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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따보니 110억 필로폰…'동남아 마약왕'이 옥중 지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110억원 상당의 필로폰 밀수를 시도한 ‘동남아 마약왕’ A씨의 소재를 알고도 잡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A씨가 동남아 한 국가의 교도소에 수감중이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26일 국내 필로폰 유통책 8명을 마약류관리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필로폰 유통 조직원 등 8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의 공범으로 해외로 도주한 D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지명수배를 내렸다.

김희중 경찰청 형사국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서 최근 마약범죄 관련 동향 및 대응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희중 경찰청 형사국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서 최근 마약범죄 관련 동향 및 대응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번 검거는 지난해 9월 마약을 구매자 C씨를 검거한 뒤 유통망을 추적해 온 결과다. 경찰은 그 과정에서 첩보를 입수해 지난 4월 18일 관세청과 공조해 국제특급우편으로 통조림 8캔에 담아 국내에 밀반입하려던 필로폰 3㎏을 적발·압수했고, 유통망 검거 과정에서 판매 전이던 필로폰 540g도 추가 압수했다. 압수 총량(3.54㎏)은 시가 110억8000만원 상당으로 약 11만8000회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 밀수를 A씨가 감옥에서 탤레그램을 통해 지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 전과 10범이 넘는 60대 남성 A씨는 2019년 동남아로 출국해 2020년 7월 현지에서 마약 소지 및 밀수 혐의로 검거돼 구속 수감됐다. 그러나 수감 이후 A씨는 교도소 담장을 방패막이 삼아 밀수 시도를 계속해 왔다. 그간 검·경은 A씨에 대해 5차례나 지명수배를 내렸고 이 과정에서 파악된 밀수 시도 규모도 필로폰 7.6㎏과 헤로인 1.2㎏ 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한국에 있을 때도 유명한 마약 유통책이었는데, 동남아로 가서는 사실상 ‘마약왕’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며 “수감된 게 오히려 마약 유통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A씨는 교도소 내에서 가족들도 마약 밀수 및 수익금 관리에 동원했다. 마약 판매 대금 일부를 자신의 20대 딸 E씨에게 맡겼으며 경찰은 지난 8월 E씨의 자택 금고에 있던 현금 3억3400만원을 압수해 기소 전 추징 보전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노모에게 헤로인 1.208㎏ 밀수 범행을 지시했다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의 필로폰(3kg)을 밀수입하고 국내에서 유통시킨 피의자 등 8명을 검거, 그중 6명을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적발된 필로폰과 필로폰 밀반입에 사용된 캔과 상자.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의 필로폰(3kg)을 밀수입하고 국내에서 유통시킨 피의자 등 8명을 검거, 그중 6명을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적발된 필로폰과 필로폰 밀반입에 사용된 캔과 상자.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의 필로폰을 밀수입하고 국내에서 유통시킨 피의자 등 8명을 검거, 그 중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적발된 필로폰.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의 필로폰을 밀수입하고 국내에서 유통시킨 피의자 등 8명을 검거, 그 중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적발된 필로폰. 사진 서울경찰청

수형자 이송, 사실상 불가능…A씨 범죄 차단 길 요원

 경찰에서 외사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 온 B씨는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에서는 돈만 있으면 교도소 안에서 핸드폰 사용은 물론, 마약 밀매, 청부 살인 등을 지시하는 게 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A씨가 동남아의 한 교도소에서 은밀히 필로폰을 공급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한국의 마약 유통업자들이 A씨를 접견하러 현지까지 찾아다닌다는 후문도 있다.

그럼에도 검·경이 해당 국가로부터 A씨의 신병을 넘겨받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수형 중인 국민을 한국으로 이송해 국내에서 잔여 형을 받게 하는 ‘수형자 이송제도’가 있지만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찰은 A씨의 형 집행이 끝나는 대로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아 강제 송환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수감 중 벌이는 A씨의 범죄 행각을 차단할 방법도 마땅찮다.

마약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이자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도 필리핀 현지 감옥에 수감 중”이라며 “검찰이 송환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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