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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30년 고독, 내면의 자기중심 세워야 우울 다스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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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호 02면

[지혜를 찾아서]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스님

월정사 내 전통찻집 청류다원에서 자현스님이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빈 기자

월정사 내 전통찻집 청류다원에서 자현스님이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빈 기자

‘그 누구도 혼자서는 지혜로울 수 없다.’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의 말이다. 파편이 된 지식과 쓸모없는 정보가 넘치는 세상. 우리를 참되고 행복한 길로 이끌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 새 시리즈 ‘지혜를 찾아서’를 시작하게 만든 질문이다. 고승대덕과 성직자와 인문학자…. 뿐만 아니라 동네 식당 쥔장 아줌마, 마을길을 쓸고 있는 할아버지까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만나러 갈 것이다.

첫 행선지는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스님을 뵈었다.

월정사의 가을이 깊고 붉었다. 한해살이를 마친 나뭇잎이 전통찻집의 나무 탁자 위로 내려앉았다. 계곡물이 괄괄괄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한강의 시원지인 금강연을 보며 스님이 입을 열었다. “한강은 고정돼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한강이라고 합니다. 현상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것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현상을 다르게 보는 게 대승불교의 반야 사상입니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 즉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가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거지요.”

기도와 명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국 쓰촨성에 있는 한 사찰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자현스님. [사진 자현스님]

중국 쓰촨성에 있는 한 사찰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자현스님. [사진 자현스님]

법문 같은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붓다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에 투자하라고 가르쳤어요.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만족이 아닌 내적인 각성입니다. 세상을 보는 명확한 기준을 갖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면을 컨트롤하는 거죠.”

‘성공을 쟁취하는 파워 실전 명상’이라는 책을 내셨네요.
“저는 현실과 유리된 명상은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관통하며, 자존감을 세워주고 내면의 행복을 찾도록 이끄는 게 진정한 명상입니다. 명상을 주 5일 근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5일간 직장에서 일하다 번아웃 된 상태에서 주말에 명상하면서 힐링하고, 다시 전쟁터로 나서는 거죠. 이런 무한반복은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겁니다. 지금 당장, 젊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멘탈이 강해져서 성공을 쟁취하고, 노년은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야죠.”
명상을 하면 뭐가 좋아집니까.
“궁극으로 가면 깨달음이나 신통(神通)을 얻을 수 있지만, 제가 제시하는 건 엘리트체육이 아닌 생활체육, BTS나 블랙핑크가 아닌 서수남 노래교실 정도입니다. 급속한 노령화로 앞으로는 30년 이상 혼자 살아야 합니다. 쉽게 죽을 수도 없어요. 이분들이 명상을 통해 고독과 우울, 불면증, 치매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려면 내면의 자기중심을 세우는 명상이 꼭 필요합니다.”

지난여름, 지인의 권유로 자현스님이 진행하는 1박2일 명상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 명상은 세상 편하게 누운 상태로 진행됐다. 눈을 감은 채 미간에 의식을 두고 천천히 호흡을 한다. 호흡 길이에 맞춰 들이쉬면서 ‘현성법신(現成法身)’, 내쉬면서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조용히 읊조린다. ‘지금 진리가 성취되니,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언제나 고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라는 말씀에 따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스님은 “작은 빛 또는 구체적인 형상이 보이거나 귀에 뚜렷한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고, 유체이탈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큰 의미는 없습니다. 명상의 효과는 내면을 정리하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요”라고 설명했다.

스님과의 대화는 기복(祈福)과 기도로 옮겨갔다.

기복은 종교의 핵심이고 신앙의 본질이라고 하셨어요.
“일본 학자가 쓴 ‘유교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보면 유교는 원래 상·제례(喪· 祭禮)에서 시작했고, 유학자들은 장례지도사 같은 역할이었어요. 이후 불교 영향으로 이기론·심성론 같은 세련된 관념을 제시하며 기복 종교의 원형을 탈피하려 했죠. 그러다 판이 흔들리면서 유교가 몰락하고, 기복적 요소인 상·제례만 남은 겁니다.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 본성이 있는 한 종교는 합리성만 갖고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내가 그것을 믿어서 행복할 수 있나, 복 받을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자현스님이 진행한 명상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누워서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자현스님]

