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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은 직무유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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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명 대표 측근 수사와 국회 활동은 별개

내년 예산안 등 민생 현안과 정쟁 연계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의 어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면 거부한 것은 국회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매우 유감이다. 시정연설은 국회가 한 해 나라 살림살이에 대한 대통령의 구상을 직접 듣고 이를 꼼꼼히 따져보는 예산안 심의 절차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민생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보이콧은 명분이 없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그동안 방만했던 재정 운용을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하고, 재원을 아껴 사회적 약자 보호와 민간 주도의 역동적 경제 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랏빚은 후대에 큰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회복은 반드시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야당 의석은 절반 이상 텅 비어있다. 장진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야당 의석은 절반 이상 텅 비어있다. 장진영 기자

그러나 본회의장 의석은 절반 넘게 텅 비어 있었다. 윤 대통령이 5개월 전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첫 시정연설을 하고 나서 야당 석을 찾아가 악수를 청하던 장면과는 딴판이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 해외 순방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까지 다시 끄집어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며 시정연설에 전면 불참했다. 그 대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방식의 시정연설이 거부된 적은 있지만, 대통령 시정연설에 대한 전면 보이콧은 이를 연례화한 박근혜 정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시정연설이 법으로 규정된 대통령과 국회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점에서 보이콧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국이 더욱 얼어붙으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639조원에 달하는 새해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민주당이 지난 24일 검찰의 중앙당사 내 민주연구원 압수수색 재시도에 반발해 “이제 협치는 끝났다”고 선언한 데 이어 시정연설 보이콧까지 강행하면서 법정 기한(12월 2일) 내 처리는 안갯속으로 빠져든 양상이다. 여야의 대치로 자칫 사상 첫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럴 경우 신규 사업은 예산 집행이 불가능해 각종 민생 대책이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서민의 시름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여야는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예산안 심사 등 민생 현안을 수사나 정치적 논쟁과 연계하는 행태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윤 대통령도 예산을 계획대로 확보해 국정을 순조롭게 운영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야당 협조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 이제라도 실종된 정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첫 시정연설 때 영국의 전시연립내각을 예로 들며 협치를 강조했던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