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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천재서 무일푼 굴욕까지…중국판 트럼프의 일장춘몽

중앙일보

입력

친트럼프, 반시진핑 인사였던 궈원구이. 2018년 당시 사진이다. 그의 절친한 지인 스티브 배넌과 함께 기자회견을 여는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친트럼프, 반시진핑 인사였던 궈원구이. 2018년 당시 사진이다. 그의 절친한 지인 스티브 배넌과 함께 기자회견을 여는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8월의 어느 아침 7시 40분, 미국 롱 아일랜드 바닷가에 정박한 요트. 길이가 50m에 달하는 이 초호화 요트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사, 스티브 배넌이 여유를 만끽 중이었다. 경찰이 급습해 그를 사기 혐의로 체포하기 전까지는.

요트의 주인은 배넌이 ‘중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한때 중국계 억만장자, 궈원구이(郭文貴) 또는 마일스 궈. 배넌 체포 당시에도 궈는 함께 있었다고 한다. 뉴요커(the New Yorker) 최신호의 집중 분석 기사에 따르면 궈의 단골 대사는 이랬다고 한다. “나는 돈 버는 데는 천재야.”

궈의 정체를 다룬 로이터 등 보도를 종합하면 그는 중국에서 부동산 개발로 일가를 이룬 뒤 공산당 엘리트들의 금고지기 역할을 하며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뉴요커에 따르면 한때 중국에서 78번째 자산가로 기록되기도 했다. 2014년 돌연 미국으로 도피해 ‘망명자’ ‘반중(反中) 투사’로서의 이미지로 활동하게 되는데, 중국 지도부에 밉보였다는 후문이다. 미국에서 그는 중국 지도부를 계속 비판하며 반체제 인사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는데, 주요 타깃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오랜 지기, 왕치산(王岐山) 부주석이었다. 왕 부주석과 여배우 판빙빙(范氷氷)의 성 상납 영상을 직접 봤다는 주장을 한 것도 궈원구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언론에 잘 먹히지 않자 직접 ‘보이스 오브 궈’ ‘GTV’라는 유사 매체를 차리며 자신의 주장을 확산해왔다.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스티브 배넌.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스티브 배넌.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을 견제하려는 배넌과 궈원구이는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트럼프의 마러라고 저택 파티의 붙박이 게스트로 자리 잡았다. 궈는 뉴요커에 따르면 2015년 뉴욕 맨해튼에서 월세가 가장 비싼 펜트하우스에 입주하며 매일 밤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 펜트하우스 입주를 위해선 재력뿐 아니라 유력 인사들의 보증도 필요한데, 궈원구이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추천서를 냈다고 한다.

궈원구이는 왜 뉴욕을 택했을까. 뉴욕이 근거지였던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리라고 미리 꿰뚫어 본 셈이다. 모두가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장담할 때, 궈는 트럼프에게 접근했고, 그 핵심 연결고리가 당시 트럼프 최측근이었던 배넌이었던 것. 배넌과 궈는 곧 트럼프의 ‘킹메이커’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막상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 후 배넌과 궈 모두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배넌은 트럼프의 큰딸 이방카와 재러드 쿠쉬너 부부와 파벌싸움을 하면서 축출됐다. 2020년 요트에서 체포됐을 당시엔 이미 트럼프 눈밖에 났던 때다. 당시 혐의는 트럼프 핵심 사업이었던 국경 수비 장벽 건설을 위한 모금 사기 행각이었다. 지난달 22일엔 별도의 혐의(미 하원 1ㆍ6 의회 폭동 사태 조사 특위 소환 불응 및 증언 거부)로 또다시 구속돼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상태.

뉴요커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궈원구이 사진. 표정과 인테리어, 옷차림에서 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the New Yorker official Instgram]

뉴요커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궈원구이 사진. 표정과 인테리어, 옷차림에서 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the New Yorker official Instgram]

반면 궈를 향한 철퇴는 중국에서 날아왔다. 스스로 반중 인사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지만 그의 재력의 원천은 역시 중국이었다. 2018년 중국 다롄(大連)시 중급인민법원은 정취안홀딩스라는 투자회사에 600억위안(당시 약 9조8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10조원에 달하는 벌금은 곧 회사 문을 닫으란 얘기였다. 이 회사의 대주주가 궈원구이였다. 그는 이후 파산을 신청했지만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변호사 비용 등을 댈 돈도 없다”며 포기했다고 한다.

궈원구이는 실제 반중 인사였을까. 아니라는 게 뉴요커의 추정이다. 뉴요커는 그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라는 작자들 정말 맘에 안 든다”고 말하는 통화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궈의 타깃은 중국이라기 보다는 시진핑 주석이라고 뉴요커는 설명한다. 궈가 ‘신중국 연방’을 주장하며 대만과 연계를 꾀한 것 등은 반중이라기보단 반시진핑에 가깝다는 것. 그는 시진핑 체제를 전복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를 꿰차는 상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배넌은 주변에 “마일스(궈)는 ‘신중국 연방’의 건국의 아버지”라며 “미국으로 따지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뉴요커는 전했다.

지난 22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참석 중인 시진핑 주석. 연합뉴스

지난 22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참석 중인 시진핑 주석. 연합뉴스

강산이 바뀌기도 전, 궈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그는 트럼프의 재선 실패 후 조 바이든 정권에서도 미국 내 투자자 보호 위반 등의 혐의로 약 5억3900만 달러(약 7700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합의했다. 그가 전복을 꿈꿨던 시진핑 체제는 지난 23일, 무소불위 집권 3기의 닻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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