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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월드시리즈 우승, 골판지 수요 줄면 월가가 떤다

중앙일보

입력

2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돼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한다.

2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돼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한다.

지난 23일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지켜보던 월가 투자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샌디에이고에 3-2로 뒤지고 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8회 말 브라이스 하퍼의 투런 홈런으로 역전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투자자들이 이 경기를 주목한 이유는 필라델피아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 경기 침체가 온다는 월가의 징크스 때문이다. 필라델피아가 우승 반지를 얻은 가장 가까운 해인 2008년엔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1980년 우승했을 땐 미국 경제가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모두 적자인 쌍둥이 적자를 겪었다.

1929년 당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직후인 1929년 10월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는 ‘검은 월요일’ 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이듬해인 1930년에는 대공황이 터졌다.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필라델피아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해 미국 경제에 발생한 사건들.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필라델피아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해 미국 경제에 발생한 사건들.

블룸버그는 지난 25일 “월가 투자자의 모든 시선이 필라델피아의 월드시리즈 성적에 쏠려있다”며 “이런 비공식 경제 지표는 투자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이자 징크스”라고 보도했다.

비공식 경제 지표 중 대표적인 게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중시했다는 ‘남성 속옷 매출 지표(MUI)’다. 남성 속옷은 보통 경기나 물가에 상관없이 소비량이 일정한데 심각한 경기 침체를 앞뒀을 땐 이 매출마저도 갑자기 떨어진다. 실제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MUI는 5% 떨어졌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봉쇄 때도 남성 속옷 매출은 약 20% 감소했다.

남성 속옷 매출 지표

남성 속옷 매출 지표

기저귀 발진 지수도 있다. 경기 침체기에 부모가 돈을 아끼기 위해 아이의 기저귀를 덜 자주 갈아주는 탓에 아이의 엉덩이에 발진이 더 자주 생긴다는 거다. 그 결과 엉덩이 발진 치료를 위한 연고와 크림 판매가 늘어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RI에 따르면 올해 기저귀 판매량은 코로나19 유행 이전보다 적었고 발진을 치료하는 연고는 상당히 늘었다.

경기 침체를 앞두고 드라이클리닝 업소의 매출이 줄어드는 경향도 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터뜨리는 샴페인도 비공식 경기 지표 중 하나다. 블룸버그는 “미국 선박의 샴페인 출하량은 월가의 호황기 때 급증하고 경기 침체기에는 추락하는 흐름이 반복됐다”고 보도했다.

상품 운송에 사용하는 골판지 상자 수요도 제조업 경기 판단 지표로 활용된다. 미국 제지회사 인터내셔널 페이퍼는 지난 7월 실적 발표 때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소비를 줄이면서 올해 2분기 수요가 예상보다 낮았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초반엔 경기가 안 좋을 때 여성들이 저렴하게 외모를 꾸밀 수 있는 립스틱을 새로 사거나 짧은 치마를 선호한다는 통설이 있었지만 최근엔 잘 맞지 않아 시장에서 자주 인용되진 않는다.

1998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신문 기사에서 ‘경기 침체’란 단어가 언급된 횟수를 측정하는 ‘R-Word Index’를 만들어 활용했다. 최근엔 사람들이 구글에서 ‘경기 침체(recession)’를 검색하는 횟수를 참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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