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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이제 생존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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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세계 경제가 복합 불황에 빠졌다. 경기 침체 장기화가 예상된다. 내년엔 세계 반도체 1위 자리를 대만 TSMC에 빼앗길 수 있다.”(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26일 사내 경영설명회)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지정학적 이슈가 더해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버금가는 수준이다.”(노종원 SK 하이닉스 사장, 26일 실적 컨퍼런스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K 반도체’를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수장이 같은 날 이런 시장 진단을 내놨다. 그만큼 현재 실적도, 미래 전망도 ‘잿빛’이라는 얘기다.

올해 3분기 전년 동기보다 60.3% 줄어든 1조6556억원의 영업 이익을 이날 공시한 노 사장은 “높은 물가 상승과 큰 폭의 금리 상승으로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하며 메모리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3분기는 계절적 성수기임에도 유례없이 수요가 약세”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의 97%가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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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도 여전히 큰 변수다. 노 사장은 미국의 대(對)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대해 “1년 동안 라이선스 유예를 받는 것으로 됐지만, 그 후엔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국 팹(공장) 운영이 어려워진다면 매각, 장비 매각, 한국으로 장비를 들여오는 것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 사장은 이날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사인 대만 TSMC를 언급했다. “(반도체 시장에서) 올해까지는 TSMC보다 앞설 것 같지만, 내년은 뒤집힐 수 있다”고 했다. TSMC의 3분기 매출은 삼성전자를 추월해 세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LG전자는 이달 초 잠정 실적 공시에서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74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해 25.1% 늘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지난해(5968억원)엔 제너럴모터스(GM) 전기차 리콜 관련 충당금 약 4800억원이 제외된 수치라 업계는 실제로 이익이 줄어든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는 27일, LG전자는 28일 3분기 확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장이 이처럼 갑작스레 얼어붙으면서 LG는 그룹 차원에서 위기 대응방안을 세울 것으로 전해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25일부터 LG전자를 시작으로 한 달 동안 주요 계열사의 사업 보고를 받고 있는데, 복합 위기 대응 전략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부품 업종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전체 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6으로 9월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2월(76)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저치다. BSI는 기업들의 경기 인식 조사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제조업 BSI는 72로 2020년 9월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났고 비제조업 BSI도 전월보다 2포인트 하락한 79를 기록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들의 실적 악화 현실화가 이제 시작됐고, 4분기에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금은 생존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도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비상 경영을 선포하고, 안정적 자금 확보에 힘쓰면서 수익성 확보와 시장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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