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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기업’ 약속 지키려면…이재용 회장 앞에 놓인 난제들

중앙일보

입력

이사회 의결을 거쳐 회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오전 공판을 마치고 취임 소감을 말하고 있다. 뉴시스

이사회 의결을 거쳐 회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오전 공판을 마치고 취임 소감을 말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년 만에 회장 타이틀을 달게 된 지난 27일. 삼성 내부는 종일 차분한 모습이었다. 이 회장의 취임을 알리는 오전 사내 공지글 외에는 어떠한 공식 행사도 없었다. 같은 날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매출 1위 자리를 대만 TSMC에 내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회장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며 “부회장 때보다 훨씬 어려워진 삼성의 상황을 생각하면 회장 취임에 별도의 의미를 둘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이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첫 소감을 삼성전자 본사가 아닌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밝혀야 했다. 이 역시 이 회장과 삼성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대 회장들의 위업을 이어받아 다시 한번 ‘삼성 신화’를 일궈내야 할 이 회장 앞에 넘어야 할 산이 많아졌다.

당분간 사법 리스크 여전

사법 리스크는 이 회장이 떨쳐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이 회장은 5년 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석방과 재수감을 반복한 끝에 가석방됐고 지난 8월 복권됐다. 하지만 여전히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 재판과 함께 3주 간격으로 금요일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여기에다 삼성웰스토리에 계열사 급식 물량을 몰아줘 모은 자금을 경영 승계에 썼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 자신의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 자신의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뉴스1

법조계에서는 아직도 1심 재판 단계에 있는 삼성물산 의혹 사건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가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본다. 이 회장 측은 경영상 판단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진 합병이며 두 회사 중 어느 한 곳도 손해를 본 곳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간 사법 리스크에 걸려 번번이 주요 의사결정을 앞두고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명절이나 하계휴가 등 법원 휴정기에 맞춰 일정을 조정했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던 순간에도 이 회장은 정작 자신의 재판 불출석 여부를 허가받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당시 법원은 전날 오후 늦은 시간이 돼서야 불출석을 허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월 하만 멕시코공장을 방문해 생산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월 하만 멕시코공장을 방문해 생산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표 M&A 카드’ 나올까

회장직에 오른 만큼 경영 성과에 대한 시험 역시 예전보다 한층 가혹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회장과 삼성을 둘러싼 주변 여건이 호의적이지 않다. 삼성전자의 실적을 사실상 책임져 왔던 반도체 경기는 본격적으로 하락 사이클에 접어들었다. 미·중 패권 갈등이 고조되면서 두 나라 모두에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도 자칫 반도체 전략을 잘못 선택하면 난감해질 처지에 몰렸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가전·스마트폰 수요마저 앞으로 실적에 발목을 잡고 있다.

결국 이 회장이 대형 인수합병(M&A) 카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의 대규모 M&A는 지난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오디오 업체 하만을 80억 달러(당시 약 9조2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때마침 하만은 올해 3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부진한 삼성전자 실적에 힘을 보탰다.

이 회장은 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의 2주기였던 지난 25일 삼성그룹 사장단과 만나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이 회장이 결단한다면 삼성은 언제든 대규모 M&A를 추진할 여력이 충분하다. 올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보유액은 126조원에 달한다. 삼성은 주력 사업인 반도체 이외에도 바이오와 로봇,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분야에서 단번에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전략적 인수합병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개선·컨트롤타워 부활 등 과제 산적

삼성의 경영체제와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순환 출자 문제를 해결하면서 소유와 경영을 안정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지배구조 마련이 당면 과제다. 현재 삼성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와 외부 컨설팅 회사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그룹 전체를 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부활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삼성은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 비서실을 시작으로 구조조정본부(1998년), 전략기획실(2006년), 미래전략실(2010년) 등 그룹을 총괄하는 조직을 운영해 일사불란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했다. 미래전략실은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이 회장이 구속 수감되면서 2017년 폐지됐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 타이틀을 없애며 ‘삼성전자 회장’으로 남은 만큼 과거와 같은 그룹 총괄 컨트롤타워보다는 이사회 중심의 시스템으로 점차 그룹 지배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은 결국 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더욱이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거운 만큼 당장 지배구조 변화보다는 상생 생태계 조성과 국민과 동행에 포커스를 맞추는 자세를 취할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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