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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 남은 '손준성 보냄' …전달 vs 반송, 치열한 공방 [法ON]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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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성 보냄',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구지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의 중심에 있는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에 대한 정식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손 부장의 첫 공판을 열었습니다.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 사건을 기소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날 공소 요지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지난 2020년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부장이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과 공모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당시 열린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자), MBC와 뉴스타파 기자 등에 대한 고발장과 관련 자료를 미래통합당에 제공했다"는 겁니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당시 김 의원으로부터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에 '손준성 보냄'이라는 전달 흔적이 남은 것을 유력한 근거로 보고 있죠.

공수처는 이것이 대검 차원에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가족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기도 총선 직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보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는 수사 사건 정보나 수사 참고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아야 한다며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도 걸었죠.

손 부장은 이날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직접 명확히 했습니다.재판장은 본격적인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며 짧게 피고인 신문 절차를 가졌는데요.

▶"지난 2020년 4월 3일 김웅 의원에게 기사 링크, '제보자 X'의 페이스북 캡쳐 사진 등을 보내며 '제보자 X는 지OO임' 이런 문자를 전송한 사실이 있느냐" (재판장)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에게 고발장 자료가 될 '지모씨의 전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실명 판결문 등을 열람·출력하라고 지시했느냐" (재판장)
▶"2020년 4월 3일에는 1차 고발장을, 2020년 4월 8일에는 2차 고발장 출력물을 휴대전화로 찍어 김웅 의원에게 보냈느냐" (재판장)

재판장의 이 같은 질문에, 손 부장은 모두 같은 답을 내놨습니다. "그런 사실 없다"는 겁니다. 고발장이나 각종 자료가 전달된 경위, 김웅 의원과의 공모 여부는 공수처가 파악한 것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황희석 "작성자, 구도 아는 사람"…‘661216’ 생년월일 오기 해프닝

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연합뉴스

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연합뉴스

이날 법정에는 1차 고발장의 '피고발인'인 황희석 전 위원이 나와 공수처 주장에 힘을 실었는데요.

1차 고발장의 피고발인은 황 전 위원과 최강욱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기자와 PD 등 13명입니다. 고발장의 필자는 이들이 2020년 4월 총선에 개입할 목적으로 '허위 기획보도'에 나섰다고 주장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를 대고 있습니다. '제보자 X' 지모씨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검찰 때리기' 기사를 보도하도록 일부 언론에 악의적으로 제보하고 있고, 이 배후에는 여권 인사들이 있다는 내용 등입니다. 1차 고발장의 작성자는 채널A 기자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유착했다는 보도나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됐다는 보도 역시 연결시키고 있죠.

황 전 위원은 고발장 작성자에 대해 '구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10여명을 각각 따로따로 고발한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묶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묶은 것은 상당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면서요. 그러면서 검찰 고위 관계자가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습니다. 보통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것인데, 고발장에 든 내용은 공안 사건 전문가가 아니면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손 부장 측은 이런 증언이 어디까지나 황 전 위원의 추측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증인 신문 과정에서는 "이건 증인의 의견·추측인 거죠?"하고 묻는 손 부장 변호인의 질문이 반복됐습니다. 황 전 위원 역시 "확인된 사실이 있지는 않고 제 판단이다", "언론보도에 따른 추측이다"라는 답을 거듭 내놨습니다. 다만 "아직 실체적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단서를 달았죠.

손 부장 측은 이 1차 고발장이 실제로 쓰인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는데요. 황 전 위원은 당시 총선 후보자였던 입장에서 "고발장을 정치인에게 전달한 것 자체로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는 문제다"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날 법정에선 황 전 위원의 생년월일도 논란이 됐습니다. 1차 고발장에 쓰인 황 전 위원의 생년월일은 '661216'. 그런데 황 전 위원의 실제 생년월일은 '671216'이라는데요.황 전 위원은 법률신문사가 법조인들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법조인 대관'에는 66년생으로 기재돼 있다며, 고발장을 쓴 사람이 법조인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흥미로운 이 공방은 다소 싱겁게 끝났습니다. 손 부장 측이 네이버 검색 결과에도 66년생으로 나오는 것을 제시하면서입니다. 황 전 위원은 "네이버 검색 결과를 본 기억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가끔 인터넷에 66년생으로 나온 것이 있으면 정정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손 "그래서 고발장은 누가 썼나" vs 공수처 "작성자 중요하지 않아"  

고발장 필자가 누군지 추측하기 위해 황 전 위원의 생년월일까지 단서로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 아직 누가 이 고발장을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손 부장 측은 이날 "방어권 행사를 위해 고발장 작성자를 밝혀달라고 공수처에 수차례 얘기했지만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손 부장에게 전달했는지, 또 어떻게 김웅 의원에게 도달했는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발장 작성 주체나 전달 경로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가 왜 각종 배경 사실을 언급해가며 손 부장을 연결시키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죠.

반면 공수처는 "작성자는 밝혀질 필요가 없다"고 응수합니다. 수사정보정책관 지위에서 누군가의 고발장이나 지모씨의 실명 판결문 등을 전달한 것 자체가 핵심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손 부장은 '전달' 자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손준성 보냄'에 대해 '반송'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는데요. 대검 간부에게 고발장을 보내고 접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자신은 통상 업무 처리 방식에 따라 '받지 않았다'는 의미의 '반송'을 했을 수 있고, 이 반송 파일이 김웅 의원에게 흘러갔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다음달 7일 재판을 열어 심리를 이어갑니다. 이날은 2차 고발장의 피고발인인 최강욱 의원에 대한 증인 신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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