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진핑 하방 토굴 '관광지 대박'…리시, 부패청산 칼자루 쥐었다 [후후월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후후월드

후후월드’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용어사전후후월드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시진핑 3기 정치국 상무위원 6인 분석 ⑥ 리시

 지난 5월 22일 중국 국가박물관 공산당 역사 전시관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오른쪽)과 리시 광둥성 서기(왼쪽에서 셋째). 시 주석과 리 서기가 함께 웃고 있다. 사진 스커신문 캡처

지난 5월 22일 중국 국가박물관 공산당 역사 전시관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오른쪽)과 리시 광둥성 서기(왼쪽에서 셋째). 시 주석과 리 서기가 함께 웃고 있다. 사진 스커신문 캡처

“험지를 돌아 ‘다크호스’로 떠오른 서북 간부.”

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중 마지막 일곱번째로 자리를 꿰찬 리시(李希·66) 광둥(廣東)성 서기에 대한 홍콩 명보의 평가다. 리시는 중국 최고 국가감시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수장에도 낙점됐다. 감찰은 지도자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하에 맡기는 자리다. 랴오닝(遼寧)성 당서기 시절 부패 청산 능력을 입증했던 그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하방(下放ㆍ지식인을 노동 현장으로 보냄) 생활을 했던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서기를 거치며 시 주석의 눈에 들었다.

30년 험지...中 동서남북 5개 성 돌아 중앙무대 직행

지난 23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 대면식에 참석한 리시 신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사진 연합뉴스

지난 23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 대면식에 참석한 리시 신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사진 연합뉴스

리시의 이력은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다. 중국의 동서남북을 넘나들며 공직 생활을 했다. 삼국지로 치자면 위ㆍ촉ㆍ오 세 나라에서 모두 고위 관리를 거친 셈이랄까. 그는 1975년 서북부 오지 간쑤성(甘肅) 량당(兩當)현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30년 만인 2004년 산시성 옌안시 서기가 된 그는 7년 뒤인 2011년 동쪽으로 1000여㎞ 떨어진 중국 경제의 심장부 상하이(上海) 당 조직부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3년 만인 2014년, 이번엔 압록강과 접한 동북 랴오닝성 당서기로 올라갔고 2017년엔 반대로 중국 최남단 공업도시 광둥(廣東)성 서기로 발탁됐다. 간쑤와 산시성에서 기층민에 대한 행정 능력을 닦은 그는 상하이에선 대규모 당 조직을 관리했고 랴오닝에선 낙후한 경제 개발에 투신했다. 이는 광둥성 서기 승진으로 이어졌다. 5개 성(省)을 돌며 능력을 입증한 리시는 시 주석의 지지 속에 중국 반부패 드라이브의 ‘칼’이 됐다.

시중쉰 최측근의 비서로 시 주석과 인연

2017년 11월 14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세계상인대회에 참석한 리시 광둥성 서기. 사진 중국망 캡처

2017년 11월 14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세계상인대회에 참석한 리시 광둥성 서기. 사진 중국망 캡처

리시와 시 주석과의 연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시는 중국 간쑤성 량당현 출신이다. 이곳은 1932년 공산당 원로이자 시진핑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홍군 유격대 제5부대를 창설한 곳이다. 홍군의 근간이자 주력부대였다. 리시는 1982~1985년 간쑤성 서기 리쯔치(李子奇)의 비서로 들어갔는데 리쯔치가 바로 시중쉰의 오랜 부하이자 최측근이었다. 리쯔치는 시중쉰을 자주 찾았다. 그의 옆에서 동행했던 리시는 자연히 시 주석의 눈에 띄었다. 공직 생활의 초기부터 시 주석과 연을 맺은 건 타고난 행운이었다.

시 주석 하방 '량자허' 개발로 눈도장

지난해 6월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69년 7년간 하방으로 노동을 경험했던 산시(陝西)성 량자허(梁家河) 토굴안에 당시 그의 사진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신경진 기자

지난해 6월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69년 7년간 하방으로 노동을 경험했던 산시(陝西)성 량자허(梁家河) 토굴안에 당시 그의 사진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신경진 기자

시 주석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건 2007년 8월 산시성 옌안시 당서기 때였다. 당시 옌안일보 보도에 따르면 리시는 당시 상하이 당서기로 있던 시 주석을 찾아가 옌안시 량자허촌 마을위원회가 쓴 편지를 전달했다. 량자허는 1969년 당시 14세였던 시 주석이 7년 동안 하방 생활을 했던 곳이었다. 주민들은 시 주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앞으로 중국을 이끌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보도에 따르면 마을 주민들이 리시를 찾아가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다는데 어디서부터 시작된 일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시 주석은 자신의 하방 생활을 기억하고 찾아온 주민들에게 직접 답장을 썼다. “량자허에서 보낸 7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을 개발해 사회주의 신농촌을 건설해달라”.

