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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빼고 현실로 채웠다…“민생 숨통 틔워달라” 호소한 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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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5일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달라”고 호소했다. 연설의 핵심 메시지였다. 엄중한 경제·안보 상황 극복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고, 반도체·원자력·인공지능(AI) 등을 거론하며 “미래 성장기반 구축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 더불어민주당의 헌정사상 첫 보이콧 가운데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리고자 5개월여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2번째 시정연설을 시작한 윤 대통령은 어려운 대내외 여건부터 언급했다. 먼저 “전 세계적인 고물가, 고금리, 강달러의 추세 속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경제의 불확실성은 높아졌다.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이 입는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산업과 자원의 무기화, 그리고 공급망의 블록화라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장제원 의원과 인사를 나누며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장제원 의원과 인사를 나누며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엄중한 안보 상황과 관련해선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직접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최근 유례없는 빈도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위협적인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나아가 핵 선제사용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뿐 아니라 7차 핵실험 준비도 이미 마무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응책으로 “한·미 연합방위태세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해 압도적 역량으로 대북 억제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친일 국방'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안보협력 의지를 재천명한 모양새다.

그리고 예산안에 대해선 “내년 총지출은 2010년 이후로 처음으로 전년 대비 축소 편성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건전 재정' 기조에 방점을 찍었다. “글로벌 복합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어떻게 민생현안을 해결해 나갈 것인지 그 총체적인 고민과 방안을 담았다”며 “우리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됐다”고 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 정책에 날을 세운 취지였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경제 성장과 약자 복지의 지속 가능한 선순환을 위해서 국가재정이 건전하게 버텨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건전재정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런 ‘긴축 예산’ 가운데서도 약자 복지만큼은 더 꼼꼼히 챙기겠다고 말했다. 연설 중 ‘약자’가 7번, ‘취약계층’이 2번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며 생계급여 인상, 사회보험 확대 등을 예로 들었다. 국정 핵심 키워드가 된 '약자 복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표를 얻기 위한 정치 복지’로 규정하며 그 반대 개념으로 제시한 용어다. 이어 윤 대통령은 청년을 위한 주택 확대,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 인상 등도 약속했다.

예산확보를 통한 성장기반 구축도 언급됐다. 먼저 “메모리 반도체의 초격차 유지와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문 인력양성과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등에 1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원자력 산업에 대해서도 “무너진 원자력 생태계 복원이 시급하다”며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원전 해체기술 개발 등 차세대 기술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자 컴퓨팅, 우주항공, 인공지능, 첨단바이오 투자지원 ▶소상공인 채무조정 및 재기 지원 ▶청년 농업인 지원 ▶수도권 GTX 기존 노선의 적기 완공 등의 세부 정책을 소개했다. 이를 언급하는 동안 경제를 13번, 투자는 9번, 산업은 5번 언급했다. 대선공약인 사병봉급 인상과 관련해선 “병영환경을 개선하고 사병봉급을 2025년 205만원을 목표로 현재 82만원에서 내년 130만원까지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전 야당 의원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전 야당 의원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런 내용을 담은 예산안 처리를 위해 윤 대통령은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 “국회와 머리를 함께 맞댈 때” 등 표현을 달리해 가며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통상 쓰는 ‘협치’ 대신 이날 윤 대통령이 ‘협력·협조’를 대신 사용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다 같은 의미다. 윤 대통령이 평소 쓰는 단어를 그대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연설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자유·연대’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콤팩트하게 필요한 메시지만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부연했다.  그동안의 연설에서 자주 사용해온 추상적 개념 대신 간결하고 담백한 메시지를 앞세워 현실적인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한 셈이다.

연설 말미에 윤 대통령은 “예산안은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지도이고 국정 운영의 설계도”라며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는 시기에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고, 미래 성장을 뒷받침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재차 당부했다. 헌법 54조에 명시된 국회의 예산안 처리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날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역대 최단 시간인 18분 28초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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