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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시위는 테러" 항의에, 전장연 "우린 21년을 참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1차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세계 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12월 3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 세운 횟수다. 보통 오전 7시 30분경 시작해 모든 역마다 승하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역마다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 소요돼 시위 때마다 1시간~1시간 반 가량 열차가 지연됐다. 전장연의 승하차로 한 열차가 멈춰서면 뒤따르는 열차도 모두 지연돼 피해를 보는 사람의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부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전장연 시위가 열달 넘게 이어지면서 출근길 시민들 사이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은 외치면서 다른 사람의 이동권은 침해해도 되느냐”“테러나 다름없다”는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다. 지난 26일 중앙일보와 만난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다. 탈 때마다 ‘정말 죄송하다’고 한다”면서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17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17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꼭 멈춰 세워야 하나…“다른 방식으로 됐으면 그 길로 갔을 것”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김남영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김남영 기자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방식을 계속해야 하나. 지하철 시위가 오히려 역효과 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다른 방식을 안 해본 것이 아니다. 토론을 한다거나 정치인을 찾아가서 만난다거나, 아니면 노래를 한다거나.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1년 동안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장애인이 친구를 한 번 만나려면 48시간 전에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해야만 만날 수 있는 이 차별은 어떻게 하면 되나. 시위 방식만이 아니라, 21년간 외치고 있는 장애인들의 지독한 차별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일부러 너네 미워서 안 해준다’라는 시민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한테 잘 보인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다”

-다른 장애인단체도 전장연의 방식을 반대한다(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지난 3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두고 “국민을 볼모로 한 각종 불법시위가 도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를 꼭 지지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의견도 존중한다. 다만 이것이 그들이 나서서 비난해야 될 문제인지에 대해선 한번 진지하게 그 단체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 단체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후의 방법으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선택했다는 게 박 대표 설명이다. 그러나 전장연의 요구 사항이 정당하다고 보면서도 시위 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지난 7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저상버스 도입, 시외이동권 보장 체계 마련 등 전장연의 주요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80% 이상이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전장연의 시위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응답(35%)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응답(23%)보다 높았다. ‘전장연 주장에는 긍정하나, 시위 방법은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끝내기 위한 조건은.
“내달 7일에도 ‘4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한다. 대통령실 인근의 삼각지역에서 출발해 국회의사당역으로 간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 일정에 맞춘 것이다. 우리도 (시위에) 갈 때마다 매우 고민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중단 조건은) 2023년 장애인 권리예산이 증액되면 된다. 처음부터 이야기한 것이다. 또는 여당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소통 제의가 있다면 중단할 수 있다. ‘언제 시위를 관둘 것이냐’는 우리가 아니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물어보라. 진정성 있는 대화 창구가 열리고 ‘언제까지 어떤 예산을 확보하겠다’ 같은 책임 있는 답이 돌아와야 한다”

전장연이 정부에 요구하는 관련 예산은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2조9000억원), 발달장애인 지원(5700억원),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 국비 지원(1610억원),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국고지원(138억원) 등 총 3조 7200억원이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활동지원서비스 1조 9900억원, 발달장애인 지원 2500억원, 특별교통수단에는 237억원 등 총 2조 2600억원을 편성해 전장연 요구와는 약 1조 5000억원 정도 차이가 난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으론 차별 문제가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시위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예산 증액 요구가 전부 다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
“가령 특별교통수단 예산도 한 대당 운영비로 1900만원을 책정했는데, 인건비만 해도 3000만원 이상인데 말도 안되는 수준이다. 그러면서 레고랜드 사태에는 50조원을 집어 넣어버린다. 이게 부담이 된다면 왜 부담이 되는지를 이야기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 비장애인의 삶을 생각하면 왜 저상버스를 도입하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특별교통수단이 왜 필요하나. 탈시설이 왜 필요하나, 그냥 시설에다가 그냥 격리시켜 놓으면 되는데. 정부가 이 예산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울 모든 경찰서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 나오면 경찰 출석”

박 대표는 지난 18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퇴근길 버스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박 대표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등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 대표는 항소한다는 계획이다. 지하철 시위와 관련해선 지난 4월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전차교통방해ㆍ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상황이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서울교통공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관련 소송은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이 조정에 회부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박 대표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먼저 장애인등편의법을 지키지 않으며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경찰을 비판했다. 김 청장이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하겠다”고 강경 대응 기조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오히려 “청장이 서울 모든 경찰서에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 설치계획을 먼저 밝히면 그때 출석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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