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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이슈 인터뷰 |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말하는 ‘도시 연담화(連擔化)’ 대안(對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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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발전은 인간 존엄성의 구현이다”

“경제적 효율보다 인간 가치와 기본권 차원에서 정책 추진”
“지자체는 인구 감소 시대에 동일 지역 중복 투자 줄여야”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새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지자체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새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지자체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더십 컨설턴트인 마이크 베이어는 저서 [베스트 셀프]에서 뇌(腦)의 특성과 관련해 ‘생존을 우선시하기에 새 의견이나 변화를 회피한다’고 설명했다. 중대한 위험에 빠진 게 아니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뇌의 활동 기준은 ‘고장 나지 않았으면 고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를 대한민국의 ‘지방’에 대입하면 마찬가지로 ‘고장 나지 않으면 고치지 마라’로 규정될 듯하다. 박정희 정부 이래 대한민국 정부는 하나같이 막대한 예산과 다방면의 정책을 지역균형발전에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불균형은 심화하고 가속화했다. 결국 그 예산과 정책들은 지방이 고장 나지 않도록 하는 비용에 불과했다. 이게 그저 지방을 굴러가도록 하는 비용이었다면 지방을 고치는 비용은 아직 집행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어젠다가 어쩌면 형해화(形骸化)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시야에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보이는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거기에 ‘뭔가가 있다’고 ‘인식’할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다. 지역균형발전이란 우리의 눈에는 들어오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된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지역균형발전을 제대로 ‘인식’하게 할까?

우동기 신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직무는 바로 여기에 출발한다. 그는 10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이 지역균형발전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가 나의 화두”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144조원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도 지역 불균형은 심화했습니다. 백약이 무효라는 느낌은 과장된 것일까요?

“중앙정부의 시각과 기준에 따라 수도권 집중이라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차원의 소극적 자원 배분이 이루어진 탓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고, 지역의 다양한 발상과 에너지가 창출되도록 적극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졌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2차 공공기관은 혁신도시 아닌 기존 도심으로 갈 것”

웬만한 현안은 투입 대비 효과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지역 문제는 예외인 듯도 합니다.

“인구의 증감이나 경제 활동의 집중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서서히 진행돼온 문제다 보니 경기, 부동산, 물가, 환율 등과 같은 단기 이슈들보다 관심이 덜한 측면이 있습니다. 심지어 손 놓고 있어도 불균형이 갑자기 심화하는 것도 아니고, 강력한 균형정책을 쓰더라도 효과가 눈앞에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던 시골 말로 ‘무논에 발 빠지듯’ 자신도 모르게 쑥 휩쓸려 들게 되는 함정과도 같아요.”

수도권 밀도가 높아지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집적의 경제’를 넘어 ‘집적의 비(非)경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왜 너나없이 수도권으로 몰리나요?

“문제의 심각성은 알지만, 해법이 그리 간단치 않아 논의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지역 문제, 인구 문제에 무심합니다. 이번 대선에는 저출생 문제가 후보 간에 공약이나 정책 토론으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어요. 저 역시 서울이 이런 공간 구조를 갖고 한 번 더 도약이 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수도권은 앞으로도 발전을 기약할 수 있나요? 서울의 물가는 이미 도쿄를 앞질렀으며, 호텔 등 주거 시설의 경우 거의 2배 수준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의 여파로 물가, 임금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으니까요. 버블이 꺼지고 집값이 내리니 새로운 산업은 경쟁력을 갖게 되는 시점에 돌입한 것이지요. 서울 등 수도권은 비싼 땅값으로 인해 신규 사업 입지로 부적절하고 주민들도 살기 힘들죠. 저만 해도 서울에서 전세를 얻으려다 포기하고 가족은 대구에 둔 채 저 혼자 오피스텔에서 살아요.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지방이 주역이 되는 시대로 가야 하는 것뿐이죠.”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런 진단에 동의할까요?

