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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싹 다 버리려 했다...조각가로 숨진, 종가집 장손의 걸작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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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아울러 지인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추천한 지인에게 ‘인생 사진’이 남다른 선물이 될 겁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정재철 작가의 작품과 가족(왼쪽부터 동생 정정희, 어머니 공순임, 누나 정정옥, 동생 정이선)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비록 쓰레기더미로 만든 작품이지만, 이는 정재철 작가가 우리 삶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은 정재철 작가가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정재철 작가의 작품과 가족(왼쪽부터 동생 정정희, 어머니 공순임, 누나 정정옥, 동생 정이선)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비록 쓰레기더미로 만든 작품이지만, 이는 정재철 작가가 우리 삶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은 정재철 작가가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빠는 떠났지만….
“여행과 삶이 예술”이라고 말하던 오빠 정재철 작가는 2년 전인 2020년 가족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빠는 1988년 제1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조각 『사이 1988-3』로 대상, 1996년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받으며 조각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각에 머무르지 않고 환경과 자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2004년 3월, 한국에서 수집한 폐 현수막을 갖고 7년여에 걸쳐 17개국 50여개 지역 현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골칫덩어리인 폐 현수막이 실크로드 주변 나라들의 다양한 문화 사회적 의식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사용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7년간에 걸친 이 프로젝트는 김종영 미술관에서 전시되면서 '2011 오늘의 작가'로 선발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우리나라 바다를 떠도는 해양 쓰레기를 이용한 〈블루오션 프로젝트〉(2013-2020)를 통해 환경문제를 조명하는 작업을 7년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서해의 신안 앞바다 등 전국의 바닷가를 다니며 해양 쓰레기를 수집하며 지도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빠 정재철 작가는 늘 그렇게 집을 떠나 발이 닿는 곳으로 떠나며 작업을 하다 2년 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승을 떠나기가 아쉬웠는지 아직도 가족의 곁과 미술계에 나타납니다. 떠난 지 일 년 후인 2021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는 기획초대전 〈정재철: 사랑과 평화〉를 2달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그 후에는 광주시립미술관 전시로 이어졌고,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서 전시를 하고, 내년에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다시 한번 전시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오빠를 만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가슴은 미어지고, 자매들도 오빠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도 이제는 연로하셔서 얼마나 더 오빠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전시장에서 사진 기록을 남기고 싶어 ‘인생 사진’에 응모합니다.
정재철 작가 동생 정정희 드림


가족들은 정재철 작가의 작품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정 작가의 작업에 뜻을 같이했던 이들과 ‘정재철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작품을 보존하고저 합니다.

가족들은 정재철 작가의 작품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정 작가의 작업에 뜻을 같이했던 이들과 ‘정재철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작품을 보존하고저 합니다.

정재철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공주 연미산미술공원에 들어선 구순 어머니의 표정에 짙은 그늘이 느껴졌습니다.

말없이 물끄러미 설치된 작품을 보고만 있던 어머니는 한참 지나 긴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 긴 숨이 내려앉을 즈음 조심스레 여쭈었습니다.

“아드님 작품을 보니 어떻습니까?”
“자기가 살아서 이런 걸 펼쳐야 하는데, 못 펼치고 가버려서…. 이런 걸 주우러 다니느라 고생만 하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도 어머니의 시선은 내내 아들의 작품을 훑고 있었습니다.

설치된 작품은 정재철 작가의 〈블루오션 프로젝트〉(2013-2020)였습니다. 전국의 바닷가를 다니며 수집한 해양 쓰레기를 설치한 작품 앞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불어터진 손을 떠올렸습니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사연을 보낸 정정희 씨가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마음이 힘들었죠. 그래도 지금은 몇 번 이 작품을 보니까 조금 안정이 되긴 합니다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내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언니 그 이야기 해드려. 엄마가 처음에 이걸 싹 다 버리라고 한 얘기.”

정재철 작가가 그린 제주 쓰레기 지도입니다.동생 정정희 씨는 이를 두고 “이게 제주도 지도지만 사실은 세계 지도예요. 전 세계 쓰레기가 여기에 다 있는 거예요. 낚싯줄이며, 부표며 온갖 쓰레기의 출처까지 다 있어요. 정말 놀라워요"라고 말합니다.

정재철 작가가 그린 제주 쓰레기 지도입니다.동생 정정희 씨는 이를 두고 “이게 제주도 지도지만 사실은 세계 지도예요. 전 세계 쓰레기가 여기에 다 있는 거예요. 낚싯줄이며, 부표며 온갖 쓰레기의 출처까지 다 있어요. 정말 놀라워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깜짝 놀랄 이야기였습니다.
정재철 작가의 이 작품들은 지금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며칠 전엔 『조각가 정재철과 공공미술 작가들』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김세중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가 정신과 세상에 던진 환경에 관한 물음이 여태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을 싹 다 버리라고 했다니 놀랄 밖에요.

