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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플링(dumpling) 아닌 '만두' 즐기는 글로벌 힙스터 [비크닉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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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몇 년 전만 해도 '한식 세계화가 어려운 이유'가 언론사들의 단골 기삿거리였습니다. 맛의 표준화가 어렵고 조리법이 복잡하며, 문화콘텐트 개발에 게으르다는 등의 이유가 꼽혔죠. 최근 영화·드라마·K팝 등 한국 콘텐트가 확산하면서 K 푸드 진입 장벽은 한층 낮아졌습니다. 무관심이 관심거리가 되고, 두려움이 호기심이 됐죠. 지난해 K 푸드 수출액은 사상 최초로 1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요. 김, 한국 장류, 라면, 김치, 만두 등이 성장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K 푸드의 열광 뒤엔 한식 세계화를 향한 여러 기관과 기업의 K-푸드 진출 고군분투가 담겨있는데요. 비크닉에선 세계인들이 특별한 날이 아닌 일상에서 한식을 즐기게 하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달려온 'K 푸드 자존심' 비비고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글로벌 한식을 일상으로

한국의 대표 음식 비빔밥. 여러 재료가 뒤섞이면서 맛이 어우러지고 영양의 균형까지 잡히는 건강식입니다. 비비고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한국 식문화 글로벌 확산'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2011년 출범한 세계 한식 통합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을 '비비고'로 만든 데에는 비빔밥처럼 건강한 한국의 가공식품을 전 세계 누구나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전 세계인의 식탁에 한식을 올리는 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오래전부터 품은 꿈이자 큰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한식이 세계 식문화의 주요 카테고리를 차지하게 되리라 확신하고, 비비고라는 이름으로 '한국 식문화 글로벌 확산'의 첫걸음을 내디딘 거죠.

브랜드 비비고는 '비빔'과 영어 '고(go)'를 합친 합성어에서 비롯됐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브랜드 비비고는 '비빔'과 영어 '고(go)'를 합친 합성어에서 비롯됐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시작은 '만두'였습니다. 중국·일본식 만두와 달리 얇은 피, 고기와 야채가 조화롭게 섞인 꽉 찬 소를 강조하며 CJ제일제당은 덤플링(dumpling·만두의 영문 표기명)과는 다른, 한국만의 창의적 '만두'를 선보였습니다. 연이어 내놓은 비비고 햇반, 치킨, 김, 김치, K 소스는 각 잡힌 무거운 한식이 아닌 누구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건강한 한식을 퍼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식 고유의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융합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점을 한식의 경쟁력으로 꼽았습니다. 이규민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부학장(외식 경영학 박사)은 "식품 기업들이 (그동안) 창의적인 도전을 많이 해왔다"며 "프라이드치킨이 독특한 한국만의 양념(K 소스)을 만나서 외국인이 가장 체험하고 싶은 한식 1위가 됐다는 건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트와 K 푸드의 공통분모는 결국 '비빔' '융합'"이라며 "반도에 있어 대륙과 해양 양쪽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합하는 데 능하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 유전자 틀로 보면 지금 한식도 과거처럼 좁은 의미가 아니라 훨씬 개방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만두를 뜻하는 영문 덤플링(Dumpling) 대신 한국어 발음 만두(MANDU)를 그대로 표기한 비비고 제품. 사진=CJ제일제당

만두를 뜻하는 영문 덤플링(Dumpling) 대신 한국어 발음 만두(MANDU)를 그대로 표기한 비비고 제품. 사진=CJ제일제당

덤플링 아닌 '만두(Mandu)'가 가능했던 이유

아무리 좋은 제품이어도 유통이 잘 돼야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특히 냉동식품은 콜드 체인 확보가 관건인데요. CJ제일제당은 2018년 미국 현지 냉동식품 업체 쉬완스 컴퍼니를 인수합니다. 미국 내 17개 생산 공장과 10개 물류센터, 다양한 B2C 유통채널을 확보한 회사였는데요.

