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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 무반성” 소비자 심기 건드리면 불매 불씨 거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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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호 09면

SPC사태로 본 불매운동 파장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했거나, 대체재가 많을수록 강하게 지속됐다. 사진은 SPC그룹에 대한 불매운동 현장. [뉴시스]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했거나, 대체재가 많을수록 강하게 지속됐다. 사진은 SPC그룹에 대한 불매운동 현장. [뉴시스]

국내 1위 제과·제빵 기업 SPC그룹을 향한 불매운동이 거세게 번지고 있다. 26일 네이버 카페 등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엔 파리바게뜨·배스킨라빈스 등 이 회사의 28개 브랜드 목록을 공유하면서 “모두 불매하자”는 내용의 글이 쏟아졌다. 글을 올린 네티즌 한 명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이라고 성토하자, 다른 한 네티즌은 “그냥 탄압이 아니라 노동자를 무시하고 조롱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주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공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 15일 SPC 계열사인 SPL의 제빵 공장(경기도 평택)에서 23세 여성 노동자가 기계 안으로 상반신이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숨진 게 발단이었지만,  SPC 측의 사후 처리가 일을 키웠다. 사고 다음날 현장에서 기계 2대의 가동을 재개해 이윤을 우선시하는 인상을 줬고, 고인의 장례식장에 답례품 용도로 빵을 보내 공분을 샀다. 여기에 허 회장이 공식 사과한 지 불과 이틀 만인 23일 다른 계열사인 샤니의 제빵 공장(경기도 성남)에서 40대 남성 노동자가 작업 중에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여론은 더 나빠졌다.

SPC를 향한 불매운동은 얼마나 오래, 강하게 지속될까. 재계는 과거 국내 불매운동의 사례와 몇 가지 특징들로 봤을 때 이번 여파가 심상찮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불거진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이 회사에 아직 또렷한 상흔(傷痕)을 남기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당시 남양유업은 한 지역 대리점을 상대로 ‘물품 밀어내기’(강매)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특히 당시 이 회사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 섞인 폭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돼 ‘갑질’ 논란까지 같이 불거진 게 결정타였다.

SPC 회장 사과했지만 국민 분노 지속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했거나, 대체재가 많을수록 강하게 지속됐다. 사진은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 현장. [연합뉴스]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했거나, 대체재가 많을수록 강하게 지속됐다. 사진은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 현장. [연합뉴스]

이 일이 있기 직전 한때 110만원대에 달했던 남양유업 주가는 이후 폭락을 거듭, 2020년 25만원대까지 추락했고 지금도 35만원 안팎을 기록 중이다. 비슷하게 급감한 시가총액까지 고려해도 기업가치가 9년 만에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이는 당초 1~2년 안에 진정될 듯 보였던 불매운동이 이후로도 이어져 실적이 회복되지 못한 때문이다. 남양유업의 2012년 매출은 1조3403억원, 영업이익은 474억원이었다. 이 숫자는 불매운동이 시작된 2013년 1조2298억원의 매출과 174억원의 영업손실(적자)로 바뀌었고 2014년에도 1조1517억원의 매출, 260억원의 영업손실로 악화됐다.

이후 2016년 반등(매출 1조2392억원, 영업이익 418억원)했음에도 불매운동 전인 2012년의 실적을 회복하지 못하는 등 여파는 이어졌다. 이후 다시 실적이 나빠져 최근 2년간(2020~21년) 영업손실만 각각 767억원, 779억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불매운동 극복을 위해 출혈이 불가피한 할인 행사로 재고를 소진해 영업손실이 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유지하려던 매출마저 2020년 9489억원으로 11년 만에 1조원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도 그 문턱을 못 넘었다. 끝을 모를 실적 부진에 더해진 회사 측의 조급함도 화를 키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남양유업은 지난해 한 공식 행사에서 스테디셀러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실제 효과를 예상하기 힘든 연구 결과”라고 반박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남양유업을 형사 고발하면서 소비자 사이에선 “이젠 허위·과장 광고까지 하느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처럼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외면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경쟁사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2012년만 해도 남양유업에 연매출이 3000억원가량 뒤처진 업계 3위였던 매일유업은 지난해 매출 1조5519억원을 기록, 약 6000억원 차이로 서울우유에 이은 업계 2위 자리를 유지했다.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했거나, 대체재가 많을수록 강하게 지속됐다. 사진은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운동 현장. [뉴스1]

불매운동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을 했거나, 대체재가 많을수록 강하게 지속됐다. 사진은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운동 현장. [뉴스1]

