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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붙어서 난다…대통령들도 깜짝 놀란 '블랙이글스' 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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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저패스 기동 #전투기조종사 기수별 2명만 선발 #700시간 비행, 전투기 4대 지휘 #블랙이글스 전원 만장일치로 선발 #팀원끼리 신뢰해야 특수기동 가능 #명예와 팀워크가 블랙이글스 가치 #7월 영국 에어쇼에서 상 독차지해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가슴을 쓸어내리는 시저패스 기동
전투기조종사 기수별 2명만 선발
700시간 비행, 전투기 4대 지휘
블랙이글스 전원 만장일치로 선발
팀원끼리 신뢰해야 특수기동 가능
명예와 팀워크가 블랙이글스 가치
7월 영국 에어쇼에서 상 독차지해

블랙이글스가 10월 14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2022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행사에서 계룡대 하늘에 초대형 태극 마크를 그리고 있다.

블랙이글스가 10월 14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2022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행사에서 계룡대 하늘에 초대형 태극 마크를 그리고 있다.

“지상에서 보면 아름다운 하늘이지만, 일단 이륙하면 살벌한 전쟁터입니다.”
공군 제53특수비행전대 ‘블랙이글스’가 지난 14일 계룡대 상공에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특수비행에 이어 사랑의 큐핏을 그릴 때엔 가슴이 뭉클했고, 거하늘에 거대한 태극기를 수놓을 땐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블랙이글스는 과연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공군을 대표했다.
이날 육·해·공군 본부가 위치한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2022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행사장에서 블랙이글스 비행대대장 심규용 중령을 만났다. 심 중령은 “블랙이글스는 함께 비행하는 바로 인접 항공기와 거리를 수직으로는 2m 간격을, 수평으로는 날개 사이가 사실상 0피트(1피트=30㎝)다”고 말했다. 블랙이글스가 공중에서 특수기동을 할 때엔 인접 항공기와 간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블랙이글스 8대가 다이아몬드 대형을 유지하며 지난 14일 계룡대 상공을 날고 있다. 블랙이글스는 다이아몬드 대형을 이룬 뒤 알바트로스 대형으로 이어간다. 이때 항공기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아 주의해야 한다.

블랙이글스 8대가 다이아몬드 대형을 유지하며 지난 14일 계룡대 상공을 날고 있다. 블랙이글스는 다이아몬드 대형을 이룬 뒤 알바트로스 대형으로 이어간다. 이때 항공기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아 주의해야 한다.

땀이 눈에 흘러도 눈을 깜박일 수 없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게 블랙이글스다. 심 중령은 “공중에서 대형을 유지할 때엔 항공기의 날개와 캐노피(조종석 덮개) 등을 감각적으로 참고한다”고 설명했다. 8대의 T-50 전투기로 구성된 블랙이글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원팀이다. 서로를 믿지 않고 의심하는 순간 곧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중곡예를 방불케 하는 블랙이글스의 화려한 공중 특수기동을 보는 관중들은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지만, 그 순간 블랙이글스 조종사는 손에 땀을 쥔다. 오로지 비행에만 집중한다.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했다가는 옆 항공기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다치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비행하고 있는 동료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다. 그래서 비행 중에는 재치기는 물론, 이마에 흐른 땀이 눈에 들어와도 눈을 깜박일 수도 없다고 한다.(김덕수 『블랙이글스에게 배워라』)

블랙이글스가 시저 패스 기동을 하고 있다. 지상 100m 상공에서 보여주는 시저 패스 특수기동은 관중석에서 보면 항공기가 서로 마주 보고 돌진하다 충돌할 듯 아슬아슬하다.

블랙이글스가 시저 패스 기동을 하고 있다. 지상 100m 상공에서 보여주는 시저 패스 특수기동은 관중석에서 보면 항공기가 서로 마주 보고 돌진하다 충돌할 듯 아슬아슬하다.

