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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70만원짜리 한강뷰?…여의도 불꽃축제가 남긴 씁쓸함

중앙일보

입력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8)

서울에 올라오고 딱 한 번 불꽃 축제를 갔다. 경복궁이나 63빌딩으로 구경을 다니며 서울 생활에 적응하던 때였다. 남산에 놀러 갔는데 마침 그날이 불꽃 축제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몇 시간을 무작정 기다려 불꽃을 봤다. 날씨는 춥고 사람은 많은데, 기대와 달리 불꽃이 너무 작게 보여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가지 않다가, 3년 만에 들려오는 세계불꽃축제 소식에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2년 가까이 사람이 모인 자리에 가지 않아서 북적이는 분위기가 그립기도 했다. 지난해 새로 조성된 집 앞 공원에서는 한강과 여의도 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조용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그곳도 푸드트럭과 음악소리,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공원이 가득 차 있었다. 넓은 잔디밭에 빼곡하게 돗자리가 펼쳐져 있어서, 중간 통로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축제가 시작되면 통로에 앉을 생각이었다. 7시가 가까워지자, 앞쪽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고, 통로에도 사람들이 가득 찼다.

개막식이 시작되고, 잠시 후 강 건너에서 조그맣게 불꽃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다. 뒤쪽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소리치기 시작한 것은.

“앞에서 서 계시면 안 보여요!”

“아기들도 볼 수 있게 앉아주세요!”

“앉으면 다 같이 볼 수 있어요. 앉아주세요!”

아이들의 “앉아주세요”라는 외침을 듣고 쪼그려 앉으니 앞사람 허벅지만 보였다. 서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몇 명만 앉아있는 것은 더 위험했다. 나와 동생은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 앉았다가, 앞사람 엉덩이가 너무 가까이 온다 싶으면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애꿎은 스쿼트 자세를 반복했다.

“저희 아기들이랑 이거 보려고 세 시간 전부터 기다렸어요. 좀 앉아주세요.”

“저희는 더 먼저 왔거든요. 더 일찍 오셨어야죠. 왜 저희한테만 그래요.”

“목마를 태우면 뒤쪽에선 아예 안 보여요!”

여기저기서 언성이 높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밀려들어 와,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사람이 서서 불꽃을 보고 있었다. 어린 아기들과 왔던 가족들은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그림 최창연]

[그림 최창연]

어수선한 상황과 상관없이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서 버드나무처럼 쏟아져 내렸다. 까만 밤하늘이 환하게 빛났다. 올라가서 색깔이 바뀌는 불꽃도 있었고, 하트 모양, 웃는 얼굴 모양의 불꽃도 있었다. 강 건너에서 보아도 폭죽은 정말 크고 화려했다. 폭죽이 터지고 온갖 모양과 빛깔로 빛날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을 내뱉었다. 크게 손뼉을 치면서 보고 싶었는데 자리를 떠난 가족들이 생각나서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축제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SNS에 불꽃축제 태그로 올라오는 여러 가지 영상을 봤다. 누군가가 여의도에서 보았다는 불꽃은 별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크고 아름다웠다. 한강뷰의 거실에서 와인과 함께 찍은 불꽃 사진은 다른 세상처럼 근사했다. 저런 거실을 70만원에 빌려준다던 글이 생각이 나서 이내 씁쓸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여러 게시물을 보다가 오래 눈이 머물렀던 영상은 ‘처음 불꽃놀이를 보는 외국 어린이의 표정’이라는 영상이었다. 반짝거리는 불꽃이 환하게 아이의 얼굴을 비출 때마다 아이의 눈에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이 오래 머물렀다. 아이를 안은 아빠는,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귀를 막고 아이의 얼굴을 감싼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환하게 웃으면서 보았던 불꽃은 언제일까? 아마 몇 해 전 지하철 창밖으로 본 불꽃일 것이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사람들이 내뱉는 감탄사에 고개를 드니 눈앞에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그날 2호선은 아주 천천히 당산 철교를 지나갔다. 사람들은 창밖을 보며 함께 기분 좋게 웃었다.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순간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풍요로움이 전철을 가득 채웠다. 그날 천천히 운행하던 기관사님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졌다. 70만원짜리 거실에서 불꽃을 보았더라도, 잔디밭 가장 앞자리에서 불꽃을 보았더라도 그런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축제의 메시지는 ‘We Hope Again’. 코로나19로 우울하고 힘들었던 일은 모두 잊고, 환한 불꽃으로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공원에 왔던 아기들도,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도, 그리고 나와 동생도 오랜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아기들을 앞쪽에서 보게 하자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같이 보았다면 더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것이 오래 미안할 것 같다. 나는 한강뷰 아파트에 살지도 않고, 아침부터 공원에서 자리 잡고 있을 끈기도 없으므로 아이 가족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키가 작은 아이도, 높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어른도 즐겁게 즐기는 축제가 되기를, 하늘을 가득 채운 커다란 불꽃이 우리의 마음도 넉넉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앞으로 한동안은 불꽃 축제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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