라장으로 급변했다. 벽과 벽 사이에 낀 사람들이 옴짝달싹 못 하면서 압력을 못 이겨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급기야 벽을 타고 탈출하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음악 꺼진 이태원, 충격받은 상인들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 붙은 휴점 공지. 이 지역 상인회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11월5일 애도기간을 고려해 일시 휴점하기로 결정했다. 허정원 기자.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 붙은 휴점 공지. 이 지역 상인회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11월5일 애도기간을 고려해 일시 휴점하기로 결정했다. 허정원 기자.

 정작 핼러윈 데이(10월31일) 전야인 30일 밤 이태원의 음악 소리는 꺼졌다. 정오가 될 때까지만 해도 일대의 식당이나 화장품 가게, 카페 등 상점은 대부분 불이 꺼진 채였고 영업시간을 단축에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가게도 많았다. 현장을 목격했던 상인들과 행인들은 전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장 근처 케밥 가게 종업원 쉐네르(31) 씨는 “건너편 골목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넘어져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줘서 빼내고 그 위로 물을 건네줬다”며 전날 밤의 일을 회상했다. 쉐네르 씨는 “정신적 충격이 심해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너무 무섭고 마음이 아프다”고 심장 부근을 만졌다.

또다른 상인 이영(52)씨 역시 “마음이 무거워 출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며 “지금이면 가게들이 여는 시간인데 사고 때문에 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행인들은 사건 현장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오후 1시쯤이 되자 인근 상점가의 점주 일부는 전날 사고 현장을 살펴보러 나왔다. 10년간 이태원에서 가게를 운영해 온 조모(57) 씨는 “당시 경광봉을 들고 사람들을 안내하고 제 지인은 심폐소생술을 자원해 10명의 가슴을 압박했다”며 “지인에 따르면 그중 1명만 맥박이 돌아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용산구청이나 경찰서와 협력해서 인력도 더 구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작년 이태원 클럽발 (감염)으로 이태원이 흔들렸다가 지금 겨우 살아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어떡하나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 “이런 인파 잦은데 어떻게” 한숨 

이태원 참사 실종자 접수처가 마련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30일 실종 접수를 마친 한 시민이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태원 참사 실종자 접수처가 마련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30일 실종 접수를 마친 한 시민이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사고 현장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윤희(42·여)씨는 “이 정도 인파는 이태원에서 자주 있던 규모인데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길바닥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며 “(코로나가) 풀리자마자 큰 사고가 생기니 결국에는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길 것 같다”며 불안한 한숨을 쉬었다.

전날 현장을 지나다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의사 이모씨(31·남)는 “열두 시경 이미 (사고 후) 상당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경동맥, 대퇴동맥 맥박이 안 잡히거나 심정지 상태에서 30분 이상 경과한 분들이 다수였다”며 “전문적 응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지만, 피해자들의 호흡을 위해 앰부 백을 짜거나 흉부압박을 교대로 하는 등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참사에 지자체와 기업들은 핼러윈 행사를 전면 중단했다. 마포구청은 이날 오전 “홍대 앞 핼러윈 행사가 긴급 취소됐다”며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안전안내문자를 보냈다. 용인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도 핼러윈 이벤트를 전면 중단하고 애도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이태원의 클럽, 주점 등은 일요일인 30일까지 자체적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무료 음료를 제공하는 등 핼러윈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고로 취소될 전망이다. 이태원 관광특구 연합회는 오는 5일까지 연합회 회원 가게들에 애도의 의미로 임시 휴업을 독려할 예정이다. 또, 인근에 분향소를 마련해 희생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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