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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에 무기 주면 한·러 관계 파탄” 윤 “제공 안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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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호 03면

껄끄러워지는 한·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소방관들이 우크라이나군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유류 탱크를 진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소방관들이 우크라이나군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유류 탱크를 진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을 결정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과 아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한국이 지금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외한 방탄 헬멧과 천막·모포 등 군수물자와 의료물자를 인도적으로 지원해 왔지만 살상 무기는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이 이날 한국의 무기 지원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북한까지 끌어들였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재개하면 한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당신들은 기쁘겠느냐. 이걸 고려하기 바란다”면서다.

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출근길에 푸틴 대통령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사실이 없다”며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국제사회에 연대해 우크라이나에 인도적·평화적 지원을 해왔다”며 “러시아를 포함해 세계 모든 나라들과 평화적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 국회를 대상으로 한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무기 지원을 공개 요청했지만 정부는 무기 대신 비살상 군용품과 의약품만 지원해 왔다.

이처럼 무기 지원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한국을 꼭 집어 경고한 데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이 폴란드에 잇따라 무기를 수출하고 있는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최근 폴란드와 K2 전차 980대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3개 편대(총 48기), K239 다연장 로켓 천무 288문 등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에 더해 폴란드 정부는 국산 레드백 장갑차 도입도 검토 중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폴란드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자국 무기를 지원한 뒤 그에 따른 전력 공백을 한국산 무기로 채우겠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결과적으로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우회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천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하이마스) 못지않게 화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경계심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주장이 한국의 방산 수출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는 지적에 “여러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발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해 적합한 대책을 가지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한국이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지원하지 않은 데 대해 높이 평가했으며 한국과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최근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조바심을 내는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미국에 대해서도 거듭 날을 세웠다. 특히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뒤 “미국의 할머니가 대만을 방문한 것은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8월 중국의 강한 반발 속에 대만을 찾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할머니’라고 지칭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핵무기 사용을 결코 언급한 적이 없다. 핵 위협을 가하는 건 서방 국가”라며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핵무기 사용의 위험은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10년을 맞이했다”며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이 신호를 주기만 하면 (우크라이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우호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가까운 친구”라고 호칭하며 “중국과의 관계는 유례없이 개방돼 있고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석유 감산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브릭스(BRICS) 가입을 지지한다”며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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