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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 들어갔는데 '패닉 셀'…절반이 원금손실 위험 처한 이 상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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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40대 후반 회사원 A씨는 지난해 1월 코스피 200지수와 S&P 500지수,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노녹인( no knock-in·원금 손실 구간이 없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 3년(만기) 뒤 세 지수가 65%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1만1000선을 돌파했던 홍콩H지수는 최근 5200선이 무너졌다. A씨는 홍콩 H지수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조기 상환 조건에 번번이 미달하면서 자금이 묶인 데다 만기에 '손실 폭탄'을 안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과 측근으로 구성된 최고지도부 출범 우려에 24일 홍콩H지수는 7% 넘게 하락했다. [AF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과 측근으로 구성된 최고지도부 출범 우려에 24일 홍콩H지수는 7% 넘게 하락했다. [AFP=연합뉴스]

홍콩 증시가 급락하면서 이와 연동한 ELS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 거래소에 상장된 50개 중국 기업으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국내에서 팔리는 ELS의 단골 기초 자산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 지수가 연초 8188.76에서 25일 종가 기준 5180.31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만 36.7% 하락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연임과 측근 최고지도부 출범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 24일엔 하루 만에 7.3% 폭락했다. 지수가 떨어지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조기 상환을 하지 못해 자금이 묶이거나 만기 때 원금손실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이 커진다.

홍콩 증시 '패닉 셀'에 ELS 투자자 비명  

홍콩 증시가 급락한 건 시진핑 3기 체제가 출범한 직후였다. 그간 중국 경제를 이끈 핵심 인사들이 물러나면서 향후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 플랫폼 기업 활성화 기조가 약화할 것이란 우려에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중국은 올해 3분기 시장의 기대를 웃도는 경제성장률(3.9%)을 보였지만 부동산 경기 둔화, 수출 증가율 부진 등이 부각되며 증시는 약세를 보였다. 박수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투자 비중이 높고, 빅테크 기업 대부분이 상장된 데다 상하한 제한폭이 없는 홍콩 증시에서 '패닉 셀(공포 투매)'이 나타나며 중국 본토보다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홍콩증시의 급락으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 위험도 커졌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공모 ELS 발행 규모는 10조5520억원에 달한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공모 ELS 중 녹인(원금 손실) 구간이 5500포인트 위인 상품이 2조8000억원, 녹인에 가까운 5000~5500포인트 사이에 있는 상품이 3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25일 기준 홍콩H지수(5180.31)를 대입하면 이미 2조8000억 원어치의 상품이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섰고, 향후 지수가 5000선이 무너질 경우 약 6조원에 달하는 상품이 원금 손실 위험에 처하게 된다.

H지수 연계 ELS 미상환 잔액 21조원 

지수가 꾸준히 하락해 조기 상환에 실패하면서 투자금도 발이 묶였다. ELS는 정기적으로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건을 충족한 경우 조기 상환되지만, 조건에 미달하면 상환이 미뤄진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미상환 잔액은 21조 187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9월(15조7666억원) 대비 34.4% 늘어난 수치다. 그만큼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투자자들을 지치게 하는 요소다. 박인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홍콩은 달러 페그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금리·환율은 미국과 연동되는 한편 경기 상황은 중국 본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홍콩 금융 시장과 경기 간의 탈동조화가 일어나면서 홍콩 주식시장은 당분간 부진한 흐름을 지속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고점에 설정된 ELS라 하더라도 만기가 많이 남은 만큼 손실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 백 연구원은 "내년 1분기를 통화정책 긴축의 정점이라고 본다면, 내년 상반기부터는 ELS 손실 폭이 축소되거나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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