국내 불매운동은 외국 기업을 상대로도 큰 위력을 떨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9년부터 이어진 일본산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유니클로·아사히 등 일본 기업들의 경우다. 당시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반도체 소재 등의 한국을 향한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반일 노선을 유지한 당시 한국 정부에 대한 보복과 지지층 결집,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 등의 정치·경제적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의류·맥주 등 소비재 분야에서 일어난 한국의 불매운동 초기만 해도 일본의 반응은 느긋했다. 양국 정치권이 빚은 문제라며 심각하게 보지 않는 현지 반응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이런 관측보다 훨씬 심각하게 전개됐다. 초반 불매운동의 핵심 대상으로 지목됐던 유니클로의 본사(패스트리테일링) 임원이 공식석상에서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게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후 고작 두 달 만에 국내 유니클로 매장 3곳이 문을 닫는가하면, 의류 외에도 맥주와 자동차 등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소비재 전반에서 불매운동이 한층 거세졌다. 회계연도 기준 유니클로의 2019년 한국 매출은 1조3780억원이었다. 이 숫자는 2020년 6297억원, 2021년 5824억원으로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일본 맥주 불매운동 현장. [뉴시스]

일본 맥주 불매운동 현장. [뉴시스]

국내 일본 맥주 수입량도 2018년 8만6675t에서 2019년 4만7330t으로 급감하더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20년 6489t, 2021년 7751t으로 2~3년 전인 2018년 대비 90% 넘게 줄었다. 그러면서 아사히·기린 등 일본 맥주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던 일본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2019년 불매운동 직전 20%대였던 일본 자동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직후 7%대로 확 떨어졌다. 이 여파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일본 자동차 점유율은 7.5%(등록대수 기준)다. ‘큐브’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닛산은 2020년 한국에서 아예 철수하기도 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처음엔 금방 꺼질 것 같았던 이들 불매운동의 불씨가 이렇게 장기간 강하게 남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언행으로 대중의 ‘역린’을 건드린 게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익명을 원한 미디어 전공 교수는 “남양유업 직원이 녹취록이 나올 정도로 수위가 센 갑질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유니클로 임원이 한국을 도발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불매운동이 그 정도로 거세진 않았을 것”이라며 “특히 남양유업의 경우 국내 정서상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갑질과 관련된 게 이미지 개선에 있어 치명적 악영향으로 다가왔다”고 해석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존 제품·서비스 수요가 거리낌 없이 다른 쪽으로 향할 수 있는 ‘대체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불매운동의 지속성도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남양유업의 우유나 유제품 등 모든 라인업은 국내만 해도 서울우유와 매일유업 제품들로 쉽게 대체할 수 있다. 유니클로도 스페인 자라(ZARA)나 신성통상의 탑텐, 이랜드리테일의 스파오 등 대체 가능한 국내외 제조·유통 일괄형 패션(SPA) 브랜드가 많다. 일본 맥주나 자동차도 브랜드 가치와 맛 또는 품질에서 유럽·북미 브랜드로 쉽게 대체된다.

중국서 뭇매 테슬라, 되레 실적 개선

소비자 입장에선 불매운동 대상 기업이 아무리 할인 행사를 하더라도 굳이 ‘꺼림칙한’ 소비를 안 해도 무방한 상황인 셈이다. 해외 주요 불매운동 사례를 봐도 불필요한 언행이나 대체재의 유무(有無)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난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2분기 중국 시장에서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된 데다, 지난해 4월 상하이 모터쇼에서 한 여성 차주가 테슬라 전기차의 브레이크 고장 때문에 사고가 났다며 전시 차량 지붕 위에 올라 시위를 해 중국인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2분기 테슬라의 중국 시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외려 104.2% 증가했다.

테슬라의 중국 시장 연매출도 지난해 138억 달러로 2년 연속 전년 대비 100% 넘게 증가했다. 이는 중국 시장에서 BYD 등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위협적인 경쟁사들이 있어도, 안전에 대한 신뢰도나 ‘성공한 사람의 차’라는 식의 브랜드 이미지가 중시되는 자동차 분야 특성상 대체재 수준의 중국 전기차는 거의 없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까지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산 전기차의 대부분도 테슬라나 폴스타(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등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미국·유럽 브랜드일 정도로 브랜드 가치와 품질 면에서 중국 전기차는 갈 길이 먼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연설에 대한 트위터 게시물에 “중국이 이룬 경제적 번영이 정말 놀랍다”고 댓글을 남기는 등, 지나치다 싶을 만큼 친화적인 언행으로 발 빠른 진화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SPC 입장에선 고인의 장례식장에 빵을 보낸 행동, 지난해 테슬라와 달리 지금까지의 남양유업이나 유니클로 등처럼 대체재가 다양한 점 등은 향후 불매운동의 지속성과 강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갖게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SPC가 공식 사과 외에 근본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안전 대책 마련에 힘쓰는 행보를 꾸준히 보여야 불매운동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천영우 인하대 환경안전융합대학원 교수는 “식품 업체들은 영업이익률이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실적을 위해) 안전 설비 투자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며 “안전 관리에 미흡했던 과거를 거울 삼아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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