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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현실 절박, 더 과감히 나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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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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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27일 오전 열린 이사회에서 이재용(사진) 부회장의 회장 승진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같이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회장 승진은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지만, 이 회장이 평소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중시해 온 만큼 동의 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한 이 회장은 54세에 공식적으로 ‘삼성전자 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10년 만이며,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된 지 4년 만이다. 부친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87년 12월 45세에 회장직에 올랐다.

이 회장 취임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계 5대 그룹 오너 경영인이 모두 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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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이날 오전 별도의 취임 행사 없이 예정대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 합병·회계 부정 의혹 관련 재판에 출석했다.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습니다. 많은 국민의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 회장은 재판을 마치고 나온 자리에서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취임사는 고 이건희 회장 2주기인 지난 25일 사장단 간담회에서 밝힌 소회와 각오를 이날 사내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대신했다. 이 회장은 사장단에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며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회와 책임감도 밝혔다. 이 회장은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라며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과감한 M&A 예고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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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본 결과 절박했다”며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다짐했다.

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고객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해야 하고,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물가, 금리 인상, 경기 침체, 미·중 패권전 등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미래 비전과 장기 경영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삼성 안팎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로 삼성전자는 하반기 들어 경영 실적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이날 밝힌 3분기 영업이익은 10조85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39% 감소했다. 반도체(DS) 부문의 매출은 23조200억원으로 6131억 대만달러(약 27조2000억원)를 기록한 대만 TSMC에 뒤졌다. 영업이익률은 2분기 35%에서 22%로 급감했다. 이는 TSMC(50.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재계는 이 회장이 과감한 신사업 투자와 대형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내다본다. 인재 등용과 조직 쇄신에도 힘을 기울일 전망이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복권 후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단지 기공식을 시작으로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계열사의 국내외 사업장을 찾았다.

고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왼쪽)의 자택에서 함께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맨 위)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아래)의 모습. [사진 삼성전자]

고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왼쪽)의 자택에서 함께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맨 위)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아래)의 모습. [사진 삼성전자]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가석방 이후 위기 타개를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반도체·바이오·차세대통신·신성장 IT 등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한다는 목표도 내놨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메모리 초격차를 넘어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에 도전장을 냈다.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2030년까지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다.

『삼성웨이』(2014년) 공동 저자인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회장 승진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 등 여러 면에서 일을 추진하는 데 훨씬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이제 중장기 먹거리 창출에 매진할 때”라고 말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중 대립에 따라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에서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 회장의 리더십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준법경영·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등 사회적 책임 강화와 국민 신뢰 회복은 이 회장 앞에 놓인 과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선 실적을 개선해야 하고, 삼성이 한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사회적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단체들은 회장 취임을 환영하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 회장 취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회장이) 그동안 삼성의 최고경영자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만큼, 승진은 경영 안전성을 높이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용 회장의 투자 행보

이재용 회장의 투자 행보

이 회장은 회장 취임 다음 날인 28일 광주광역시에 있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을 찾은  뒤 협력사를 방문한다. 상생을 강조하는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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