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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에 美 기업 실적 급감, 엔·위안화 가치는 자유낙하 중

중앙일보

입력

'수퍼 달러'의 충격이 일파만파다. 역대급 달러 강세에 주요국 통화가치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일본 엔화가치는 32년 만에, 중국 위안화 가치는 1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기업의 비명도 커지고 있다. '킹달러' 미국 기업의 3분기 순이익이 100억 달러(약 14조2500억원) 이상 날아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시간) 크레디트스위스(CS) 미국 주식 담당자 조나단골럽의 분석을 인용해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올해 3분기 미국 기업의 순이익이 100억 달러가량 감소할 것"이라며 “어린이 장난감부터 담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업체가 타격을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골럽은 “달러 지수가 8~10%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편입 기업의 주당 순이익이 1%포인트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이번 실적 발표 시즌 전 3분기 기업 순이익예상치가 4800억 달러 수준이었던 걸 감안하면 달러 강세로 3분기 순이익이 100억 달러 날아갔을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의 순이익이 3%가량 사라졌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달러값이 비싸지면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진다. 해외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국 통화로 표시된 미국 제품의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클라우드 서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이용 가격을 달러로 매긴다. AWS 이용자 입장에서는 같은 서비스에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고객의 이탈이 기업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미국 기업이 수출국 통화로 매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 달러로 바꾼 수익은 쪼그라들게 된다. 환차손이 생긴다. 애플이 한국에서 아이폰 13 프로를 135만원에 판매했을 때 '1달러=1100원'이면 1227달러를 벌지만, '1달러=1400원'이면 벌어들이는 돈은 964달러로 줄어든다.

지난 27일 3분기 실적발표 때 애플이 “달러 강세로 다음 분기 (달러 표시) 매출이 약 10% 감소할 것”이라며 “수익 유지를 위해 이미 일부 국가에선 현지 통화 기준 가격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환율은 영향은 투자자가 미국 기업의 실적을 정확히 파악하는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JP모건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잭 카프리는 “미국 기업의 부진한 3분기 실적이 환율 때문인지, 세계의 수요 감소 탓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차손은 파악하기 쉽지만, 달러 가치 상승에 따른 수요 감소를 추정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FT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란 기대가 시장에 퍼지며 달러 가치가 다소 하락했지만 Fed가 실제로 금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의미 있는 달러 약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업들은 당분간 강달러 교역 환경을 더 겪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수퍼 달러'에 울고 싶은 곳은 기업만이 아니다. 추락하는 통화가치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도 전전긍긍이다. 특히 하락세가 가파른 곳은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등이다. 엔화가치는 그야말로 자유낙하 중이다. 올해 초 '1달러=115엔' 수준이던 엔화가치는 지난 9월 '1달러=140엔'까지 밀린 뒤 지난 20일엔 '1달러=150엔'까지 곤두박질쳤다. 3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8일까지 달러 대비 엔화가치는 22.03% 하락했다.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15.76% 상승했다. 뛰는 달러 가치보다 엔화 가치가 더 가파르게 떨어진 것이다.

엔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가 최근 3차례 이상에 걸쳐 약 9조3000억 엔(약 90조원) 규모의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였다는 게 시장의 추정이다. 일본 정부의 개입에 달러당 150엔까지 밀렸던 엔화가치가 140엔 수준까지 올라섰다.

긴축의 가속페달을 밟는 미국과 달리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는 일본과의 금리 차가 확대되며 자본 유출이 이어지는 게 엔화 약세의 가장 주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 우려도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재무성의 외환정책 책임자였던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27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엔화 약세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앞두고 일본의 경제력에 대한 시장의 전반적인 평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치솟는 달러의 기세에 중국 위안화 가치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8일까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12.36% 하락했다. 엔화(-22.035)와 한국 원화(-16.37%)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빠졌지만 지난 28일 종가 기준 달러당 7.24위안을 기록하며 1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강달러에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과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중국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5.5%) 달성도 어렵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뒤 이어지는 '차이나런'도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달러 강세에 엔화와 위안화 가치의 하락이 원화가치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아시아 시장을 저평가하고 자금을 빼내면서 한국 시장에서의 자본 유출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어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중·일 세 나라는 교역 연관성이 높고 산업 구조가 비슷해 엔화와 위안화 약세는 원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엔화는 국제적으로 유통이 가능한 통화이고 중국은 외환을 통제하는 나라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만큼 이들 국가보다 외환위기 위험에 더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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