“서울은 이미 한계를 보입니다. 외국계 기업은 일부 특정 업종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입지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젊은이들이 2~3시간을 출퇴근 길에 깔아야 하는 도시가 과연 정상적인 도시인가요? 그래서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서울은 정치 경제의 중심이 아닌 국제 금융, 정보 중심 도시로 가자고 했던 겁니다. 은행을 이전시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지방이 시들고 소멸해가면 그 후유증을 서울이 다 감당할 수 있나요? 없을 겁니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예정대로 잘 진행될까요?

“2차 공공기관 이전은 1차 공공기관 이전이 주는 교훈을 토대로 관련 정부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지방에 혁신도시를 조성해 1차 공공기관 이전 사업을 벌인 결과 기존 도시의 도심은 공동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권 사람이 아닌 기존 지역의 사람들이 혁신도시로 가면서 기존 도시에 공백이 발생한 것이죠. 그러니까 국토부는 또 도심 재생 사업이라고 해서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앞으로 2차로 갈 공공기관은 혁신도시가 아닌 기존의 시가지로 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와 관련해 폐교를 희망하는 지방사립대는 폐교하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 법인이 폐교하고 해산하면 모든 재산이 국가로 귀속되기 때문에 유지에 방점을 둡니다. 기본 재산의 30%가량을 교육 기여 명목으로 설립자에게 돌려줘 폐교를 쉽게 하면 좋겠습니다. 교육 재정을 생각하면 학생 수가 모자라는 학교는 폐교가 수순인데도 생계가 막막한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그 폐교 부지에 수도권에서 오는 공공기관이 들어가면 큰 문제가 해결되지요. 공공기관 이전 문제는 더 정교한 정책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야마시타 유스케 일본 수도대학 교수는 지역균형발전은 지방이라는 ‘일부’를 위하는 정책이 아닌 나라 ‘전부’를 살리는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는 기존 가치체계의 재구성을 제안합니다. ‘경제지상주의’, ‘국가지상주의’, ‘선택과 집중의 논리’는 재고돼야 한다는 귀결입니다.

“현재의 지역 불균형은 그간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고, 국가가 주도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의 국가균형발전의 패러다임 변화를 꾀합니다. 불균형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차별금지의 차원에서 정책을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 단기간의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인간 본연의 가치, 기본권 침해 방지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지역 주도의 상향식 균형발전 정책을 펼 것입니다. 기회발전특구, 교육자유특구와 같은 새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지자체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수도권 대학 반도체 정원 상향조정 정책 수정 가능”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7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제2회 중앙지방협력회의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7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제2회 중앙지방협력회의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싶네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시대의 총책임자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모토는 자유와 공정이지요. 그리고 윤 대통령도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사람은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혜택에서 소외되는 것은 지방차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고요. 제게 이 직분을 맡기실 때도 이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자유와 정의, 공정과 분권의 가치를 강조하셨습니다.”

의지도 중요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줄 때 믿음이 가지요.

“사실 균형 발전은 인간의 생존권, 기본권의 문제이자 인간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지역균형발전은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의 주요 구성요소라고 하겠습니다. 10일 7일 울산시청에서 전국 시도지사, 국무총리,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제2회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한 윤 대통령은 이 회의가 ‘제2의 국무회의’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마치 연방제 회의를 보는 감회에 젖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연방제라는 표현을 쓴 건 아니지만, 미국의 주지사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책임을 우리도 같이 가지는 그런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정부가 최근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를 시사하고 해외 유턴 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설, 증설을 허용했지요?

“윤 대통령의 균형 발전 정책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는 정책이 두 개 나와버렸어요. 바로 수도권 반도체 학과 증원 및 유턴 기업의 수도권 입지 허용입니다. 반도체 학과 증원은 새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기도 전인 정권 이양기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정부의 정책 의지에 의문을 갖게 할 수도 있기에 윤 대통령이 각별히 지역 관련 행사와 어젠다를 더 챙기는 듯도 합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임명장을 받고 집무에 들어가면 반도체 증원 문제는 시행 과정에서 수정되지 않을까 기대를 합니다. 유턴 기업 수도권 입지 문제는 지방자치분권·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안이 법제화되면 해법을 찾을 것입니다. 또 이 법이 시행되면 ‘기회발전특구’라 해서 지방에 가는 기업에 과거에 볼 수 없던 강력한 세제상 혜택이 주어집니다. 인력 공급이 뒷받침된다면 해외에서 유턴하는 기업들도 굳이 수도권을 고집하지 않으리라 예상합니다. 이에 더해 아직은 제 개인의 생각이지만 지방에 사무소를 둔 국가기관의 공무원을 지방직으로 채용하는 방안도 지방 인재 유입에 효과적일 것입니다. 국토관리청, 해양수산청, 고용노동청, 환경청, 중기청, 보훈청 등은 전국 주요 거점에 사무소를 다 두고 있지요.”

