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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왔는데…시중은행, 4분기 기업 대출 문턱 높인다

중앙일보

입력

올해 4분기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 문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회사채와 단기자금 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은행 대출 문마저 좁아지면서 기업의 ‘돈맥경화’ 우려도 커지게 됐다. 은행의 기업 대출은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대기업까지 은행 대출 창구에 몰리면서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뉴스1

26일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 설문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올해 4분기 기업에 대한 대출태도 지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3을 기록했다. 해당 지수가 마이너스(-)일 경우 대출 심사를 엄격히 하고, 대출 한도를 줄이는 등 대출에 대한 문턱을 높인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는 204개 금융사의 여신 총괄책임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기업에 대한 대출 태도는 올해 2분기 이후 악화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는 대기업(-6), 중소기업(-3) 등이다. 한은은 “대출건전성 관리 필요성과 불확실한 대내외 경기상황 등으로 전분기에 이어 대출태도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기업의 '돈맥경화'도 심해질 수 있다.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 중 하나인 회사채 시장은 꽁꽁 얼어 붙어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회사채는 2조1000억원 어치의 순상환이 이뤄져 발행보다 상환이 많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률(미매각금액/전체 발행금액)은 20.5%를 기록했다. 1년 전 미매각률은 0.2%에 불과했다. 특히 10월 이후에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며 최고신용등급(AAA)인 한전채마저 미매각이 속출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회사채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으며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은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27조90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대출 증가액(7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대기업 대출은 9월에만 4조7000억원이 늘었다.

은행들은 4분기에도 기업 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대출수요 지수는 대기업(6)과 중소기업(3) 등으로 조사됐다. 대출수요지수가 플러스(+) 값을 나타낼 경우 대출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뜻이다.

고려대 강성진 경제학 교수는 “금리 인상기에 대출이 어려워지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며 “대기업은 신규 투자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업의 '돈맥경화' 우려에 금융당국도 이날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자금운용 점검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요 은행들은 “기업부문에 대한 자금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기업대출과 크레딧 라인(한도 여신) 유지 등의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돈이 도는 기본 채널인 은행의 자금 여력이 풍부한 만큼, 은행 등의 시장참여자가 노력할 경우 자금경색 우려가 해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대출과 관련해 연체 등 신용위험 관련 지수는 악화했다. 은행이 예상한 4분기 대기업의 신용위험지수는 17로 전분기(11)보다 6포인트 상승했다. 중소기업 신용위험 지수는 같은 기간 25에서 31로 뛰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지수는 모두 코로나 직후인 2020년 3분기 이후 최고치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2023년의 경우 연체율 등 (대출과 관련한) 건전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고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 채무부담의 급증, 부동산 경기 침체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늘어날 우려도 크다”며 “코로나 금융 지원으로 건전성 착시는 더욱 심화할 수 있어 금융회사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한은 조사에서 가계의 4분기 신용위험지수(42)는 2003년 3분기(44)기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2003년 3분기는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으로 대규모 연체가 발생했던 때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 둔화 가능성에 따른 일부 취약 차주(대출자)의 상환 능력 저하와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대 등으로 지수가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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