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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모자 살인’ 남편 구속영장 신청…계속되는 가족살해,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27일 광명 모자(母子) 살인 사건 피의자인 남편 A씨(40대 중반)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에는 살인 혐의가 적시됐다. A씨는 25일 오후 8시쯤, 자택인 경기 광명시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인 B씨와 각각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형법상 부모를 살해한 경우엔 존속살인죄가 적용돼 가중처벌되지만 배우자와 자녀 등 손아랫사람(영아 제외)을 살해한 경우엔 일반 살인죄가 적용된다. 경찰은 A씨가 아파트 폐쇄회로(CC)TV에 일부러 찍혀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시도한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영장실질심사는 28일 오전 11시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다.

경찰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 등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기도와 경동맥 절단 등으로 인한 과다출혈이 사인으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을 이날 경찰에 전달했다. 시신에선 둔기에 맞은 상처와 자창(흉기에 찔린 상처) 등이 머리와 얼굴, 목에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광명 모자 살인 사건 피의자인 남편 A씨(40대 중반)가 26일 오후 경기 광명경찰서에서 나와 시흥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광명 모자 살인 사건 피의자인 남편 A씨(40대 중반)가 26일 오후 경기 광명경찰서에서 나와 시흥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가 보험금을 수령할 목적으로 범행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B씨 등 앞으로 최근 가입된 사망보험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발자였던 A씨는 약 1년 전 허리 디스크 등 건강 상의 이유로 퇴사한 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생활고가 있었지만, 그게 범행 이유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전날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시어머니를 무시하고, 아들들이 나를 무시해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는 평소 아내와 자주 말싸움을 벌였고, 이혼 절차를 밟아왔다고 했다.

전체 살인의 20%가 ‘가족 살해’

26일 엄마와 아들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 이병준 기자

26일 엄마와 아들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 이병준 기자

 가족 살해 범죄는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2020년 동거친족 간에 일어난 살인 범죄는 총 859건으로, 피해자와 피의자의 관계를 알 수 없는 사례를 제외한 4287건 중 20%를 차지했다. 살인범죄자 5명 중 1명이 같이 사는 가족을 상대로 범행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6일엔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 박모 씨가 부인을 둔기로 살해한 뒤 투신해 숨졌다. 박씨는 수년 전 아들이 극단 선택을 한 이후 우울감을 호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27일엔 이혼을 통보한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41세 남성이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1심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가족 살해는 계획 범죄인 경우가 많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05~2014년 일어난 동거친족 살해 범죄 중 36.4%만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나 연인(45.2%)이나 타인(46.8%) 대상 살인에서보다 우발 범행 비중이 낮았다. 같은 보고서에서 살인 범죄 중 피의자가 정신장애인인 비율은 동거친족 대상 살인사건의 16.2%로, 연인(2.9%)이나 타인(5.8%)이 대상일 때보다 현저히 높았다. 광명 모자 살인 사건에서도 경찰은 A씨의 정신 병력을 확인하고 있다.

 가족 살해는 극단 선택을 동반하기도 한다. 박기환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경찰 수사기록을 분석한 결과, 2013년~2017년 사이 242명이 동반자(배우자나 동거인) 또는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선 동반자(113명)를 살해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론 자녀(82명), 가족(47명) 순이었다.

26일 광명 모자 살인 사건 현장 앞 복도에 피 묻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병준 기자

26일 광명 모자 살인 사건 현장 앞 복도에 피 묻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병준 기자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자녀와 배우자, 부모 살해는 동기가 다르다”며 “배우자 살해는 경제적 어려움, 부부간 불화, 외도 등 요소가 문제가 되고 자녀 살해에선 ‘양육 상의 어려움’이나 ‘친자가 아니라는 의심’, ‘비행이나 자녀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인한 갈등’ 등이 살인의 출발점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 중엔 갈등 초기엔 수동적으로 대처하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매우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많다”고 말했다.

“범죄 데이터 축적해야”

 전문가들은 가족 살해 범죄를 분석·예방하기 위해 우선 데이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수사기관은 ‘동거·기타 친족 간에 일어난 범죄’에 관한 통계를 수집하지만, 구체적으로 배우자나 부모·자녀 등 어떤 관계에 있는 가족을 상대로 어떤 유형의 범죄가 발생하는지 세부적 집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가족을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돼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영국은 가정폭력의 극단적인 사례로 가족살해가 발생하면 지역 커뮤니티에서 상담사와 수사기관 등이 모여 위원회를 만들어 주변에 있는 가족·지인 등을 인터뷰해 사례 연구를 한다”며 “그런 데이터가 축적돼야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논의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같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분석할 자료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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