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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타고 컨닝쪽지 주는 부모…英총리·구글CEO 탄생의 배경 [세계 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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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출신인 리시 수낵 영국 총리(오른쪽)가 지난 9월 아버지 야시비르 수낵(가운데), 어머니 우샤 수낵과 함께한 모습.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약사로 일했다. 사진 리시 수낵 페이스북

인도계 출신인 리시 수낵 영국 총리(오른쪽)가 지난 9월 아버지 야시비르 수낵(가운데), 어머니 우샤 수낵과 함께한 모습.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약사로 일했다. 사진 리시 수낵 페이스북

영국 사상 최초로 인도계인 리시 수낵(42)이 총리가 되면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도계 유명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정계에선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어머니가 인도인,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의 아버지가 인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에는 더욱 많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 핵심은 인도계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트위터의 퍼라그 아그라왈,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IBM의 아르빈드 크리슈나 등이 전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그 외 리나 나이르(샤넬), 랙스먼 내러시먼(스타벅스) 등이 유명 기업의 CEO로 활약하고 있다.

인도계 성공 이유 ‘높은 교육열’

BBC는 이들의 성공신화 배경에 높은 학력이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모국인 인도나 이민을 한 영국, 미국 등에서 최고의 대학에 진학했다. 수낵 총리는 영국 최고 대학인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경제학)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IT 분야의 CEO들은 인도의 MIT로 불리는 인도공대(IIT) 등 상위권 대학을 나와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석·박사를 땄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 8월 24일 잉글랜드 남부의 햄프셔주에 있는 사우샘프턴에서 아버지가 일반의로 일했던 레이먼드 로드 외과병원 앞에 서서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 8월 24일 잉글랜드 남부의 햄프셔주에 있는 사우샘프턴에서 아버지가 일반의로 일했던 레이먼드 로드 외과병원 앞에 서서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들이 고학력자가 된 배경에는 인도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이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인도의 부모들은 ‘교육’이 사회 사다리를 올라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수낵 부모는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얻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에 영국으로 이주한 수낵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의사와 약사가 돼 영국의 중산층에 진입했다.

14억 인구의 인도는 올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8547억 달러(약 1216조원)로 세계 5위를 기록했지만, 빈부 격차가 심해 대다수는 삶의 질이 높지 않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170달러(약 309만원)로 세계 142위다. 인도 엘리트가 선망하는 직업인 고위 공무원 초임이 100만 원대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는 "한국이 1970~80년대 교육을 통해 중산층 이상의 삶을 이룬 것처럼 인도에서도 그렇다"면서 "공용어인 영어가 유창하다 보니 인도 최고 대학을 나와 장학금 제도를 통해 미국·영국 등에 유학 가서 엔지니어·의사 등 고액연봉을 받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벽 타고 커닝 쪽지 전달하는 부모 

지난 2015년 3월 18일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치러진 인도 비하르주 하지푸르의 한 고사장 건물에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커닝 쪽지를 전달하기 위해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학생들은 시험 도중 창가로 달려가 커닝 쪽지를 전달받았고 감독관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7일부터 치러진 이번 시험은 비하르주에서만 약 1400만 명이 응시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5년 3월 18일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치러진 인도 비하르주 하지푸르의 한 고사장 건물에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커닝 쪽지를 전달하기 위해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학생들은 시험 도중 창가로 달려가 커닝 쪽지를 전달받았고 감독관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7일부터 치러진 이번 시험은 비하르주에서만 약 1400만 명이 응시했다. AP=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입시가 치열하다. 지난 2015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치러진 인도 비하르주 하지푸르의 한 고사장 건물에는 수십명의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커닝 쪽지를 전달하기 위해 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심지어 감독관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지난 2019년에 텔랑갈라주에선 대입 관련 시험 채점 오류로 일부 학생이 0점을 받는 등 문제가 생기자 비관한 학생 19명이 극단 선택을 했다. 고교입시, 의과대학 입시 등 주요 시험에서 시험지가 유출돼 재시험을 치르는 일도 종종 있다.

‘인도판 대치동’도 있다. 라자스탄주 중소도시 코타는 거대한 학원 도시다. 인구 69만명 중 전국에서 온 입시생이 16만명으로 4분의 1에 달한다. 인기가 높은 공대와 의대에 가기 위해 몇 년째 공부하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인도판 메가스터디’인 온라인 강의 서비스 바이주스(Byju’s)는 약 700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구글 CEO "父 연봉 털어 미국행" 

인도 여고생들이 지난 5월 타밀나두주 첸나이의 한 학교에서 시험 보기 전 공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 여고생들이 지난 5월 타밀나두주 첸나이의 한 학교에서 시험 보기 전 공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교육비가 만만치 않지만 일부 인도 부모들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가르치려고 한다. 수낵이 나온 영국 최고의 남자 기숙 사립고교인 윈체스터 칼리지는 등록금이 연간 4만2000파운드(약 7000만원)에 달한다. 의사와 약사인 수낵 부모도 상당한 부담이었다고 한다. 수낵 총리는 "부모님은 교육비를 위해 항상 바쁘게 일을 하셨다"며 "가족의 노력과 희생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차이 구글 CEO는 영국계 기업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연봉과 맞먹는 비행기 표를 사줘서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스타벅스 차기 CEO인 내러시먼은 미국에 기계 부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했던 아버지의 병환으로 대학을 그만둘까 고민하지만,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가 막았다. 그는 7700달러(약 1100만원)만 들고 미국에 와서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마쳤다.

자신의 성공으로 가문을 일으켜 세운다고 여기는 가족주의적 성향도 인도계 성공신화의 배경이 됐다. 김경학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는 "인도인은 한 사람이 해외에 정착하면 시간 간격을 두고 직계인 형제자매와 부모는 물론 사촌 등 친척까지 이주를 시켜 적응을 돕는다"고 전했다.

카스트 상위층, 성공 확률 높아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가 지난 2015년 12월 1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인도 출신인 피차이는 2004년 구글에 입사해 2015년 구글의 CEO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가 지난 2015년 12월 1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인도 출신인 피차이는 2004년 구글에 입사해 2015년 구글의 CEO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인도계의 성공은 카스트(인도의 계급제)로 인한 차별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정부에서 공무원·대입 시험에 달리트 인원 할당제를 도입했지만 혜택을 보는 이는 많지 않다. 해외 유학과 이주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김경학 교수는 "해외 인도 교포가 3200만명인데 달리트는 10% 미만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미국의 다른 1% 인도인』저자 데베시 카푸르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 교수는 "미국 등 해외에서 성공한 인도인들은 주로 상위 카스트(브라만·크샤트리아) 소속"이라면서 "영어 유창성, 고등교육 이수 등에서 이점이 있어서 과학·기술·엔지니어링 등 고급 인력 수요를 원하는 미국의 비자를 쉽게 받아 잘 정착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달리트가 피나는 노력 끝에 해외 유수의 기업에 들어가도 상위 카스트에 소외당해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에는 구글에서 카스트 차별에 대해 진행될 예정이던 외부인사 강연이 사내 인도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취소됐다. 강성용 교수는 "인도인들은 비슷한 계급끼리 결혼 등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 서로 끌어주는 편"으로 "달리트가 상위층으로 진입하는 게 쉽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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