지방 재생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는 일본

지난해 11월 민선 7기 전국 9개 권역 기초단체장들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민선 7기 전국 9개 권역 기초단체장들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본은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생성되는 등 지역의 위기를 우리보다 빨리 경험했습니다. 일본의 대응태세는 어떠했나요?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지방 재생에 올인하다시피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직속 내각부에 마을·사람·일 창생본부를 신설하고 자신이 본부장을 맡았어요. 입각하는 정치인의 절반 이상을 지방 출신으로 세팅하는 등 지방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는 결의를 보였습니다.”

지역 문제는 인구 문제이기도 합니다.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난 5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낮은 출생률은 “위기가 아닌 ‘행운’이자 ‘기회’”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구에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이 인구 증가율을 멈추거나 줄이는데 성공하면 한국은 동일한 자원을 더 적은 사람들에게 분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은 더 부유해질 것”이라고도 했습니다만?

“사람의 자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인구수가 줄어드는 것을 행운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우리와 해당 사항이 없을 거 같아요. 우리는 천연자원이 비약한 나라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자원이라고 하면 인적자원이 중심일 거예요. 좁은 국토에서 자급자족하자면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같습니다. 지금의 경제, 문화, 생활 수준을 유지하자면 적정인구가 필요합니다. 당장 국민연금을 줄어드는 인구가 떠받쳐야 하는 문제가 생기지요. 천연자원 부국(富國)하고 우리나라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기능 재조정 문제는 이미 한국사회의 헤게모니가 수도권 중심으로 고착돼 있어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해법의 하나로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지역균형개발 콘셉트를 가미했으면 합니다. 각 정당이 수도권 이 외의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들에게 공천을 주는 겁니다. 그러자면 지역민들이 합심해서 정당을 상대로 지역균형 비례대표의 공천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이런 취지의 비례대표 공천 제도를 운용하는 정당에 표를 주겠다고 하면 모든 정당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요. 해당 지자체에서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면 좋습니다. 국가 기능의 하나는 자원의 권위적인 배분에 있지요. 그 배분을 질량 중심, 무게 중심으로 따지다 보니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숫자와 수량 중심의 평균적 정의가 꼭 정의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얘기하는 데 공간(空間)적 정의도 포함하자고 요구하면 어떨까요?”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는 세수가 줄어든 지방자치단체가 도로, 교량, 마을회관 등 공공 편의시설을 관리할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나요? 지금과 같은 보여주기식 SOC 공약 남발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구도 없는 곳에 큰 도서관을 지었다고 쳐요. 그 운영비는 지자체 부담입니다. 이런 식으로 수영장, 체육관 등 공공시설을 유지, 관리하는 비용이 늘어나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구 달서구 등 지자체에서는 학교 도서관을 구립도서관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있지요. 낮에는 학교가 운영하고, 방과 후에는 구청에서 보낸 사서가 운영하는 협업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구민 운동장도 돈 들여 부지를 구입할 게 아니라 기존의 학교 운동장을 공공 운동장으로 개조, 활용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기존 시설의 복합화, 공동 이용하는 협력 방안을 강구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동일한 지역에 같은 시설을 중복 투자하는 일을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경북 의성에서는 부모들이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동네 기숙사를 짓기도 했지요. 일본에서는 집집마다 아이가 한 명이다 보니 이웃사촌을 맺어주거나 학년별로 형제를 맺어주는 시도도 나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는 공동 보육, 교육 제도를 통해 재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45년 전 수행한 수도권 재배치 연구 과제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자치분권은 권력적 정의를, 균형발전은 공간(空間)적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자치분권은 권력적 정의를, 균형발전은 공간(空間)적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군가 우 위원장의 국가균형발전위 취임을 ‘예정된 인연’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게 소명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대구 가톨릭대학 총장을 그만두고 여기 올 땐 굉장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국가균형발전위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고 위원장도 비상근 업무입니다. 그런데 이 제안을 받았을 때 뇌리를 스치는 바가 있었어요. 1979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지금은 국토연구원으로 이름이 바뀐 국토개발연구원이었어요. 197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권의 기능 집중을 막고 국토 균형 발전을 기하자면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든 연구소가 바로 국토개발연구원이죠. 그 연구원의 1기로 들어왔습니다. 그곳에서 받은 첫 과제가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 수도권 기능 재배치 연구였지요. 그 연구를 토대로 만든 법안이 수도권정비계획법이죠. 그 법안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제대로 유지됐다면 우리나라의 공간구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어쨌거나 그 뒤로 돌아 돌아 지금 다시 이 일을 하게 된 건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그 시절에도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나요?

