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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 백골, 1년 넘게 아무도 몰랐다…40대 탈북민의 고독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탈주민은 남한 살이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지난 2002년 탈북해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심리 상담과 취업 지원을 돕는 전문상담사로 일했던 김모(49)씨가 2017년 12월 하나재단을 그만둘 무렵 지인들에게 하던 말이다. 익명을 요청한 그의 지인들은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는 굉장히 교양 있고, 성실한 지성인이었는데 전문상담가가 받는 처우 등 여러 면에서 힘들어했다”며 “이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날 줄은 미처 몰랐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숨진 채 발견된 김모(49)씨의 집 문에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는 모습. 나운채 기자

지난 19일 숨진 채 발견된 김모(49)씨의 집 문에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는 모습. 나운채 기자

지난 2010년 1월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사례로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던 김씨는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발견 당시 김씨는 겨울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육안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태였다고 한다. 김씨 사망 사건을 조사 중인 서울 양천경찰서는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씨 지인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남북하나재단과 하나센터에서 일하던 김씨는 지난 2017년 12월 주변에 “이 일에 더는 희망이 없어 보여서 영어나 외국어 등 다른 공부를 해보려 한다”고 토로한 뒤 사직서를 냈다. 김씨는 일을 그만두자마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고,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김씨와 함께 근무했다는 A씨는 “여러 차례 (그만두지 말라고) 설득해 봤는데 본인의 결정이 확고했다”며 “전문상담사가 계약직이라 처우가 좋지 않고, 상담 과정에서 폭언이나 성희롱성 발언이 빈번해 힘들어 했던 거 같다”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 고립됐다. 지난 25일 기자가 살펴본 김씨가 살던 임대 아파트 문 앞엔 명도 소송 관련 법원의 등기 송달을 알리는 우편물 도착안내서 6장이 색이 바랜 채 붙어 있었다. 주민이 직접 검침해 적는 난방유량계는 공란으로 남겨져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김씨가 사람들 눈에 띄는 분이 아니고,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다”며 “다른 아파트 주민들과도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도 김씨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북한이탈주민은 정착 후 5년 간 경찰의 신변 보호 대상이 되고, 이후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보호 조치가 연장되는데 김씨는 2019년 경찰의 보호 조치를 거절했다. 경찰 관계자는 “본인이 원치 않아서 2019년에 보호 조처가 종료됨에 따라 현재 상태가 어떤지 등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 경기도 수원 소재 한 다가구주택의 문 앞의 모습. 전날(21일) 세 모녀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초인종 위에는 가스검침원의 연락을 달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채혜선 기자

지난 8월22일 경기도 수원 소재 한 다가구주택의 문 앞의 모습. 전날(21일) 세 모녀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초인종 위에는 가스검침원의 연락을 달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채혜선 기자

 결국 김씨의 사망 사실이 확인된 건 소송을 통한 퇴거 조치가 진행되면서다. SH공사가 김씨를 상대로 낸 명도소송 판결문을 보면 김씨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13개월에 걸쳐 총 151만1240원의 임차료 및 90만4050원의 관리비를 내지 못했고, 지난해 7월1일 퇴거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김씨의 응답은 없었고, SH는 지난 2월16일 소송을 제기해 7월7일 승소 판결을 받아 강제 퇴거 절차를 진행했다.

지난 8월21일 경기도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세 모녀(母女)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일어난 지 약 2달 만에 비슷한 비극이 일어나면서 시스템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씨가 북한이탈주민인 만큼 통일부의 적극적 조처가 필요하단 지적도 뒤따른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통일부 등 국정감사에서 “(김씨가) 탈북자의 한계를 많이 비관해 왔다고 한다”며 이 사건을 언급하자 권영세 장관은 “지자체에서 케어(관리)했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한 뒤 “시스템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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