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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중·고생까지 동원하는 정치집회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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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에 학생 참여 독려

장외투쟁 선동하는 정치권 책임 물어야

 중·고생 촛불집회를 예고한 포스터. [사진 인터넷 캡처]

중·고생 촛불집회를 예고한 포스터. [사진 인터넷 캡처]

정치권의 정쟁이 중·고등학생들의 학습권 문제로 번졌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하라고 독려한 교사가 어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조사 요청) 접수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인 이 교사가 지난 22일 열린 윤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종용해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교육부 역시 전날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도 교육청에 안내했다”며 “이를 위반할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사는 헌법과 교육공무원법 등에 따라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 교사 자신의 정치적 의사표현 자유는 별개로 하더라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성향에 따르라고 요구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건 명확한 범법 행위이자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해당 교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됐다. 그가 2020년 총선에서 졸업생 제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지지와 투표를 독려한 문자를 보낸 불법 선거운동으로 2심까지 자격정지와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다음 달 5일 열겠다고 한 ‘제1차 윤석열 퇴진 중·고등학생 촛불집회’ 또한 우려스럽다. 기획의 주체와 그의 배경이 알려지고, 부수적인 거짓 선동까지 생겼다. 이 집회를 추진한 촛불중고생시민연대는 친북단체 색깔을 띠고 있다. 분단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조국통일위원회라는 조직을 뒀다. 최준호 대표는 중·고생도 아닌 25세의 옛 통합진보당 청소년비대위원장 출신 인사다.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단체를 운영하면서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통진당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위헌정당 결정을 받아 강제 해산된 반국가단체다. “청소년들의 주체적이고 순수한 행사”라는 주최 측의 주장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여성가족부와 서울시의 청소년활동을 위한 지원금이 이 집회를 위해 쓰인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 봉사활동이 인정된다는 허위 사실을 담은 가짜 포스터가 등장해 교육부가 허위 사실 유포자에 대해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는 정치권의 잘못이 크다. 국회에서 해결할 문제를 광장으로 유도하고, 극우·극좌 세력이 거리를 활보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어제 촛불집회 등 장외투쟁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 틈새를 노리고 각종 법을 유린하며 시민의 쉴 공간과 통행권을 침해하고, 중·고생까지 집회에 동원하는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수사 당국은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