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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10만명' 하룻밤새 몰아냈다…그렇게 얻어낸 '시진핑 총애'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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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시진핑 3기 정치국 상무위원 6인 분석④ 차이치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당 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차이치. 로이터=연합뉴스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당 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차이치. 로이터=연합뉴스

차이치(蔡奇·67)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은 시진핑(習近平) 3기 수뇌부에서 가장 놀라움을 자아낸 인물이다.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서기 등 상무위원 후보군을 추월해서다.

차이치는 23일 오전 중국공산당 제20기 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서열 5위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에 뽑혔다. 선전·이데올로기를 담당하며 당의 일상 운영을 책임지는 서기처를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차이치가 시진핑 3기 수뇌부에 발탁된 건 ‘숭배’에 가까운 충성심 덕분이다. 미국의 소리(VOA)는 “차이의 시진핑 치켜세우기는 ‘마오쩌둥(毛澤東) 숭배’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차이는 ‘시진핑=인민영수’ 만들기의 기수다. 20차 당 대회 개막 이튿날 베이징 대표단 토론에 참석 “시진핑 총서기는 신시대 전당·전국·각 민족 인민의 길잡이, 우리가 충심으로 추대하는 인민영수”라며 치켜세웠다. SCMP는 "20차 당 대회에서 시 주석 연설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 적은 사람이 차이치였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석상에서 그는 시진핑이 곧 당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당의 핵심은 시대의 호소이며 인민의 소망, 역사의 선택"이라 말했다. 이어 "우리를 과학적으로 이끄는 것은 시진핑 새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며 "시진핑 사상은 깃발이자 방향, 신앙"이라고 했다.

"향후 5년 제로 코로나" 발언 뭇매 

시진핑의 대표 정책 ‘제로 코로나’의 전도사도 차이치다. 지난 6월 27일 열린 베이징시 당 대회에서 차이치는 향후 5개년 기조를 담은 업무보고에서 “일상화 코로나19 방역을 끊임없이 견지한다”며 “외부 유입을 막고, 내부 발생을 방지하는 총책략과 ‘제로 코로나’ 총방침을 절대 흔들리지 않고 견지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시민들은 "5년이나 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거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장마저 "앞으로 5년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아무도 기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베이징일보가 처음에 올린 글에는 '향후 5년'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글에서 '향후 5년'이라는 표현이 빠지게 된다. 사진 웨이보 캡처

베이징일보가 처음에 올린 글에는 '향후 5년'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글에서 '향후 5년'이라는 표현이 빠지게 된다. 사진 웨이보 캡처

북경일보 사장은 개인 SNS를 통해 “편집자가 잘못해 향후 5년이라고 썼다”며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당 대회 보고 자체가 미래 5년을 규정하는 문건인만큼 말이 안되는 해명이었다. 시진핑 스스로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제로 코로나 원칙을 견지했다”며 방역 정책의 불변을 예고했다. 차이치가 시진핑의 의중에 가장 정통한 인물임을 증명한 셈이다.

쪽방촌 10만명 내몰리자…네티즌들 "나도 하층민이다" 분노  

19차 당 대회 직후인 2017년 차이는 베이징 외곽의 이주노동자(농민공)들을 강제 퇴거시켜 거센 반발을 불렀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대비한 도시 정비 사업의 일환이었다. “기층 민중을 대하는 데는 진짜 총칼을 빼 들고(眞刀眞槍) 칼에 피를 묻히듯(刺刀見紅) 눈에는 눈으로 대응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철거 지침이었다.

차이치의 강공 배경에 시 주석의 질책이 있었다. 2017년 11월 1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기간 베이징 외곽 순이(順義)구 리차오(李橋)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시진핑 비서실은 당시 차이치 서기에게 “대체 누구에게 화재를 보여주려 하나. 당장 대책을 마련하라”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진다. 8일 뒤 다시 남부 다싱(大興)구 농민공 밀집 지역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 19명이 사망했다.

화재 예방을 이유로 ‘하층민(低端人口) 정리 작업’이라고 명명한 대규모 빈민촌 철거 작업이 실시됐다. 하루도 안돼 시내 135개 구역에 중장비가 들이닥쳤다. 혹한기를 앞두고 농민공 10만명이 하룻밤새 거리로 내몰리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는 원성이 높아졌다. 중국 네티즌들은 SNS상에 "나도 하층민이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질타했지만 소용 없었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성화가 2021년 10월 18일 그리스 올림피아 유적지에서 채화돼 2021년 10월 20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성화를 들고 있는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 AFP=연합뉴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성화가 2021년 10월 18일 그리스 올림피아 유적지에서 채화돼 2021년 10월 20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성화를 들고 있는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 AFP=연합뉴스

쪽방촌 철거 사태, 하층민 논란이 겹쳐 민심은 잃었지만, 그는 '코로나 속에서도 베이징 올림픽을 순탄하게 치러냈다'는 평가와 시 주석의 총애를 얻었다. 장양 아메리칸 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는 "차이는 베이징 당서기로는 인기가 없었지만, 시진핑에 대한 충성이 인기보다 먼저였다"고 말했다.

