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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반도체 위기 앞에 선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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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회장 신분이던 지난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회장 신분이던 지난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회장, 27일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취임

복합 불황의 삼각파도 헤쳐나가 주길

삼성전자가 어제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2012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10년 만이며,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지 2년 만이다. 이사회는 이날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같이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취임식이나 취임사 등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하게 취임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승진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그간 이미 그룹 총수로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해 왔지만, 앞으로 공식적으로 ‘삼성 회장’ 타이틀을 달고 ‘이재용의 뉴삼성’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조만간 삼성 내에 강도 높은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 그룹 컨트롤타워 구축 등을 중심으로 ‘뉴삼성’ 비전이 구체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 회장은 앞서 고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은 지난 25일 사장단 간담회에서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소회와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밝힌 대로 이 회장의 ‘뉴삼성호’를 둘러싼 여건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좁게는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넓게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심각한 상황이다. 마침 이날 발표한 삼성전자 3분기 영업실적은 지난해보다 30% 넘게 줄어든 ‘어닝 쇼크’였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이 영업이익의 약 70%를 차지하는 반도체다. 글로벌 경기침체발 소비심리 위축으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면서 삼성전자 실적도 부진한 모습이다. 4분기 전망도 어둡다. 글로벌 IT 수요 부진과 메모리 시황 약세가 지속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회장 앞에 놓인 과제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는 한국 경제의 어닝쇼크이기도 하다. 반도체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산업이다. 전체 수출에서 20%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여파로 반도체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시장이 어려워진 데다 경쟁 업체인 대만 TSMC가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반도체는 삼성만의 얘기가 아니다. SK하이닉스도 지난 26일 공시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체 여파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60.3% 줄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앞장서 이끄는 한국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가 어려워지면 한국 경제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출범한 이 회장의 뉴삼성호가 삼성과 한국 경제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복합 불황의 삼각파도를 헤쳐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