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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로 완전 찬밥 신세…비닐하우스 갇힌 고인돌 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0~3000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고인돌이 강원 춘천시 의암호의 섬 중도에 위치한 하중도 생태공원 비닐하우스에 방치되고 있다. 박진호 기자

2000~3000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고인돌이 강원 춘천시 의암호의 섬 중도에 위치한 하중도 생태공원 비닐하우스에 방치되고 있다. 박진호 기자

방치된 ‘고인돌 48기’에 달해

28일 오전 강원 춘천시 의암호의 섬 중도에 있는 하중도 생태공원. 레고랜드 인근에 있는 이곳엔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가 있다. 2m 높이 펜스에 둘러싸여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백개의 돌이 있는데 모두 검은색 가림막에 덮여 있다.

이 돌은 2000~3000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고인돌(지석묘)과 고구려 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고대 상류계층의 무덤) 등에서 나왔다. 비닐하우스에서 방치되고 있는 고인돌은 48기에 이른다.

이 유물은 원래 레고랜드가 건설된 터에 있었다. 레고랜드 공사가 진행되면서 2013년부터 2017년 사이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환경단체는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선사시대 유적이 비닐하우스에서 오랜 기간 방치돼 복원이 불가능해질까 우려하고 있다.

2000~3000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고인돌이 강원 춘천시 의암호의 섬 중도에 위치한 하중도 생태공원 비닐하우스에 방치되고 있다. 박진호 기자

2000~3000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고인돌이 강원 춘천시 의암호의 섬 중도에 위치한 하중도 생태공원 비닐하우스에 방치되고 있다. 박진호 기자

복원 ‘불가능’해질까 우려 

현장에서 만난 오동철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은 “이대로 놔두면 세계적 가치를 지닌 대규모 선사유적이 그냥 묻혀버리게 될 것”이라며 “더 오랜 시간 방치하면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오 사무국장은 "앞서 복원한 고인돌만 봐도 원형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시멘트를 발라 고정한 데다 순서도 뒤죽박죽이다”라고 지적했다.

레고랜드는 국내 최초 글로벌 테마파크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사업 부지에서 대규모 청동기 시대 유구가 발견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2014년과 2017년 문화재청 매장문화재 분과위원회에서 고인돌 등 선사유적을 유적공원과 유물박물관에 보존하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았다.

레고랜드 사업추진을 위해 시행된 2013년 1단계 발굴조사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물인 고인돌 101기, 집터 917기, 구덩이 355기, 환호(마을을 방어하기 위한 도랑) 등 1400여 기의 유구가 발굴됐다. 이후 2017년까지 진행된 발굴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구 8기, 청동기 시대 유구(遺構) 2205기, 원삼국 시대(기원전 100년~기원후 300년) 유구 772기 등이 발굴됐다.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주차장 인근에 있는 고인돌 보존유적지. 레고랜드 개장 전에 복원된 이 고인돌은 돌의 순서가 맞지 않고 시멘트 등으로 고정돼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주차장 인근에 있는 고인돌 보존유적지. 레고랜드 개장 전에 복원된 이 고인돌은 돌의 순서가 맞지 않고 시멘트 등으로 고정돼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주차장 인근에 있는 고인돌 보존유적지. 레고랜드 개장 전에 복원된 이 고인돌은 돌의 순서가 맞지 않고 시멘트 등으로 고정돼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 춘천시 중도에 있는 레고랜드 주차장 인근에 있는 고인돌 보존유적지. 레고랜드 개장 전에 복원된 이 고인돌은 돌의 순서가 맞지 않고 시멘트 등으로 고정돼 있다. 박진호 기자

유물 길게는 8년 이상 ‘비닐하우스 살이’

강원도는 레고랜드 옆 11만㎡ 규모의 터에 100억원을 들여 ‘중도 선사유적 테마파크’를 짓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레고랜드 개장보다 앞선 2020년 12월 이전에 선사유적 테마파크를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사업은 사업비 281억원을 들여 9만5130㎡ 터에 유적공원과 박물관을 짓는 사업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아직 첫 삽조차 뜨리 못하면서 당시 발굴 조사된 유물 등은 길게는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닐하우스에 방치되고 땅속에 그대로 묻혀 있다.