푸젠·저장에서 시진핑과 호흡 맞춰 

차이치는 1955년 푸젠(福建) 성에서 태어나 푸젠 사범대학을 다녔다.

1983년 푸젠성 공산당위원회 판공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는 본격적인 정치의 길을 걸었다. 1999년 저장(浙江)성으로 옮겨 일했는데 푸젠성과 저장성 모두 차이는 시진핑과 공직 경력이 겹쳤다.

차이치(왼쪽 두 번째)는 시진핑(가운데)과 푸젠성과 저장성에서 같이 지내면서 업무경험을 쌓았다. 사진 바이두 캡처

차이치(왼쪽 두 번째)는 시진핑(가운데)과 푸젠성과 저장성에서 같이 지내면서 업무경험을 쌓았다. 사진 바이두 캡처

차이는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에서 근무할 때 거느린 옛 부하 '즈장신쥔'(之江新軍)의 대표주자다. 특히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를 지낼 때 차이치는 시진핑이 제시한 '88 전략'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88 전략은 저장성이 갖춘 ‘8대 프리미엄’을 위한 ‘8대 조치’를 줄인 용어다. 시장 시스템, 지리적 위치, 산업 클러스터, 도시·농촌 조화 발전, 생태 환경, 산림과 해양의 조화, 사회 환경, 인문 등 8대 장점에 각각에 맞는 정책으로 88 전략은 지역 맞춤형 정책의 대명사가 됐다. 수 년간 시진핑과 업무로 호흡을 맞춘 경험은 차이치가 중앙 정계로 수직 상승하는 발판이 됐다.

4년간 4차례 초고속 승진

2013년 3월 시진핑은 국가주석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인 2014년 차이는 지방 생활을 청산하고 베이징 중앙국가 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을 맡게 됐다. 중앙국가 안전위원회는 중국의 국가안보 컨트롤 타워로 시 주석이 신설한 기구다.

중앙 정계 진출 2년 만에 베이징 시정이 차이의 손에 넘겨졌다. 차이는 2016년 베이징 시장 권한대행으로 임명됐다. 2017년 5월에는 베이징시 당서기가 됐다. 19차 당 대회에서 중앙정치국 발탁을 위한 시 주석의 사전 포석이었다.

유라시아 그룹 수석 분석가인 닐 토마스는 차이치가 활주로가 필요한 '비행기'가 아닌 '헬리콥터'승진을 거듭했다고 분석했다. 승진이 너무 빨라 그에게 악감정을 가진 관료도 많았다고 한다. 브루킹스연구소 중국 전문가인 리청은 로이터통신에 "차이치가 4년간 4차례나 승진한 것은 시 주석이 그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흥한 자, 인터넷 통제 시대를 열다

차이치는 인터넷에도 능하다. 지방 근무 당시 그는 1000만 팔로워를 거느린 SNS ‘인플루언서’였다. 친근하게 대중들과 소통한다 해서 '차이 삼촌'이란 별명도 있었다.

차이치가 썼던 SNS 계정. 팔로워수가 1000만명이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인민망 캡처

차이치가 썼던 SNS 계정. 팔로워수가 1000만명이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인민망 캡처

처음에 그는 SNS 선용(善用)을 강조했다. 저장성에서 일할 때 그는 공무원들에게 중국판 트위터(웨이보) 사용을 권했다.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일 처리를 하자"면서 계정을 만들어 각종 민원과 사연을 들었다. 그는 웨이보를 현대판 신문고로 활용했다. 3살짜리 아이가 개에 물려 중상을 입은 사연을 SNS에서 접한 뒤 그가 직접 나서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차이는 잘 해결됐다는 결과 보고까지 SNS에 올렸다.

2011년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차이는 "중국서 페이스북이 접속되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말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차이치를 "더 젊어 보이려고 굳이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 남자,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광팬,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로 소개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시진핑 시대가 열리자 180도 입장을 바꿨다. 2012년 차이는 "당이 권력을 공고히 하려면 인터넷 세상을 전쟁터로 봐야 한다"면서 당에 의한 인터넷 통제를 강조했다.

2014년 국가안전위 판공실 부주임 차이치의 건의로 시 주석은 인터넷안전위를 꾸리고 직접 위원장을 맡는다. 2017년에는 사이버보안법을 시행, 검열과 통제 강화에 기초를 닦았다.

로이터통신은 "베이징에서 근무한 뒤부터 차이는 더 이상 SNS를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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