“그럼요.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들이 도시에 대거 몰려들었잖아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집중 문제를 해소하고자 안산의 반월공단에 자립완결형 신공업도시를 만들고 행정수도를 대전쪽으로 옮기려고 했어요. 물론 안보적 측면도 고려된 계획이지만 당시 국토를 고루 발전케 하는 취지에서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성안하게 된 겁니다.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하자는 게 박 전 대통령이 견지한 국토 정책의 제1의 신념이었습니다. 요즘에도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법을 만들게 됐는가 싶어요.”

법안이 어떤 내용이었기에 그런가요?

“당시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 내 대학의 신설, 증원을 불허했어요. 그래서 연세대, 고려대 모두 지방에 분교를 만들었지요. 일정 규모 이상인 대기업은 수도권에 입주도 못하게 했어요. 그 법이 지금도 살아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오늘날의 수도권 혼잡을 예견했는지 지금 봐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연세대, 고려대가 비수도권에 분교 만든 이유

국토 균형 개발 청사진의 취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했다는 말이군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안산과 서울을 잇는 철도가 놓이면서 서로 다른 행정구역의 시가지가 맞닿는 도시 연담화(連擔化)가 시작됩니다. 서울 외연의 확대는 지금 오송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송이 취업의 남방 한계선이라는 얘기도 나도는 겁니다. 일본에 신칸센이 놓이면서 도쿄 단극화가 가속화한 것과 유사하지요. 이런 연담화에 따른 단극(單極)화 현상은 10년, 20년에 걸쳐 진행되는 결과이기에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겁니다.

판단 미스도 있었습니다. 정보통신기술과 교통망이 고도화하면 분산 개발이 가능해지고 균형 발전으로 가리라고 생각했지요. 복잡한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는 사람이 늘어나리라는 판단에서 김대중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망 확산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더 강력한 집적 효과를 불러오고 말았지요.

그리고 1998년 외환위기가 본격화한 뒤로는 정부가 수도권에 첨단산업 입지 규제를 완화했지요. 경제가 어려워지자 수도권 중심으로 땜질식 처방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능이 한곳으로 집중되면서 2019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지방 인구가 서울로 몰려들었는데 수도권 인구도 함께 줄어드는 역설이 생긴 것이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류 문명사적 접근이 필요할 겁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곧 지방분권위와 통합돼 지방시대위원회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기구 역시 대통령 자문기구로 기능하는 것이지요?

“예. 정부는 지방자치분권·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합니다. 자치분권은 권력적 정의를, 균형발전은 공간적 정의를 구현할 것입니다. 권력이라는 가로축과 공간이라는 세로축이 교직해서 새로운 지방 시대를 열어간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구상입니다. 일부에서는 이 기구가 정부의 단일 부처나 행정위원회 위상을 가지는 게 더 효율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부처나 행정위원회는 단일 기능에 독립적 성격의 업무를 주로 합니다. 이에 견줘 국가균형발전 문제는 아마도 외교, 국방을 제외하고는 국정 대부분의 분야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겁니다. 이 방대한 영역을 지방시대위원회가 다 흡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국 지역균형발전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 지원이 없다면 추진이 어려운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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