대통령들 성남공군기지에서 시저패스 보다 깜짝 놀라
과거 성남공군기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블랙이글스가 공중곡예를 하던 중에 대통령들이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블랙이글스 2대가 100m 상공에서 좌우로 90도로 비틀고 서로 마주보고 고속으로 날아오다 360도로 회전한 뒤 수직상승하는 시저패스(sccior pass) 기동을 할 때다. 관람석에선 블랙이글스 2대가 마치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보고 있던 대통령은 깜짝 놀라 “부딪히는 것 아니냐”며 “위험한 기동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몇 년 뒤 관람한 또다른 대통령은 아찔한 시저 패스를 보다가 놀라서 의자에서 넘어지기도 했다.
이런 아슬아슬한 공중곡예비행을 하는 블랙이글스 조종사의 조건은 비행기량은 기본이고 품성이 더 중요하다. 블랙이글스에 지원하려면 총 비행시간이 최소한 700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비행교육과정 성적이 상위 1/3 이상이고 전투기 4대 이상을 지휘할 수 있는 편대장이어야 한다. 실제 블랙이글스 조종사들의 성적은 이런 조건을 훨씬 넘는다. 평균 비행경력이 1200시간쯤 되는 베테랑들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블랙이글스는 팀워크를 가장 중요시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는 무엇보다도 팀워크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지원자는 기존 블랙이글스 팀원이 전원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선발된다. 이외에도 각종 개인 기록과 인터뷰 등을 종합해서 선발한다. 전투기 조종사 가운데 기수별로 2명 남짓 나오는데 기회와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운도 있어야 한다.
기존 팀원의 만장일치제를 하는 이유는 신뢰 때문이다. 블랙이글스를 지휘하는 공군 제53특수비행전대장 김용민 대령은 “8기의 항공기가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비행하려면 조종사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며 “서로 믿고 고난도 비행을 하기 위해선 비행 실력뿐만 아니라 성실성, 배려심, 책임감, 끈기, 강인한 체력, 개인보다 조직을 생각하는 희생정신 등 여러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뽐내지 않는 블랙이글스
블랙이글스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끝없이 도전하고 자신의 임무와 조직에 헌신하며, 전문성과 팀워크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블랙이글스 조종사 한명 한명 모두 대단하지만 결코 뽐내지 않는다고 한다. 자만심은 금물이다. 수많은 관람객의 주목과 환호를 받아도 자랑이나 과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쭐하는 순간 신뢰가 깨지고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명예와 팀워크가 블랙이글스의 가치다.
새로운 팀원은 F-15K와 KF-16을 비롯한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가운데 선발되는데 팀원이 되면 고강도 훈련을 받는다. 우선 T-50 비행교육을 2달간 받는다. T-50 자격을 획득하는 기종전환훈련이다. 그런 뒤 4~5개월 동안 T-50으로 45회를 비행하면서 특수비행자격훈련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에어쇼가 있으면 블랙이글스의 선배 조종사의 뒷자리(후방석)에 탑승해 기동을 숙달한다.

특수기동이 자연스러워야 정식 팀원
특수비행자격훈련도 간단치 않다. 고고도와 저고도 비행, 여러 대와 동시 비행 등 각종 비행을 통해 30가지나 되는 다양한 특수기동을 숙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비행 중에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이 끝없이 작용한다. 그러나 그런 중압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러울 때까지 숙달해야 정식 팀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블랙이글스 팀원들은거의 훈련벌레들이다.

블랙이글스가 가장 어려운 특수기동인 토네이도 착륙 기동을 보이고 있다. 이 기동은 8대의 항공기가 오각형 대형으로 상승한 뒤, 수직으로 나선형으로 강하한다. 이때 8대의 항공기는 관중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떨어진다. 그런 뒤 일정 고도에서 서로 간격을 유지하며 착륙한다.

블랙이글스가 가장 어려운 특수기동인 토네이도 착륙 기동을 보이고 있다. 이 기동은 8대의 항공기가 오각형 대형으로 상승한 뒤, 수직으로 나선형으로 강하한다. 이때 8대의 항공기는 관중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떨어진다. 그런 뒤 일정 고도에서 서로 간격을 유지하며 착륙한다.

블랙이글스가 보여주는 특수기동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로운 기동은 ‘토네이도 착륙기동’이라고 한다. 8대의 항공기가 5각형 대형으로 상승한 뒤 수직으로 나선 강하를 하며 일정한 간격을 맞추어 착륙하는 기동이다. 심 중령은 “관중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개비처럼 펼쳐지는 토네이도 기동은 장엄하고 아름답지만, 높은 조종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동은 8대의 T-50이 밀접한 대형을 이루며 수직으로 상승한 후 다시 수직으로 강하하는데 이때 똑같은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며 나선형으로 돌면서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그러면서 8대의 T-50이 일정한 고도에 이르면 서로 간격을 유지하면서 활주로에 착륙한다.

