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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 2만명, 치료 예산 100명 분…병상 없어 입원도 못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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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호 08면

‘마약과의 전쟁’ 공염불 우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1년간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운영해 마약 문제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1년간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운영해 마약 문제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장진영 기자

“스스로 마약중독임을 인정하는데 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치료를 받는 것도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교환학생을 하던 중 먼저 유학을 가있던 한국인 지인의 권유로 대마초를 시작하게 된 A(26)씨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호기심에 접했던 마약은 한국에서도 A씨를 옭아맸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 초기에는 브로커가 아니라 함께 있던 지인들이 지속적으로 약을 하자고 권했다”며 “점점 겁이나 그만두려했지만 그때는 이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7일 기자와 만난 A씨는 한국에서 마약을 구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고 말한다. 그는 “한 다리만 건너도 바로 브로커가 있다”며 “영화처럼 음지의 범죄자가 아니라 같은 학생이나 동료가 브로커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브로커를 통해 4년 여간 마약을 복용한 A씨는 올해 초 가족들의 도움으로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전국의 병원에 문의했으나, 마약 중독 환자는 받지 않는다며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만 받았다”며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금 이 의지가 중독에 잡아먹힐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라도 입원하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그곳에서 받을 눈초리와 편견은 또 하나의 장애물”이라며 막막함을 호소했다.

“마약 경험 땐 브로커가 99% 다시 연락”

마약청정국이란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나라(Drug Free Country)를 의미한다. 통상적으로는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일 경우 국제연합(UN)이 청정국으로 지정한다. 마약 청정국이라 자부했던 한국은 2016년 이미 이 기준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다. 마약은 연예인, 운동선수는 물론 A씨 같은 일반인도 가리지 않는다. 곳곳에서 마약으로 인한 문제들이 터져 나온다. 몇몇 페스티벌 공연에서는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암페타민과 같은 마약이 유통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마약은 한번 손을 대면 헤어나기 어렵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과거 마약 관련 수사를 할 때 ‘한 잔 하자’라는 은어가 투약하자는 뜻으로 쓰이곤 했다”며 “교도소에서 나올 때는 죽어도 마약을 다시 하지않겠다는 사람도 브로커에게 이 말을 들으면 벌써 가슴이 울렁거려하더라”고 전했다. 윤 교수는 경찰 재직 시절 서울청 마약수사대에서만 12년 근무한 마약분야 전문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검찰청과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1만2613명이었던 마약사범은 2021년에는 1만6153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8월까지 1만2233명이 검거돼 증가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나라 마약사범의 60%가 미래세대인 20~30대 청년이라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마약류 사범 검거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7년 검거된 마약사범 8887명중 20~30대는 총 3713명으로 41%가량이었지만 2021년 2030 세대 비율을 약 60%까지 상승했다. 4년 사이에 비중이 1.5배로 높아진 것이다. 청년세대의 경우 한번 마약을 접한 뒤 제대로 된 재활이나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긴 세월에 걸쳐 삶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정작 마약 중독자를 치료, 보호해줄 시설은 계속 줄고 있다. 재활 시스템마저 충분치 않아 재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약류 범죄자를 전담해 치료하는 치료보호기관은 전국 21곳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최근 5년(2017~2021년)간 21개 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마약류 중독 환자는 총 1280명인데, 이 중 인천참사랑병원(416명)과 국립부곡병원(414명)이 전체 환자 중 64%에 가까운 환자를 치료했다. 지난해 환자를 단 1명도 받지 않은 곳은 13곳이었고, 이 중 8곳은 5년간 환자를 받지 않았다. 치료보호기관의 총 병상 수는 2017년 330개에서 2021년 292개로 감소했으며, 의사 수도 같은 기간 170명에서 132명으로 줄어들었다. 윤 교수는 “한번 마약을 복용한 사람에게는 거의 99% 확률로 브로커가 다시 연락한다”며 “마약 복용자에 대한 사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의 힘으로는 영영 마약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마약 중독자가 지정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의뢰하면 지방자치단체 심의위원회 승인을 거쳐 최대 1년간 무상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를 끝낸 병원이 병원비를 청구하면 지자체와 복지부가 병원비를 반씩 부담한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병원은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약류중독재활센터인 인천다르크의 최진묵 센터장(인천참사랑병원 상담실장)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센터는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국립부곡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 단 2곳뿐”이라며 “그마저도 국립이 아닌 인천참사랑병원은 지원금이 적어 사비를 털어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8년까지 가장 많은 마약 중독자를 치료했던 강남을지병원은 미수금 누적으로 경영이 악화해 치료 병원 지정을 해제하기도 했다.

최 센터장은 “치료보호 제도 예산으로 책정된 금액이 4억원 가량인데 한명의 마약 중독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1인당 병원비가 380만원이다”며 “100명이 한 번씩만 입원을 해도 다쓰는 비용인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 약물 중독자는 2만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도 병원에서 상담을 잘 받아서 재활센터까지 가는 약물 사용자들은 상위 0.1%”라며 “국가에서 강제하지 않으면 대다수의 약물사용자들은 병원까지 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약물중독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경남의 국립부곡병원. [사진 국립부곡병원]

약물중독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경남의 국립부곡병원. [사진 국립부곡병원]

실제 법원이 마약사범들에게 치료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많지 않다. 지난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마약사범 중 치료 명령을 함께 부과 받은 수는 23건에 불과했다. 2016년 개정된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원은 집행유예를 내린 마약사범에게 마약중독치료를 받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 실시 이후 치료명령 처분을 받은 마약사범의 수는 2016년부터 2022년 4월까지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9892명 중 156명뿐이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4건, 2018년 8건, 2019년 60건으로 늘었다가 2020년 56건, 2021년 23건, 2022년 1월부터 4월까지는 5건으로 조사됐다.

막상 법원이 치료명령을 내리더라도 이를 위반했을 때 강제할 법적 수단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법원의 치료 명령은 권고의 성격이 강해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마약중독자를 찾기가 어렵다.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치료에 응하지 않는 등 준수사항을 위반할 경우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지만 실제로 치료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7년간 집유 9892명 중 치료명령 156명

전문가들은 마약문제에서 처벌도 중요하지만 치료나 재활 등의 환경도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대표변호사는 “치료 명령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마약중독치료기관에 예산을 늘리고 전문성을 가진 인원들을 충분히 배치해야 재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강제성을 부여해야한 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흥희 교수는 “국가가 권고가 아닌 필수로 일정 기간 동안 지정된 병원이나 센터에서 무조건적으로 재활치료를 받도록 규정해야 한다”며 “이중처벌 논란이 벌어질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 공익을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진묵 센터장은 “무엇 보다 마약 진료 관련한 의료수가 인상이 시급하다”며 “그래야 약물 사용자들이 제대로 된 진단을 받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약물 중독자들에 대한 섣부른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몇몇 특수한 케이스가 아닌 대부분의 약물중독자는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하다가 한번의 실수로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중독자들에게 평생 낙인을 찍고 비난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도 굉장한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약물 중독자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에 대해 비난이 아닌 박수를 쳐줘야 한다”며 “그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양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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