시진핑과 함께 하방된 지식청년들이 살았던 토굴. 시진핑 집권 이후인 2014년 산시성 인민정부에 의해 '산시성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됐다.

시진핑과 함께 하방된 지식청년들이 살았던 토굴. 시진핑 집권 이후인 2014년 산시성 인민정부에 의해 '산시성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됐다.

이때부터 리시는 량자허촌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시 주석이 하방 생활을 했던 토굴은 관광지로 바뀌었다. 학교와 도로가 들어섰고 농지 개간과 함께 주민들의 소득도 빠르게 늘었다. 시 주석의 역사박물관이 생긴 것도 이때다. 당시 시진핑은 이미 국가 부주석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시 주석은 량자허촌 주민들에게 “마을의 변화를 환영하고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세차례 더 감사 편지를 보냈다. 리시가 2013년 시진핑이 당 주석에 취임한 뒤 상하이 당조직부장으로 승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랴오닝성 부패 척결...당 간부 500여 명 물갈이

2016년 3월 14일 12기 전인대 4차 회의에서 당시 리시 랴오닝성 당서기는 “부패를 엄중히 처벌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당 건설을 추진해 시진핑 주석의 법치주의 사상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신랑망 캡처

2016년 3월 14일 12기 전인대 4차 회의에서 당시 리시 랴오닝성 당서기는 “부패를 엄중히 처벌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당 건설을 추진해 시진핑 주석의 법치주의 사상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신랑망 캡처

변곡점은 다시 한번 찾아왔다. 2015년 랴오닝성 당서기로 부임한 리시는 1년 만에 최대 부정부패 사건과 맞닥뜨린다. 중앙기율검사위가 직전 당서기였던 왕민(王珉)의 뇌물 수수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 내부 고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율위는 6개월이 넘는 조사 끝에 2016년 9월 랴오닝성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 중 45명이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고 대표 자격이 박탈됐다. 이듬해 전인대를 앞두고 랴오닝성 인민 대표는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랴오닝성 관내 지방 도시 대표 523명도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리시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적인 재선거에 돌입했다. 대대적인 물갈이였다.

정관계 결탁 비리로 랴오닝성 경제가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도 드러났다. 관내 시와 현 단위 지역에 데이터 조작 행위가 만연했다. 랴오닝성의 2011~2014년 재정 수입 증가폭은 정부가 발표한 23%가 아닌 3.4%에 불과했다. 20% 가까운 정부 재정이 새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재추산한 랴오닝성 경제성장률은 2016년 -2.5%로 전국 최하위였다.

전국 최하위 랴오닝의 부활...왕양,후춘화 이어 광둥성 서기로

지난 27일 산시성 옌안혁명기념관에서 전시를 관람한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시 주석 뒤에 리시 중앙기율위 서기가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캡처

지난 27일 산시성 옌안혁명기념관에서 전시를 관람한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시 주석 뒤에 리시 중앙기율위 서기가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 신화통신 캡처

리시는 그해 랴오닝성 당대회에서 “당내 정치 질서가 파괴되고 적폐가 깊어 돌려세우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도 없다”며 “부패 척결 투쟁과 청렴한 당풍 건설에 전면적으로 나서 정의의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부패 재조사를 통한 당 간부 전면 교체와 동북경제진흥정책을 앞세워 경제 살리기에 착수했다. 리시는 3개월간 14개 시를 돌며 12개 중점 사업 시행을 시작했다. 상하이에 있는 기업들을 랴오닝성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해 중앙 정부로부터 높은 평가도 받았다.

'부패 무관용'으로 랴오닝성을 제압한 리시는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중앙위원에 선출됐다. 이어 광둥성 당 서기로 승진했다. 왕양(汪洋)과 후춘화(胡春華)도 광둥성 서기를 거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부총리로 직행했다. 리시의 상무위원 진출은 그냥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리시는 “내 정치의 근본은 당과 총서기에 대한 옹호와 충성”이라며 “시 주석과 그의 사상을 수호하는 것이 가장 큰 정치이자 유일한 정치 규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 주석과 함께 근무한 이력이 한 번도 없었지만 예비된 기율위 서기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