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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교실·공동묘지 서울 옛 얘기…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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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을 마무리했다. 궁궐을 주로 다뤘던 서울편 1·2권과 달리, 3·4권은 근대 골목과 도심의 변화를 그려냈다. [사진 창비]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을 마무리했다. 궁궐을 주로 다뤘던 서울편 1·2권과 달리, 3·4권은 근대 골목과 도심의 변화를 그려냈다. [사진 창비]

서울 종로구 창성동 130번지에서 태어나 대학생까지 학창시절을 보낸 미술사학자가 평생 보고 자란 서울의 모습을 옛날 이야기하듯 생생히 기록했다. 유홍준(73)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25일 펴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1·12권(창비)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1권과 12권은 각각 서울편 3·4권이다. 궁궐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던 서울편 1·2권과 다르게, 서울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묻은 거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든 기간에 자신이 나고 자란 서울을 구석구석 훑었다. 서문의 제목도 ‘나의 체험적 서울 답사기’다.

유 이사장은 25일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사실 앞선 1·2권으로 서울 답사기를 마치려고 했고,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문화유산’ 개념에서는 안 써도 그만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한 번은 서울 답사 프로그램에서 제 이야기를 듣던 중학생 아이가 굉장히 재밌어하길래 ‘뭐가 재밌냐’ 물었더니, ‘선생님 어렸을 때 여기엔 뭐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재밌다’고 하더라”며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를 전했다.

유 이사장은 “그 학생과 나는 48세 차이가 나는 띠 동갑”이라며 “내가 살던 시절의 보통 이야기도 그 학생 입장에선 내가 3·1운동 때 이야기 듣는 것처럼 신기하고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책에는 전후 2년 밖에 되지 않은 1955년 청운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천막 교실이 있던 풍경, 고서점 ‘통문관’ 주인이었던 이겸로 선생과의 일화, 1970년대 상업 화랑이 문을 연 인사동의 풍경 등 서울 토박이인 그가 겪은 장면들을 할아버지가 전해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담았다.

북촌의 ㅁ자 한옥은 1930년대 주택업자 정세권이 만든 도시형 한옥 개량주택 표준이다.

북촌의 ㅁ자 한옥은 1930년대 주택업자 정세권이 만든 도시형 한옥 개량주택 표준이다.

11권은 서울 북악산과 인왕산·북한산 일대를 훑은 ‘사대문 안동네’ 편이고, 12권은 성북동·선정릉·망우리 등 그 밖의 서울 지역을 다룬 ‘강북과 강남’ 편이다. 1930년대 서울 시내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내 공동묘지를 모두 이장한 망우리 공동묘지, 1930년대 주택업자 정세권의 도시형 한옥 개량주택 표준설계가 들어선 북촌 등 서울의 확장과 함께 생겨난 지역의 특성을 풀어냈다. 유 이사장은 “이런 것이 1930년대 사실상의 문화사이고, 도시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던 모습을 설명하는 게 일제강점기 역사나 문학을 읽는 데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가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언급하며 “고고학이 과거의 유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박태원의 소설은 현재의 것을 연구하는 ‘고현학’”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후대 사람에게는 나름의 감명이 있지 않겠느냐”며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67학번 대학생 시절부터 봐왔던 고서점 거리를 비롯해 여러 풍경을 본 대로 얘기해두면 100년 후 사람들에게는 ‘당시 한국문화 형성 과정이 어땠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기록으로 남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책이 북악산에서 시작하는 만큼, 최근 개방된 청와대에 대한 언급도 담겼다. 유 이사장은 “일단 개방한 건 좋은 일인데, 앞으로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며 “개인적으로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워서 새 명소를 만든 것처럼, 청와대를 새롭게 활용할 방안에 대해 뛰어난 건축가들을 모아 놓고 경연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1993년 첫 출간된 시리즈로, 내년이면 출간 30주년을 맞는다. 이번 책을 펴낸 25일은 ‘독도의 날’ 이다. 유 이사장은 “꼭 들어갔어야 할 문화유산 중 안 들어간 것도 많고, 그냥 마침표를 찍고 끝내기가 어렵다”며 “다음 시리즈는 ‘국토 박물관 순례’를 컨셉트로 잡아,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시작으로 그간 쓰지 않은 곳들을 거쳐 독도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다. 이미 집필은 시작했고, 15권 쯤으로 마무리를 지을 땐 대장정을 마치는 잔치를 크게 할 테니 책 낼 때 꼭 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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