자현스님이 진행한 명상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누워서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자현스님]

불교에서는 ‘복 짓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건 복 있는 사람 쪽에 가까이 가는 겁니다. 재벌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기회가 더 생기겠죠. 복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재수 없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비 피하려다 벼락 맞는 수도 있어요. 불교에서는 가장 복이 많은 분을 부처님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부처님 가까이 가서 그분을 닮으려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 닮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염불도 하는 거네요.
“맞습니다. 기도와 명상은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닮고 싶은 대상을 생각하는 게 기도고, 생각이 잘 안 나니까 이름을 부르는 게 염불입니다. 나를 버린다기보다도 상대를 닮아가면서 나를 더 찾아가는 거죠. 동양 종교의 목표는 나를 찾아서 내가 성인이 되는 데 있는 거니까요. 자신을 똑바로 세워서 ‘나를 중심으로 우주를 돌린다’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존재할 수 없어요.”

박사학위 6개, 등재 학술지 논문 수 국내 1위, 공저 포함 저서 60권…. 자현스님의 별명은 ‘논문 제조기’다. 끊임없이 쓰고, 발표하고, 강의하고 유튜브를 찍는다. 그는 ‘어려운 걸 어렵게 말하는 건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고 ‘쩌리’(중심이 못 되고 주변을 맴도는 사람), ‘쌉소리’(헛소리라는 뜻의 SNS 신조어) 같은 말도 즐겨 쓴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학위를 따고 책과 논문을 쓰시나요.
“할일이 없어서(웃음). 일 삼아서 하는 게 아니고 소일삼아 하는 거예요. 홈쇼핑 보면서 십자수 놓는 정도랄까. 논문 쓰는 건 마라톤과 같아요. 매일 10㎞라도 뛰는 사람은 덜 힘들지만 1년에 한두 번 완주하려면 죽을 맛이거든요. 저는 상시 전투태세로, 책이든 논문이든 계속 작업이 돌아가고 있죠. 간디가 물레 돌리듯 그냥 일상이 된 거죠. 따로 수업 준비를 안 해도 돼요. 책이나 논문으로 자료 정리가 끝났으니 약을 팔기가 좋죠(웃음).”

종교, 합리성만 갖고 살아남을수 없어

자현스님이 경주 남산 보리사에 있는 석불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자현스님]

자현스님이 경주 남산 보리사에 있는 석불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 자현스님]

스님은 불교와 동양학 콘텐트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되겠네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영화 시나리오 같은 것? 웹툰·영화·드라마·게임 이런 데서 하나만 터지면 절 100개 짓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유교·불교·도교가 절묘하게 섞인 동아시아의 정신을 호출해 문화 상품을 만드는 거죠. 인셉션(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주연 ‘꿈도둑’ 이야기) 같이 불교가 드러나지 않는 불교 영화, 매트릭스처럼 철학적 배경이 녹아 있는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감독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스님은 뭐라고 불리고 싶으신가요.
“그냥 ‘영원한 쩌리’가 좋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는 쩌리기 때문에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봐요. 어렸을 때 노자 철학에 꽂힌 이유가 노자는 1등주의가 아니었거든요. ‘1등 때문에 꼴등이 생긴 거다. 1등을 조지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 이거 굉장히 재밌어요. 저는 특수한 사람보다는 보편적인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쩌리가 찾을 수 있는 기쁨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헤어질 시간이 됐다.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스님의 대답이 죽비처럼 떨어졌다.

“너 자신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다. 유일한 것은 비교 대상이 없고 비교 대상이 없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다. 이게 ‘인식 주체의 확립’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세상에 똑같은 존재는 없어요. 모나미 볼펜 100만 자루를 찍어내도 미세하게 다릅니다. 하물며 인간은 그 누구와 비교되어서도 안 돼요. 그 유일성을 깨달으면 영원한 행복이 옵니다.”

자현스님, 동국대(미술·미술사·역사교육·국어교육), 성균관대(동양철학), 고려대(철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정사 교무국장, 중앙승가대 교수 및 불교학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선불교 관련 연구와 명상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으며, 유튜브 〈자현스님의 쏘댕기기〉, BTN 불교TV의 〈붓다로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찰의 상징체계〉 〈붓다 순례〉 〈스님의 공부법〉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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