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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헤르손 철수' 굴욕 임박…"푸틴, 댐 폭파해 도시 지울수도"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한 러시아 병사가 점령한 헤르손의 건물 위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 한 러시아 병사가 점령한 헤르손의 건물 위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9개월째로 접어든 시점에서 러시아가 남부 요충지 헤르손에서 철수할 것이란 관측이 고조되고 있다.

AP 통신은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철수를 결정한다면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은 또다시 굴욕을 맛보게 될 것이라며, 군사적 패퇴를 넘어 국제관계에서 중국·인도의 자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철수에 앞서 러시아군이 헤르손 북쪽에 있는 댐을 폭파하는 등 파괴적 행위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2일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군이 헤르손주 서부에서 일부 장교를 드니프로강 남쪽(동안)으로 철수시켰다고 전했다. 민간인 대피는 수만명에 달한다. 러시아 관영 인테르팍스는 현지 관리를 인용해 지난 18일 이후 이날까지 헤르손을 떠난 주민이 약 2만50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앞서 헤르손주의 친러 행정부 수반은 이 지역에서 6만명의 주민을 대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전 도시의 인구는 약 28만명이었다.

지난 23일 헤르손주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크림반도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3일 헤르손주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크림반도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을 잇는 거점이자 크림반도로 통하는 관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전쟁 발발 후 1주일 만에 이곳을 점령했으며, 지금까지 러시아가 빼앗은 유일한 주요 도시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헤르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전쟁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탈환한다면 푸틴 대통령은 안팎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AP는 전했다. 러시아는 헤르손을 붙들고 있음으로써 흑해에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움직임은 물론 경제 봉쇄 효과까지 누렸다. 또 러시아는 헤르손에서 서쪽으로 진출해 미콜라이우와 오데사까지 공세를 취할 계획이었지만, 퇴각한다면 모두 물거품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군사 분석가인 올레 즈다노프는 AP에 "헤르손에서의 철수는 남부에서 러시아군의 희망을 꺾어버릴 것"이라며 "헤르손은 남부를 통틀어 전략적 요충지로 우크라이나가 차지한다면 러시아군의 보급로를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시가전보단 러시아군을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빼앗긴 도시를 되찾았다.

우크라이나 싱크탱크 펜타센터의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헤르손 철수가 푸틴 대통령에 큰 고통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국·인도는 이를 "크렘린궁이 힘이 빠졌다"는 신호로 간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크렘린궁은 군 지휘부와 국내 강경파로부터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며 "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고 동원령 반대 여론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내는 물론 중국의 눈에도 평판을 잃게 될 것"이라며 "이는 크렘린궁에 큰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입장에서 헤르손 탈환은 점령당한 남부 다른 도시와 인근 자포리자주 수복을 위한 발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즈다노프는 "우크라이나는 헤르손이 수중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며 "러시아군의 보급 상황이 날로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지원이 지금보다 두배로 늘어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드니프로강 하구에 있는 헤르손은 이 강의 치수를 관장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탈환은 크림반도로 들어가는 물 통제권을 다시 찾아온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즈다노프는 말했다. 즈다노프는 "러시아는 크림반도 담수에 다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흙댐을 건설해 북크림 운하를 막았지만, 러시아는 헤르손 점령 후 이를 허물고 물길을 열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이 헤르손을 잃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위험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는 헤르손을 우크라이나에 넘겨주기보단 지워버리려 할 것"이라며, 상류의 댐을 폭파해 평지인 헤르손에 홍수를 일으키는 방법이 그중 한 가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 움직임이 위장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24일 현지매체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점령군이 철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새로 병력을 충원하고 점령지 거점에서 방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23일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튀르키예 국방장관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가 '더티 밤(재래식 폭탄에 방사성 물질을 결합한 무기)'을 쓸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방은 러시아의 주장이 '거짓 깃발'(false flag) 작전일 수 있다고 했다. ISW는 쇼이구 장관의 연쇄 통화가 서방의 분열을 노린 압박일 수 있다며, "크렘린궁은 줄곧 미국·영국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부추기는 배후라는 주장을 펴는 반면, 프랑스·튀르키예는 갈등의 중재자로 몰고 가려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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