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실패한 대장동 수사, 대선자금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1팀장

정효식 사회1팀장

검찰의 392일간 대장동 수사는 실패했다. 적어도 현재 공소장에선 그렇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유동규가 김만배·남욱·정영학 등 부동산 업자들과 호형호제하며 어울려 뇌물을 받고 사업권을 통째 넘긴 ‘개인 비리’ 사건이 됐다. 도시개발사업의 인허가 결정권자, 윗선은 실종됐다.

지난 수사에서 증거 수집이 1번인 수사의 원칙부터 깨졌다. 2021년 9월 29일 수사 첫날부터 유 전 본부장이 휴대전화를 자택 창밖으로 던졌는데도 “그런 일 없다”고 했다가 경찰이 일주일 만에 주운 사람을 찾아내 망신을 당했다. 성남시청은 보름여가 지난 뒤에 들어갔고, 그중 성남시장실·비서실 압수수색은 23일 뒤 여론에 떠밀려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18일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돈받은자= 범인”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18일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돈받은자= 범인”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임현동 기자

수사팀은 ‘증거’ 대신 사건 관계자들의 ‘입’을 쫓았다. 핵심 피의자들이 윗선을 함구하자 수사는 멈췄다. 황무성 초대 공사 사장의 사퇴 종용 의혹의 경우 유한기 전 개발본부장, 김문기 전 개발사업처장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당시 성남시장과 정진상 정책실장에게 “증거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 게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윗선 없는 대장동 재판도 1년간 “시장님 지침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피고인들의 항변 속에 헛바퀴만 돌았다.

대장동은 업자 몇몇이 개인 투자금 한 푼 안 넣고 택지개발이익 배당으로 4040억원, 추가 아파트 분양수익으로 최소 2300억원을 챙긴 단군 이래 최대 투기사업이다. 이중 김만배·남욱·정영학 세 사람이 챙긴 이익만 각각 1000억원이 넘는다. “돈 받은 자=범인”이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론대로 대장동은 수상한 ‘돈’의 흐름과 증거를 쫓았어야 했다.

‘특수수사의 전범’이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돌파구 역시 “남기춘 당시 중수1과장이 명동 사채시장에서 유통된 삼성 채권을 찾아내면서 마련됐다”.(안대희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피의자 입에 의존한 수사는 덮기도 쉽다. 뛰어난 변호사와 지략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미 발견된 증거를 없애는 일은 쇠고랑을 찰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달 들어 민주당 불법 대선 경선자금 8억여원을 찾아낸 것도 지난 7월 구성된 2기 수사팀이 단순히 유동규 전 본부장의 ‘입’을 열어서가 아니다. 1010억을 배당받은 남욱 변호사의 천화동인 4호(현 엔에스제이홀딩스)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임원 이모씨가 매번 돈을 전달한 일시와 장소, 액수를 기록한 메모장 등 증거를 확보한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실패한 대장동 수사의 전철을 밟지 말고 이번엔 경선자금은 물론 대장동 이익금의 사용처 전부 밝혀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