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그 측근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야권에선 이 대표의 후임 김동연 경기지사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최대 광역단체장인 김 지사가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각을 세우는 데다, 민생 행보도 활발히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직접 훈수를 뒀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 지사는 정부 경제 정책의 허점을 페이스북에 조목조목 나열했다. 김 지사는 “(경제 위기에 관한) 정부 인식은 여전히 안이하고, 혼란스럽다. 이대로 가다간 실기(失期)할 우려가 크다”고 적었다.
이어 김 지사는 “시정연설에서 경제나 복지에 대한 언급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방향 설정과 대안이 중요하다”고 밝힌 뒤, 세 가지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비상계획)으로 ▶‘건전 재정’ 아닌 ‘민생재정’ ▶과감한 유동성 공급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를 겨냥한 경고도 했다. 김 지사는 “지금의 정치와 리더십은 통합과 신뢰가 아니라 공포와 편 가르기”라며 “지금은 야당과 협력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재명 아니라 김동연”
김 지사는 지난 18일 경기도 국감에선, 전임자인 이 대표와의 비교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김 지사의 공약인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지사 시절인) 작년 국감에서 반대의견을 냈다. 이 대표 뜻을 꺾고 추진하면 민주당 대권후보는 김동연이 되지 않을까”라고 떠보자, 김 지사는 즉각 “그런 거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조 의원이 또다시 이 대표를 소환하며, “4월 화성제약회사 화재 때 김 지사는 아주대에서 축구 시축을 했는데 이 대표가 이천 쿠팡 물류센터화재 사고가 났을 때 마산에서 떡볶이 ‘먹방’을 한 것과 데자뷔”라고 비꼬자, 김 지사는 목소리를 확 키우며 “왜 자꾸 이재명 얘기를 하느냐. 저는 김동연이다”고 발끈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혐의로 인해 최근 경기도청이 수차례 압수 수색 대상이 되며 공무원들이 잔뜩 위축된 상황이다. 그래서 김 지사가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의 ‘민생 스킨십’도 본격화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 지사는 25일 경기 최북단 연천군을 찾아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김 지사는 주민들에게 “선거 유세 때 두 차례 왔었는데, 다시 와달라는 약속을 지키려고 왔다”고 했다.
이런 김 지사의 행보를 두고 당내에선 “이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로서 입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김 지사가 운신의 폭을 키우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다만 김 지사 측은 이에 대해 “국정감사 일정 등으로 일일이 챙기지 못했던 현장을 뒤늦게 찾아다니는 것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피 묻은 빵’ 논란 속 포켓몬빵 헌정…“정무 판단 미스”
김 지사의 최근 광폭 행보를 두고, 최근 친이재명계 내부에선 김 지사에 대해 묘한 견제 심리가 포착되기도 한다. 친이재명계 핵심 의원은 “김 지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협치를 권고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경기도정의 협치를 도모했어야 했다”며 “경기도의회가 ‘78 대 78’ 여야 동수로 구성된 문제를 못 풀어, 추경예산안 처리가 한없이 지체돼 각종 민생 사업 추진이 중단돼 있지 않나”고 쓴소리를 냈다.
김 지사가 분주한 일정 중에 ‘의욕 과다’ 논란을 빚은 일도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19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서 발생한 ‘포켓몬빵 논란’이다. 김 지사는 과거 ‘아동 학대’ 수용소인 선감학원에서 목숨을 잃은 소년 원생들의 묘역에 참배하며 국화꽃과 함께 빵 하나를 같이 올렸는데, 이 빵이 산재 사고로 ‘피 묻은 빵’ 불매 캠페인이 한창인 SPC삼립의 인기제품 ‘포켓몬 빵’이었던 것이다.
이틀 전인 17일엔 평택 SPC 제빵공장 사망 근로자 빈소를 비공개로 조문한 김 지사가 곧바로 SPC삼립 제품을 꺼낸 탓에 지역 정가는 물론 여의도에서조차 “정무 판단 미스”(경기지역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란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경기도청 관계자는 “엄청난 굶주림이 있었다는 생존자 증언에 김 지사가 진심을 담아 위로를 건넨 것”이라며 “정무적으로 세밀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그 진심과 취지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