오 사무국장은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유적공원과 박물관을 만들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이번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강원도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유물을 보존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한편 레고랜드 개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발생한 이번 사태의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났다가 일정을 하루 앞당겨 귀국한 김진태 강원지사는 지난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서 12월 15일까지 (보증채무 전액을) 갚겠다”고 재차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앞서 선취이자 만기일인 2023년 1월 29일까지 예산을 편성해 전액 상환할 계획을 밝혔다가 이후에도 사태가 확산하자 상환 시기를 45일이나 앞당겼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태 진정시키려 상환 일 ‘45일 앞당겨’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레고랜드 조성 사업은 최문순 전 강원지사 역점사업으로 시작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자금 부족과 계획 변경 등으로 기공식만 3차례 열렸다. 개장 시기도 7차례나 연기됐다.

레고랜드 사업은 2011년 강원도와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 투자합의각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2013년엔 강원도와 멀린 등이 출자한 GJC가 2300억원을 투자해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내용의 본 협약이 체결되면서 사업이 본격화된다.

하지만 이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양측은 2018년 총괄개발협약(MDA)을 통해 멀린이 1800억원을, GJC가 800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레고랜드 주변 도로 등 기반공사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GJC는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현장사무소 간판. 연합뉴스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현장사무소 간판. 연합뉴스

땅 팔아 빚 갚는다더니 ‘매각 실적 1개 필지’

만기는 2022년 9월 28일. 실적이 전무한 GJC가 발행한 채권이지만 강원도가 보증을 선 덕에 신용평가사로부터 A1 등급을 부여받았다. 주간사인 BNK투자증권이 인수했다가 현재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에 팔린 상태다. GJC는 레고랜드 주변 부지를 팔아 ABCP를 갚을 계획이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GJC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실제 강원도와 GJC는 그동안 자금 문제에 대해 주변 부지를 매각해 사업비를 조달하면 된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매각 실적은 사실상 ‘0’에 가깝다. GJC가 보유한 중도 내 땅은 41만7000㎡로 이 가운데 36만㎡(86%)를 매각했고 5만7000㎡(14%)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중 강원도와 GDC가 산 부지를 제외하면 잔금까지 치르고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된 곳은 1만3000㎡ 규모의 1개 필지뿐이다.

이뿐 아니라 사업착수 11년 만인 지난 5월 개장한 레고랜드는 그동안 ‘불공정 계약’, ‘시행사 간부 비리’, ‘수익률 축소 의혹’ 등이 계속 제기됐다. 이런 이유로 김진태 지사는 당선 후 전임 최문순 도정이 치적으로 내세웠던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집중적으로 들어야 보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5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강원중도개발공사 공사대금 조기집행 대책위원회가 레고랜드 기반시설공사 대금 지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강원중도개발공사 공사대금 조기집행 대책위원회가 레고랜드 기반시설공사 대금 지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불공정 계약’ ‘시행사 간부 비리’ 논란 

강원도는 멀린에 테마파크 부지 28만790㎡를 최대 100년간 무상으로 임대했다. 땅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강원도 몫은 거의 없다. 강원도와 멀린은 최초 계약 당시 테마파크 연간매출이 800억원 초과 시 10%의 수익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멀린이 직접 투자를 하기로 하면서 수익률 재조정에 들어갔고 1000억원 이상인 경우 0.18%로 수익률이 낮아졌다. 10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해도 받는 돈은 1억8000원에 불과한 셈이다.

강원도는 보증 채무 상환 계획과는 별도로 오는 11월 중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할 예정이다. 법원의 기업회생 개시 결정 여부는 4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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