그런데 저의 놀람과 달리 정정희 씨가 웃으며 답을 했습니다.

“오빠가 살았을 때도 작품을 모아두는 특별한 창고가 제대로 없었어요. 그래서 물이 새서 비어 있던 다가구주택 지하에 갖다 놨는데, 그 지역을 재개발해야 해서 치워야 했어요. 한쪽 지하에 어마어마한 상자가 이렇게 쌓여 있고, 한 방에는 이걸로 천장까지 쌓여 있는 걸 엄마가 보시고 분리수거해서 다 버리라고 하신 거죠. 엄마에겐 이게 작품 같은 느낌이 아니잖아요. 엄마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게 내 아들 작품이요 하고 보여주기도 좀 부끄럽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내 아들이 서울대도 나오고 막 유명한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이런 걸 해놓고 전시회 오라고 하면 창피해서 어떻게 이거를 보여주겠느냐고요. 하하”

가만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또 한 번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기껏 서울대를 보내 놓았더니 작업복을 갖고 왔는데 온통 바지가 물감칠이더라고요. 옷이 이게 뭐야 노동판도 아니고 했더랬죠.”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데 평상시 검진을 안 하셨나요?”
“오빠는 쓸데없이 병원 다니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나름 해병대 자원해서 갔다 올 정도로 건강을 자신했고요. 내내 안 가다가 한 번 갔는데, 그렇게 된 거죠. 이렇게 돼서 돌이켜보니 짐작 가는 상황이 있었죠. 아주 오래전 〈시간의 씨앗〉인가 이런 제목으로 전시회를 준비하며 산과 들에서 씨앗을 구해 전시를 했어요. 개인전 할 동안에도 계속 몸살로 시달리다가 전시 후 응급실로 실려 갔어요. 그때 쓰쓰가무시병에 걸린 걸 안 거죠. 당시 피검사에서 간염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후 작품에 매진하느라 치료해야 한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산 거죠.”

정재철 작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롯이 작품에만 매진할 뿐 세상살이에는 관심이 없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정희 씨의 증언은 이러합니다.

“저희가 종갓집이고 오빠는 집에서 장손이에요. 오빠 위로 딸 셋이 있고 이후에 태어난 종갓집의 맏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엄마도 아버지도 대를 잇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어요. 그런데 오빠는 미대에 간 후 작가로서 길을 가기 위해 장손의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했어요. 그래서 저더러 증인을 서라고 하더니 나무 상에 물 한 그릇 떠놓고 남동생과 둘이 마주 앉아 ‘장자권’을 물려주는 이양식을 했어요. 동생 수철이는 멋도 모르고 받았고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기는 일인데 오빠는 정말 진지하게 한 거죠. 그 당시에 평생 미술의 길을 걷겠다는 작정을 한 거죠.”
가족은 고인이 된 정재철 작가를 늘 맘에 품고 있습니다. 이젠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눕니다.

가족은 고인이 된 정재철 작가를 늘 맘에 품고 있습니다. 이젠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눕니다.

딸들의 재롱에 구순의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환하디환한 웃음입니다.

딸들의 재롱에 구순의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환하디환한 웃음입니다.

“ 작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으로 잘 가지고 있다가 전시하자는 데가 있으면 다 내주라고 했다면서요.”
“여럿이 같이 들었죠. 어쨌든 나의 작품이 필요한 시대는 계속될 거라고 하셨어요.”

그렇습니다.
누구보다 지구 환경을 염려하며, 인류를 위한 질문을 던졌던 정재철 작가의 작품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필요할 겁니다.

사실 정재철 작가가 처음 하늘로 떠났을 때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내 알았습니다. 아들의 손때 묻은 쓰레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라는 것을 것을요.

그래서 어머니는 첫 기일에 아들의 유고전을 열었습니다.
딸들은 하나같이 이 전시를 두고 말합니다.
“엄마가 마음을 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이렇듯 어머니가 아들의 작품을 만나는 건 아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자매들 또한 동생과 오빠를 만나는 일이고요.

가족들이 돌아서며 정재철 작가의 작품에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를 건넵니다. 가족에겐 그의 작품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가족들이 돌아서며 정재철 작가의 작품에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를 건넵니다. 가족에겐 그의 작품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가족사진을 찍은 후, 전시장을 나서다 되돌아보며 가족이 정 작가의 작품을 향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들, 동생, 오빠! 다음에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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