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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오은영 신드롬’이 불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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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은영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심리문제 해결사,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오은영 박사 얘기다. 방송, 출판, 강연 등 전방위로 활동한다. 젊은 엄마들에게 그의 육아 책은 필독서다. 유명 연예인들도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 TV에서는 육아 상담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연예인 대상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채널A), 부부 상담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MBC) 등이 인기다. 어떻게 방송에 털어놓을 수 있을까 싶은 사연이 쏟아진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여섯 살이 되도록 모유 수유를 하는 여아가 나온다.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탤런트 이창훈은 아내와 딸의 안전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가족들끼리 위치 추적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다. ‘결혼 지옥’에는 임신한 아내를 폭행하고, 외도를 하고, 일상이 욕설인 부부들이 나온다. 국제결혼을 한 아내에게 “너를 돈으로 사 왔다”고 폭언하는 남편도 있다.

여러 TV 가족 상담 프로 등을 통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정신의학 전문의 오은영 박사.    [사진 채널A]

여러 TV 가족 상담 프로 등을 통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정신의학 전문의 오은영 박사. [사진 채널A]

 이처럼 숨기고 싶은 사연을 TV 앞에 드러내는 건 그만큼 오은영이라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녀의 동의 없는 방송 출연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성장 후 과거 방송 출연을 수치스럽게 여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는 부모가 아이들의 사진을 SNS에 올리는 ‘셰어런팅(sharenting)’까지 동의 없는 사생활 침해로 문제가 된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자녀의 문제는 곧 부모의 문제고, 문제 아동 뒤에는 문제 가정이 있다고 말한다. 부모가 달라지고 훈련과 교육, 적절한 치료를 통하면 자녀 문제는 해결된다는 희망적 메시지도 준다. 프로그램은 늘 해피 엔딩이다. 적어도 방송에서는 맞춤형 솔루션을 통해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평적 가족관계를 지향하고,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되 완벽함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강점도 있다. 육아 상담을 하러 나온 엄마가 프로그램 중 갑자기 ‘금쪽이’로 변경돼 상담을 받는 일도 종종 생긴다. 부모나 양육자들이 즐겨 보는 프로지만 육아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시청자들도 다수다. 자신의 심리 문제를 프로그램에 빗대어 부모와의 관계 중심으로 돌아본다는 얘기다.
 그런데 전 세계 양육 방식을 비교 고찰한 인류학자 로버트 러바인(하버드대 교수)·세라 러바인 부부의 책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자녀 양육에서 부모의 중요성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흔히 아동기가 절대적이고 부모가 자녀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는 ‘후원자’일 뿐이며 아동의 자기 회복력, 성장 과정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부모들의 절대적 역할을 강조하는 태도는 ‘집중육아’ 혹은 ‘양육공포’로 이어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닥칠 위험을 최대한 막을 수 있게 삶을 디자인해주며, 적은 수의 자녀를 낳아 최선 혹은 그 이상을 하려는 게 집중육아다. 현대사회의 경쟁적 상황도 한몫한다. ‘아이는 놔두면 저절로 큰다’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 선택지는 둘이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집중육아를 하든지, 아니면 양육공포로 출산을 포기하고 개나 고양이를 기르든지.
 최근 만난 한 수의과 교수는 반려견의 문제 행동에 견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강형욱 동물훈련사의 프로그램에 비판적이었다. 견주의 책임감은 중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과도한 죄책감을 안겨준다며 동물의 문제 행동이 꼭 보호자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은영 상담 프로를 즐겨 본다는 30대 여성은 “육아든, 결혼생활이든 너무 힘들어 보여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게 문제”라는 시청 소감을 남겼다. 연일 자극적 사례로 시청률이 상승 중인 ‘결혼 지옥’은 비혼 독려 프로그램으로 보일 정도다. 일상적 부부 갈등의 해결 팁을 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TV 솔루션 프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력적이고 위험스러운 가정을 지켜보는 게 불편하다는 시청자가 많다. 경제 문제 등 본질은 대부분 손도 못 댄다. ‘결혼 지옥’에는 오은영 박사가 아니라 변호사나 경찰이 필요하다는 우스개도 있다.

TV 가족 상담 프로 전성시대 #자녀 사생활 공개 문제될 수도 #시청률 의식 과도한 상황 눈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