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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승우의 미래의학

디지털 의료 혁신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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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내가 중고생이던 1970년대는 첨단과학과 관련된 SF 영화가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면서 발전된 과학이 가져다줄 세상을 상상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그때 꿈꾸던 것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첨단과학이 우리 일상 풍경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의료 분야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일반인에게 가장 와 닿는 변화는 스마트워치의 센서를 통해 심전도·혈압·수면 패턴 등을 스스로 확인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의료 데이터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확인하고, 또 이를 진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지난해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파킨슨 환자의 기립성 저혈압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자율신경계의 기능 이상에 따른 기립성 저혈압이 흔해 낙상 위험을 커지게 된다. 이에 신경과 연구팀이 스마트워치 감지 기능을 통해 혈압의 급격한 변동을 확인해 조기에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학·의학 결합한 미래의학 성큼
의료현장에 신기술 적용 시작
일상 건강관리까지 영역 확장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 이로워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또한 최근에는 가장 흔한 수면 호흡 장애인 폐쇄성 무호흡증 진단에도 스마트워치에 탑재된 혈중 산소농도 측정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병원에 와야 받을 수 있던 검사를 집에서 간편히 확인해 편리할 뿐 아니라, 선별된 환자만 병원에서 검사할 수 있으니 비용과 시간 모두 절약할 수 있다.

입원환자 관리 역시 클라우드 기반의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전 예측 기능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욕창 부위 사진으로 병의 악화 정도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솔루션이 개발되었고, 입원환자의 낙상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능도 의료진에게 제공하여 낙상 발생을 최소화하고 있다.

또한 환자의 평소 생활 관리에도 첨단과학이 접목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뇌졸중 환자가 어렵게 병원을 찾는 대신 집에서 증강현실을 이용한 홈트레이닝 재활운동 프로그램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의료 혁신은 해외 의료기관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은 2020년 척추에 생긴 척색종이란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증강현실을 이용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특수 헤드셋을 쓴 의사의 시야에 CT 스캔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환자의 척추와 주변 조직이 입체적으로 표시되어 수술을 도운 것이다. 당시 증강현실 기술로 수술을 마친 의사는 “눈앞에 GPS가 달린 내비게이션이 있는 것 같아 수술할 때 별도 모니터를 볼 필요가 없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고 한다. 또 최근 미국 앨라배마대학과 에모리대학은 구글 글라스를 이용한 정형외과 어깨 치환 수술을 시범 실시했고, 스탠퍼드대학은 자체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첨단 디지털 의료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2012년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1000만 달러 상금이 내걸린 신기술 공모전이 진행되어 큰 관심을 모았었다. 미국에서 ‘스타워즈’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SF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에 나오는 만능 의료기기 ‘트라이코더(Tricorder)’같은 진단 기기를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영화 속 맥코리 박사가 사용하는 이 기기는 사람의 몸에 가까이 대고 한번 훑는 것만으로 어떤 병에 걸렸는지, 그 치료법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으로 나온다. 이처럼 사람 몸을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는 영화 속 진단 기술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열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 환자 치료의 여러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간암 수술 예정 환자에게 가상현실(VR) 교육을 시행한 바 있다. 의사와 환자가 VR 플랫폼에 동시 접속한 뒤 가상현실 속에서 의사는 3D로 구현한 환자의 간 모형을 실제 절제하듯이 조작하며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묘사했고, 환자는 본인 간 속의 종양이 절제되는 모습을 다각도로 관찰할 수 있었다. 해당 교육 후 환자의 수술 이해도를 확인해 보니 기존에 비해 이해도가 2배 가까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첨단 디지털 기반의 미래 의학은 의료 현장을 급속히 바꾸어 나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나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간호사의 사명은 명확하다. 인류의 건강하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디지털 의료 혁신이 그 소임을 더욱더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기에 기대 또한 더욱 크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