코로나 19 팬더믹 시기, 식품업계도 국내외 생산·수출이 주춤해졌지만 쉬완스를 품에 안은 CJ제일제당은 미국 시장에서 오히려 날개를 달았습니다. 고기와 야채가 고루 섞인 한국 만두는 건강한 가공식품이라는 이미지를 확립하면서 쉬완스 유통망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2022년 현재 미국 시장에서 비비고 만두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3조원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비비고 만두를 집어 들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미국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비비고 만두를 집어 들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K 컬처와 K 푸드의 시너지를 내다

'단순 노출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반복 노출할수록 호감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요. CJ그룹은 2012년부터 미국 LA, 뉴욕, 일본 도쿄 등에서 이어온 세계 최대 K 컬처 페스티벌 KCON, 세계적인 프로 골프 대회 더 CJ 컵 등 각종 대규모 이벤트를 열며 '비비고' 브랜드를 대중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했죠. 한국 음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겁니다.

지난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콩가리 골프 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정규대회 더 CJ컵에서도 비비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코스 중간 두 군데 마련된 '비비고 코리안 키친'은 식사 시간 전후로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갤러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비고를 상징하는 대표 메뉴 만두(Mandu)를 비롯해 한국식 닭강정(Korean Crunchy Chicken)이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콩가리 골프 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정규대회 더 CJ컵에서 갤러리들이 비비고 제품을 즐기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지난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콩가리 골프 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정규대회 더 CJ컵에서 갤러리들이 비비고 제품을 즐기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K 푸드는 스토리와 맞물려 더 진가를 발휘합니다. 단순 제품 배치, 노출에서 나아가 식품에 얽힌 이야기를 자연스레 극에 녹이기도 하는데요. 콘텐트 자체 제작과 식품 생산이 동시에 가능한 CJ그룹은 복합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셈이죠. 정 평론가는 "이제는 한국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평하는 데서 나아가 (글로벌 소비자들이) 그 음식을 즐기는 T.P.O(시간·장소·목적)까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드라마 등 콘텐트를 통해 한식을 즐기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전해주면서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지금 한식 세계화 단계는)1에서 10으로 생각하면 5를 넘었다고 본다. 1에서 5까지 오는 데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5에서 10으로 가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속화될 수 있다"며 "배고픔을 채우는 기능적 측면에서 나아가 한식을 먹으면서 다채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서 극 중 주인공이 비비고 왕교자 만두를 조리하고 있다. 사진=CJENM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서 극 중 주인공이 비비고 왕교자 만두를 조리하고 있다. 사진=CJENM

자발적 '선택' 이어지려면

K 푸드 확산세는 거세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 여전히 노력할 부분도 많습니다. 일방의 한식 '전파'가 아닌 자발적인 그들의 '선택'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각국 소비자들의 식문화에 쉽게 어우러질 수 있는 차별화 전략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CJ제일제당은 이미 비비고 만두로 성공을 거둔 미국 사례를 교과서 삼아 유럽 시장 역시 만두, 햇반(가공밥), 치킨, 김 등 전략 상품 중심으로 세를 키울 계획입니다.

'비비고 김'은 유럽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반찬 개념이 아닌 간식(스낵)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바삭한 식감을 한층 개선하고 먹기 좋게 스틱 형태로 제품 외형을 바꿨습니다. 씨 솔트(Sea Salt), 코리안 바비큐(K-BBQ), 핫칠리(Hot Chili) 등의 맛도 개발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식문화가 보수적인 유럽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입니다.

유럽 시장 확장을 위해 비비고가 내놓은 김 스낵 제품. CJ제일제당은 반찬 개념이 아닌 간식(스낵)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해 식감을 한층 개선하고 먹기 좋게 스틱 형태로 제품 외형을 바꿨다. 사진=CJ제일제당

유럽 시장 확장을 위해 비비고가 내놓은 김 스낵 제품. CJ제일제당은 반찬 개념이 아닌 간식(스낵)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해 식감을 한층 개선하고 먹기 좋게 스틱 형태로 제품 외형을 바꿨다. 사진=CJ제일제당

정 평론가는 "K 푸드가 '힙(hip)'한 음식이 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야' '한식이야' 어깨에 힘을 주는 거로 끝날 게 아니라 글로벌 사회 문화 전체 분위기를 식품 기업이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또, "요즘 글로벌 문화는 모두 '다양성'을 우선 가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다양성 안에 한국 음식도 하나의 선택지로서 제대로 각인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글로벌 한식 일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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