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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대오 유지하라" 野원로 조언에도...스텝 꼬인 이재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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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 참석을 앞두고 대화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 참석을 앞두고 대화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상임고문단이 25일 “윤석열 정부가 민주당을 궤멸시켜 정계 개편을 하려는 의도”라며 “단일대오를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상임고문단과 조찬 간담회를 가졌다. 전날 밤 참석 여부를 묻는 연락이 갈 만큼 황급하게 만들어진 자리였다고 한다. 상임고문 14명 중 이해찬·문희상·정동영·박병석·김원기·임채정·이용득 상임고문 등 7명이 참석했다.

이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이 대표는 “현재 검찰이 수사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가장 선명하게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 대표의 정치적 후견인인 이해찬 상임고문이었다. 그는 “우선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정의를 분명히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검찰이 야당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당이 똘똘 뭉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상임고문 다수는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기 민주당을 궤멸 혹은 파괴해 정치지형을 재편하려는 것 아니냐”라며 이 고문 말에 동의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이해찬 상임고문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출판기념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이해찬 상임고문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출판기념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할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정동영 상임고문은 “선출된 권력인 윤석열 정부가 사정 기관인 검찰을 통해서 야당을 탄압하는 것은 ‘민간독재’에 해당한다”며 “이승만 정부가 경찰 권력을 통해 야당을 압박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주장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훨씬 적은 의석을 갖고도 집권당에 맞섰다. 169석 의석으로 너무 무르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며 “더 강경하게 맞서달라”고 주문했다.

반면 장외투쟁보다는 민생을 챙기라는 주문도 나왔다. 한 상임고문은 “윤석열 정권은 부인하겠지만, 현재 윤 대통령과 검찰이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민주당은 국회를 지키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임고문은 “국회 밖으로 뛰쳐나가서 장외투쟁만 한다면 윤석열 정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민생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필요할 때는 투쟁하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간담회 후 브리핑에서 “상임고문들은 일부 정치검찰에 의한 검찰 독재, 공안통치라고 현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 등 민주세력과 연대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다”고 전했다.

2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하지만 이런 조언에도 이 대표는 민생과 투쟁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 대표는 상임고문 간담회 직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를 회복해야 하고 존중하고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며 민생과 협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여당이 야당을 말살하고 폭력적 지배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면 이제 우리는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당내에서는 “민생과 투쟁은 양립이 어려운데 두 가지를 함께 내세우다 보니 스텝이 꼬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의 이런 입장은 갈수록 거세지는 검찰의 압박과 무관치 않다. 지난 8월 말 당 대표 당선 이후 줄곧 ‘민생 우선주의’를 외치며 22개 우선처리법안까지 발표했지만,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이는 뒷전으로 밀린 모습이다. 이에 양곡관리법, 남품단가연동제 등 ‘이재명표 민생법안’도 처리가 불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투쟁을 외치다가 상임위 회의장으로 돌아가서 점잖게 여당 의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법안 심사를 할 수 있겠느냐”라며 “여당도 심사에 훼방을 놓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열린 더불어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 발언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열린 더불어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 발언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특히 최측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나 이 대표 본인에 대해 검찰이 강제 수사를 벌일 경우 이 대표의 ‘민생·투쟁 병행’ 전략은 더 꼬일 수 밖에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 압박이 세지면 이 대표는 거세게 반발하면서 대장동 특검법 처리에 사활을 걸 것”이라며 “민생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응카드가 마땅치 않은 점도 고민거리다. 친명계 초선 의원은 “향후 2주간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투쟁에 좀 더 힘을 기울일 예정”이라며 “다만 ‘조작수사’ ‘야당 탄압’이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 외에는 검찰 수사를 방어할 방법이 거의 없어 고심이 깊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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