세계에서 국기를 가장 크게 그리는 블랙이글스
심 중령은 또 가장 자랑스러운 기동은 태극기동이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의 특수비행팀 가운데 그 나라의 국기를 하늘에 그리는 팀은 많지 않다”며 “파란 하늘에 그려진 태극 마크를 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에 그려진 가장 큰 태극이어서다.
이런 블랙이글스가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하는 이유는 공군의 전투기동을 모두 표현하기 때문이다. 전투조종사는 적기와 조우하면서 전투기동을 하는데 그때 400~450노트(시속 740~833㎞) 속도를 내면서 전투를 시작한다. 적기의 꼬리를 물기 위해 수평과 수직 기동을 하고, 미사일과 기총 발사를 시도한다. 또 적기의 추월을 방지하기 위해선 100~150노트(시속 185~278㎞) 저속을 유지하기도 한다. 블랙이글스는 이런 모든 전투기동을 바탕으로 공중곡예기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블랙이글스가 난초 모양의 오키드 기동을 하고 있다. 모양은 난초이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공군의 기상을 보여준다. 이 기동을 보는 대부분의 관중들은 "와" 하며 함성을 지른다.

블랙이글스가 난초 모양의 오키드 기동을 하고 있다. 모양은 난초이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공군의 기상을 보여준다. 이 기동을 보는 대부분의 관중들은 "와" 하며 함성을 지른다.

위험한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는 블랙이글스가 항상 긴장하고 완벽한 안전을 유지해야 하는데도 팀의 문화는 의외로 탈권위적이다. 김 전대장은 “권위를 내세우며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는 팀워크를 오히려 저해한다”며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성공적인 임무수행을 위해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게 블랙이글스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완벽한 정비능력 보여준 해외 순회행사
이런 경쟁력 덕분에 블랙이글스가 최근 3개월 동안 영국과 이집트 등 해외 순회행사와 다른 나라와 경쟁을 벌이면서도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해외 행사 중 블랙이글스는 지난 7월 17일 영국 공군기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군사에어쇼 ‘리아트(RIAT) 에어쇼’에 10년만에 참가해 최우수상과 인기상을 독차지했다. 김 전대장은 “대형의 모양과 정확도, 대형 변경의 민첩성, 기동의 난이도, 기술력, 규정 준수 여부, 관객의 호응 등 여러 항목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한민국 공군의 위상과 항공기술력의 우수성을 선보인 것“이라고 했다.

블랙이글스가 훈련에 나서기 전에 정비팀이 T-50B의 랜딩 기어를 점검하고 있다.

블랙이글스가 훈련에 나서기 전에 정비팀이 T-50B의 랜딩 기어를 점검하고 있다.

이 행사 과정에서 정비사들도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갈 때엔 블랙이글스 항공기인 T-50 9대를 분해해 대형화물기 3대에 나눠 싣고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까지 이동했다. 그런 뒤 분해한 기체를 무진동 차량에 실어 영국 보스콤브다운 기지로 이동해 조립했다. 조립을 마친 T-50은 확인을 위한 점검을 한 뒤 시험비행 조종사의 시험비행까지 거쳤다. 정비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전대장은 “우리 정비사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블랙이글스 뒤엔 조종사 아내들의 애틋한 기도 있었다
하지만 블랙이글스의 화려함과 매일 임무수행에 목숨을 거는 조종사들의 뒤에는 아내들의 애틋한 기도와 애환이 있다. 모든 공군기지도 그렇지만 특히 블랙이글스에선 아내들이 남편과 다툴 일이 있어도 불편한 속내를 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종사인 남편의 비행에 지장을 줄까 우려해서다. 비행단에서 발생하는 전투기의 굉음은 소음이 아니라 안도감을 주는 음악 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전투기 굉음이 없으면 사고나 문제가 있어서 전투기가 지상에 대기(그라운딩·grounding)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 사고가 나면 ‘누구네 남편(조종사)이 순직했구나’라고 짐작하고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블랙이글스(당시는 T-50B가 아니라 A-37B 기종)가 에어쇼를 하다가 1대가 활주로에 추락해 김도현(공사 44기) 중령이 순직했다. 김 중령이 불과 400m의 저고도에서 나이프 에지 기동을 하던 중 갑자기 엔진이 정지됐다. 추락을 인지한 김 중령은 A-37B 항공기가 어린이 1300여명이 몰려있는 관람석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잡았다. 그는 항공기 기수를 활주로로 돌려 인명피해를 간신히 막았지만 자신은 기체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날이 그의 결혼 4주년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블랙이글스의 명예심과 책임감, 그리고 헌신이었다. 수많은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 김도현 중령을 추모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김은지·김하나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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