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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영업익 ‘반토막’…전자·부품 업계 '빙하기'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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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세계 경제가 복합 불황에 빠졌다. 경기 침체 장기화가 예상된다. 내년엔 세계 반도체 1위 자리를 대만 TSMC에 빼앗길 수 있다.”(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26일 사내 경영설명회)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지정학적 이슈가 더해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버금가는 수준이다.”(노종원 SK하이닉스사장, 26일 실적 컨퍼런스콜)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사진은 26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사진은 26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K반도체’를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수장이 같은 날 이런 시장 진단을 내놨다. 그만큼 현 실적도, 미래 전망도 ‘잿빛’이라는 얘기다. 투자와 고용이 쪼그라들 조짐도 보인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보다 50%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유례없는 심각한 상황”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체로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조6556억원을 기록했다고 이날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해 60.3% 감소한 수치다. 금융투자 업계가 예상한 전망치(2조1569억원)보다 30%가량 적은 ‘어닝쇼크’(예상 밖 실적 저조)다. 매출은 10조98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다.

노종원 사장은 이날 컨퍼런스 콜에서 “높은 물가 상승과 큰 폭의 금리 상승으로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하며 메모리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했다”며 “3분기는 계절적 성수기임에도 유례없이 수요 약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의 97%가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에서 나온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웨이퍼 시설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 투자도 일부 늦춘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업황에 따라 투자 규모를 조정하긴 하지만 50% 축소는 매우 큰 수치”라고 말했다.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도 여전히 변수다. 노 사장은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대해 “1년 동안 라이선스 유예를 받는 것으로 됐지만 그 후엔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국 팹(공장) 운영이 어려워진다면 매각, 장비 매각, 한국으로 장비를 들여오는 것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이런 가정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TV를 비롯한 가전제품과 디스플레이 패널 재고가 동시에 늘고 있다. 사진은 1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전자제품 코너. 뉴스1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TV를 비롯한 가전제품과 디스플레이 패널 재고가 동시에 늘고 있다. 사진은 1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전자제품 코너. 뉴스1

주요 전자·부품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급랭에 따른 수요 감소,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위기로 빙하기에 들어섰다. 이날 3분기 실적을 발표한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기 역시 울상이다.

LG디스플레이는 3분기 759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고 공시했다. 2분기(-4883억원)에 이은 두 개 분기 연속 적자다. 이에 따라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시설 투자를 1조원 이상 줄이고, 내년 이후에도 감가상각비의 절반 수준에서 집행할 수 있도록 기존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또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생산하는 파주 공장의 일부 라인에 대해 가동 중단도 고려하고 있다.

경계현 “TSMC에 뒤질 수 있어” 위기의식 

삼성전기 역시 중국 내수 시장에서 스마트폰과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약화로 고전하고 있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조3838억원, 3110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5.4%, 31.8% 감소했다. 회사 측은 “4분기에도 일부 IT 제품의 수요 둔화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서버용 고집적 반도체 패키지 기판(FCBGA)과 네트워크·전장용 기판 등으로 제품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전자도 3분기 영업이익(잠정)이 전년 동기 대비해 31.7% 감소한 10조8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메모리 불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경계현 사장은 이날 직원을 대상으로 한 경영현황 설명회에서 무거운 톤으로 경기 침체의 장기화를 예상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사인 대만 TSMC를 언급하며 “(반도체 시장에서) 올해까지는 TSMC보다 앞설 것 같지만 내년은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LG전자는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74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해 25.1% 늘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지난해(5968억원)엔 제너럴모터스(GM) 전기차 리콜 관련 충당금 약 4800억원이 제외된 수치라 업계는 실제로 이익이 줄어든 것으로 봤다. 두 회사는 각각 27일, 28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나마 LG이노텍은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애플의 아이폰14 흥행에 힘입어 영업이익이 지난해 3357억원에서 올해 4448억원으로 늘면서 선방한 편이다.

시장이 이처럼 갑작스레 얼어붙으면서 LG는 그룹 차원에서 위기 대응방안을 세울 것으로 전해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25일 LG전자를 시작으로 한 달 동안 주요 계열사의 사업 보고를 받는데, 이번 보고회에서 복합위기 대응 전략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1.7% 감소한 10조80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삼성디지털프라자 모습. 뉴스1

삼성전자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1.7% 감소한 10조80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삼성디지털프라자 모습. 뉴스1

“4분기도 암울, 생존 모드로 전환할 때”

전자·부품 업종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전체 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6으로 9월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2월(76)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저치다. BSI는 기업들의 경기 인식 조사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제조업 BSI는 72로 2020년 9월 이후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비제조업 BSI도 전월보다 2포인트 하락한 79를 기록했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은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무역적자 지속 등 현재와 같은 복합위기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안정적 자금 확보에 힘쓰면서 수익성 확보와 시장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계속 금리를 높이면서 침체 국면을 만들고 있다”며 “기업들의 실적 악화 현실화가 이제 시작됐고, 4분기에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금은 생존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신사업으로 옮겨가는 포트폴리오 조정의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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