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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없는 경제회의 80분...분위기 바꾼 '1타 강사' 원희룡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뭐,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하하하.”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10.27/뉴스1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10.27/뉴스1

27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첫 장면. 전 국민에 80분간 생중계된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윤 대통령이 “긴장하지 말라”고 하자 참석자들이 모두 소리 내 웃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우리 장관들을 골탕 먹일 질문을 막 던질 거란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은 여러분의 말씀을 경청하겠다”며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주식과 부동산에 이어 채권시장마저 얼어붙는 경제 상황에 대응해 대통령실은 비공개로 진행했던 ‘비상경제민생회의’ 생중계 카드를 꺼냈다. 국민에게 정부의 위기 인식과 대응 방안을 보여주겠다며 윤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국방부는 방위사업부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로, 국토교통부는 건설교통사업부로, 문체부는 문화사업부란 생각으로 사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모든 부처가 함께 뛴다는 자세로 일해달라”며 부처간 벽을 뛰어넘는 경제활성화 총력전을 당부했다.

현장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창양 산업통상부장관·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 경제 부처의 장관들이, 대통령실의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최상목 경제수석·김성한 안보실장 등이 참석했다.

초반 긴장, 원희룡 발언 뒤 풀려 

윤 대통령의 당부에도 회의 초반 참석자들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도어스테핑에서 “리허설 하지 않았다. 절대 쇼를 연출하지 말라”고 밝혔듯, 대통령실은 발언 순서와 각 장관의 발표 내용 외에 별도 대본은 마련하지 않았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리스크 너무 커서 솔직히 내부 반대도 상당했다”고 전했다. 최상목 수석의 사회로 시작해 ‘경제 활성화 대책’ 첫 발표를 맡은 추 부총리와 그 다음 순서였던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준비한 자료를 읽어갈 땐 다소 경직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토론이 시작되자 점차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히 사회자인 최 수석이 노련하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도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왼쪽)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왼쪽)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인천 앞바다에 물이 들어와도 고뿌(컵)가 없으면 마시지 못한다”는 비유와 함께 추 부총리에게 “경제부총리가 해외건설에 대한 패키지 금융지원 투자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고 말하고, 추 부총리가 “국토부 장관이 제 눈을 보며 절절하게 돈을 달라고 한다”며 화답하자 다른 참석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추 부총리에게 벤처투자 펀드의 세액 혜택 지원을 요청하는 등 장관들이 경쟁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현장에 참석했던 장관은 “사회를 본 최 수석과 1타 강사라는 별명의 원 장관이 긴장을 확 풀어놓으며 회의 분위기가 끌어 올려졌다”며 “오히려 평소보다 장관들이 더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尹 “세제 지원 없으면 투자 안 해”

윤 대통령은 장관들의 토의를 듣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밝히며 회의를 이끌어갔다. 윤 대통령은 산업부 장관의 공급망 정책과 관련해선 “핵심 광물을 적시에 공급하기 위해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고, “오늘 이 자리에 오진 않았지만, 외교부와 법무부도 관련 국가의 법률 제도에 대한 검토나 지원이 중요하다.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우리가 모두 다 같이 뛴다는 자세로 일해달라”고 말했다. 특히 “세액 공제나 세제 지원을 안 해주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투자 수익에 대해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면 정부가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으냐”고 투자 지원을 강력히 촉구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를 활용해 원전과 방산 수출 성과도 홍보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참석한 것도 최근 방산 수출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장관은 “올해 방산 수출 성과는 10만 개 일자리 창출, 38조 원 생산 유발 효과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수출 무기의 장비 운용과 교육 등 후속 군수지원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면서 K-방산의 신뢰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도 “방산 수출은 국가 간 신뢰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며 “방산수출 기저에 딸린 국가 간 신뢰를 다른 산업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철저히 강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 역시 “지난 8월 원전사업을 수주해 1조원 어치의 일감이 왔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법무부와 국방부, 국가안보실도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일종의 ‘잘살아 보세’의 윤석열 정부 버전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마무리 발언에선 “2시간 하지 않기로 했나. 이렇게 빨리 끝났느냐”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금융위기 대책 마련 긴급 현장점검'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금융위기 대책 마련 긴급 현장점검'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정부가 경제 리스크의 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의 경제 행보에 맞서 여의도 한국거래소를 찾아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이 대표는 “경제 리스크를 완화 또는 해소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지금은 정부가 리스크의 핵이 되어버렸다”며 맞불 행보를 했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경제위기를 비웃듯 자화자찬으로 시간 허비한 대통령의 국민 우롱 정치쇼에 경악한다”고 생중계된 회의를 혹평했다.

여당에선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그는 페이스북에 “대통령과 장관이 경제를 위해 애쓰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장밋빛 전망만 하기엔 우리 경제가 너무 위험하다”며 “경제위기를 극복한 전략과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야당의 정쟁과 대비해 ‘일하는 대통령실’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눈에 띈다”며 “레고랜드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예산안 등 시급한 현안들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운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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