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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 급락, ELS 상품 11조원 중 6조 원금손실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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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0대 후반의 회사원 A씨는 지난해 1월 코스피200 지수와 S&P500 지수, 홍콩H지수(HSCE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노녹인(no knock-in·원금 손실 구간이 없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 3년(만기) 뒤 세 지수가 65%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1만1000선을 돌파했던 홍콩H지수는 최근 5200선이 무너졌다. A씨는 홍콩H지수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조기 상환 조건에 번번이 미달하면서 자금이 묶인 데다 만기에 ‘손실 폭탄’을 안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홍콩 증시가 급락하면서 이와 연동한 ELS에 돈을 넣은 투자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 거래소에 상장된 50개 중국 기업으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국내에서 팔리는 ELS의 단골 기초자산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 지수가 연초 8188.76에서 25일 종가 기준 5180.31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만 36.7% 하락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연임과 측근 최고지도부 출범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 24일엔 하루 만에 7.3% 폭락했다. 지수가 떨어지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조기 상환을 하지 못해 자금이 묶이거나 만기 때 원금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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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증시가 급락한 건 시진핑 3기 체제가 출범한 직후였다. 그간 중국 경제를 이끈 핵심 인사가 물러나면서 향후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 플랫폼 기업 활성화 기조가 약화할 것이란 우려에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중국은 올해 3분기 시장의 기대를 웃도는 경제성장률(3.9%)을 기록했지만 부동산 경기 둔화, 수출 증가율 부진 등이 부각되며 증시는 약세를 보였다. 박수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투자 비중이 높고, 빅테크 기업 대부분이 상장된 데다 상·하한 제한폭이 없는 홍콩 증시에서 ‘패닉 셀’(공포 투매)이 나타나며 중국 본토보다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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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증시의 급락으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원금 손실 위험도 커졌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공모 ELS 발행 규모는 10조5520억원에 달한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공모 ELS 중 녹인(원금 손실) 구간이 5500포인트 위인 상품이 2조8000억원, 녹인에 가까운 5000~5500포인트 사이에 있는 상품이 3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25일 기준 홍콩H지수(5180.31)를 대입하면 이미 2조8000억원어치의 상품이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섰고, 향후 지수 5000선이 무너질 경우 약 6조원에 달하는 상품이 원금 손실 위험에 처하게 된다.

지수가 꾸준히 하락해 조기 상환에 실패하면서 투자금도 발이 묶였다. ELS는 정기적으로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건을 충족한 경우 조기 상환되지만, 조건에 미달하면 상환이 미뤄진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미상환 잔액은 21조187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9월(15조7666억원) 대비 34.4% 늘어났다. 그만큼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박인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홍콩은 달러 페그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금리·환율은 미국과 연동되는 한편, 경기 상황은 중국 본토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홍콩 금융시장과 경기 간의 탈동조화가 일어나면서 홍콩 주식시장은 당분간 부진한 흐름을 지속할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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