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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남의 속풀이처방

교황이 보여주는 지도자의 품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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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지도자들에 대한 논란으로 전 세계가 시끌시끌하다. 러시아의 푸틴을 비롯한 몇몇 지도자들이 망조 들린 정책을 일삼고 있어서이다. 지도자의 품위에 대한 논란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상스러운 소리를 했네, 안 했네 하는 갑론을박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이렇게 정치판을 진흙탕처럼 만드는 지저분한 정치인들에게 지도자로서 품위를 지키라는 의미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품위 있는 면모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드로 사도 이래 266대 교황으로, 가난한 자들의 교황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지구공동체가 평화를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셔서 전 세계 정치인과 종교인의 멘토가 되신 분이다.

진영 떠난 현실주의 지향
체면치레용 말하지 않아
교회 잘못도 솔직히 사과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것

지난 25일 전 세계 평화를 호소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지난 25일 전 세계 평화를 호소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간혹 일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좌파 교황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뒤틀린 감정으로 내뱉는 몰상식한 볼멘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파도 좌파도 아닌 현실주의자이다. 그가 종교라는 담벼락 안에서 안주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세상일에 뛰어드는 종교인이 된 것은 남미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만행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낙수효과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서민이 수탈당하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셨기에 도둑들로부터 양을 지키려는 목자처럼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공허한 종교언어가 아니라 실제적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과자인 ‘Bugie’처럼 살지 말라고 직언한다. ‘Bugie’는 속이 텅 비어 있는 과자인데, 이를 인용하여 체면치레용 언행을 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이다.

현실주의자인 교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먹을 것’이다. 교황은 8억 명이 굶주리는 불공정한 지구촌 현실을 지적하면서 음식이 소수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구촌 사람들은 한 가족이며, 음식 낭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 하면서 심지어 치커리 삶은 물조차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다. 흔히 정치인은 국민의 배고픔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허한 정치적 구호나 이념에만 집착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에게 교황의 정치는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갈등 해소와 화해의 사도이다. 갈등 상황이 심각한 나라에 직접 방문하여 중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격심한 내전을 치르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양쪽 지도자들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극심한 가난과 종교 간 갈등으로 시달리는 이라크를 방문하여 모든 폭력과 극단주의의 종식을 촉구하면서 세계평화의 사도임을 온몸으로 입증하였다. 상대방에게 혐오언어를 뒤집어씌우고 적개심을 부추기는 짓을 다반사로 해온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교황의 행보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교황은 탈권위적이며 검소하다. 숙소도 큰 아방궁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산타마르타의 집이며, 가능하면 자신을 위해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신다. 국민의 세금을 공돈인 양 함부로 쓰려는 정치인이 본받아야 한다.

또한 직원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직원과 마주치면 따뜻하게 배려해 준다. 직원들은 교황의 이런 소박하고 탈권위적인 모습에 자주 감동한다고 한다. 이처럼 소탈하고 겸손한 성품이 일상 곳곳에서 나타나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거 전에만 시장바닥을 누비고 당선 후에는 거리두기를 하는 이중적인 정치인은 반성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모습은 교회의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는 모습이다. 많은 정치인이 사과하는 것을 굴복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일본 우익을 비롯한 정치인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과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같이 옹졸하고 인간성이 부실하다. 심지어 몰염치하고 뻔뻔스럽기조차 하다. 이런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나라를 분열시키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다.

반면 진정성을 가진 사과는 계층 간, 민족 간 적대감을 사라지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다니신다. 교황의 모습을 보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떠오른다.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언젠가부터 노인들이 아이들의 혐오대상이 되어 ‘노인네’ ‘늙은이’, 심지어 ‘틀딱충’이라고 불리는데, 팔순 노인이신 교황의 삶은 세대를 초월하여 존경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절반이라도 따른다면 우리나라 정치판이 선진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